【런던】 영란은행(BoE)이 turbulent bond markets※1에서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적긴축(QT) 속도를 늦추고 장기물 길트(gilt·영국 국채) 매각 비중을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영란은행 금융통화위원회(MPC)는 기준금리를 4%로 유지하는 한편, 올해부터 내년까지 자산축소(보유 길트 매각) 규모를 연간 1,000억 파운드에서 700억 파운드로 줄이기로 7대 2로 의결했다.
이번 결정은 로이터가 앞서 실시한 시장 설문(중간값 675억 파운드)과 유사한 수준이다. 앤드루 베일리(Andrew Bailey) 총재는 발표문에서 “새로운 목표치는 통화정책 목표에 부합하면서도 길트시장의 가격 발견(price discovery)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한다”고 강조했다.
속도 조절 배경
영란은행은 2009~2021년 경기부양을 위해 총 8,750억 파운드 규모의 국채를 매입했다. 2022년부터 본격화된 보유 자산 축소 과정에서 올해 처음으로 매각 속도를 늦춘 셈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2% 물가 목표 복귀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면서 신중하게 접근할 것” ―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
MPC 위원 개별 의견은 엇갈렸다. 휴 필(Huw Pill)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장 영향이 극히 작다”며 1,000억 파운드 유지에 표를 던졌고, 캐서린 맨(Catherine Mann) 위원은 오히려 620억 파운드 수준으로 더 빠른 축소를 주장했다.
매각 구조 세분화
앞으로 1년간 매각될 국채는 단기·중기·장기가 각각 40:40:20의 비율로 배분된다. 이는 초기 매입가 기준이며, 장기물 편중 매각이 시장 변동성을 키운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실제 장기물 길트 금리※2는 이달 초 1998년 이후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장기물 가격은 금리에 반비례해 급락했으며, 연기금과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의 듀레이션 리스크가 부각됐다.
기준금리 동결
금리 부문에서도 7대 2로 동결 결정을 내렸다. MPC 외부위원 스와티 딩그라(Swati Dhingra)와 앨런 테일러(Alan Taylor)는 전월 0.25%p 인하 이후 추가 완화를 주장했으나 다수 의견이 유지로 가닥을 잡았다.
은행 측은 소비자물가지수(CPI)가 9월 4%로 정점을 찍은 뒤 2027년 2분기께 목표치 2%로 서서히 회귀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동시에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를 0.3%에서 0.4%로 소폭 상향했다.
베일리 총재는 “인플레이션 하락 경로가 확인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향후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면 점진적·신중하게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결정 전 파생상품 시장은 올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약 30% 수준으로 반영하고 있었다.
용어 해설
양적긴축(QT, Quantitative Tightening)은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 채권을 시장에 매각하거나 만기 도래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아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는 정책이다. 시중 유동성 축소로 통화긴축 효과가 나타나며, 반대 개념은 양적완화(QE)이다.
길트(gilt)는 영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의미한다. ‘gilt-edged securities’에서 유래했으며, 신용도가 가장 높은 안전자산으로 간주되지만 최근 금리 급등으로 가격 변동성이 확대됐다.
시장 및 투자자 영향
전문가들은 BoE의 속도 조절이 글로벌 채권 시장 안정을 위한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미국 연준(Fed)·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유사한 자산 축소 경로를 밟고 있어, 영국의 정책 변화는 선진국 중앙은행 협조적 긴축 체계를 시사한다.
다만 QT 속도 저하는 장·단기 스프레드(수익률 곡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기물 매각이 줄어들면 장기 금리 상승 압력이 완화되지만, 단·중기 금리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FTSE 길트지수 편입 비중 조정, 파운드화 환율 변동, 그리고 글로벌 금리 방향성에 대한 추가 정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망
시장 참여자들은 11월 MPC 회의에서 인플레이션·임금지표·국채 수급 동향을 면밀히 점검할 것으로 예상한다. 동시에 재정정책 변수(예산안 지출 확대 여부)와 미·영 금리차도 길트 수익률 결정에 주요 변수로 꼽힌다.
결국 영란은행이 ‘느리지만 확실한’ QT 전략을 택한 만큼, 정책 가이던스와 실제 매각 결과를 수시로 비교하며 시장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이터 디펜던트(data-dependent)’ 접근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1 turbulent bond markets: 금리 급등락과 유동성 부족으로 변동성이 큰 채권 시장 상황.
※2 장기물 길트 금리: 통상 만기 15년 이상 영국 국채(Conventional & Index-linked) 수익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