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도로 위를 뒤덮은 옥외광고판 급증… 시민 눈 건강과 도시 경관 ‘경고등’

카이로 시내를 운전하는 이들의 시야는 이제 무수한 빌보드가 가로막고 있다. 노면의 포트홀(도로 파임), 비좁은 차로, 때때로 출몰하는 당나귀 수레만으로도 아찔했던 도로 환경에 화려하지만 제각각인 옥외광고판이 더해지며 운전자는 한층 더 복잡한 시각 자극을 견뎌야 한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최근 6년 사이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대형 광고판 수는 2019년 약 2,500개에서 2025년 현재 약 6,300개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 면적 1㎢당 30개 이상 설치된 셈으로, 같은 기간 LED 등 디지털 광고판만 놓고 보면 10배 넘게 늘어 300개를 넘어섰다.

AdMazad1라는 미디어 분석업체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옥외광고판(out-of-home advertising)’ 증가 속도는 전 세계적인 추세와 비교해도 빠른 편이다. OOH란 TV·온라인이 아닌 실외 공간에 노출되는 모든 광고를 아우르는 업계 용어다. 이 중에서도 도로변 대형 빌보드는 시각적 임팩트가 크지만, 난립할 경우 운전 안전·도시 미관·빛공해 문제를 동시에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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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iro Billboards

급증의 배경은 압둘 파타흐 알시시 대통령이 2014년 집권 이래 추진한 교통 인프라 ‘초고속 확장’ 정책과 맞물린다. 신규 도로·교량이 수도 전역을 거미줄처럼 잇자 기업들은 넓어진 노출 면을 겨냥해 세제·패스트푸드·럭셔리 부동산까지 다양한 상품을 앞다퉈 광고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광도 LED가 밤에도 강렬한 색채를 뿜어내 “눈부심이 심해 야간 운전이 고역”이라는 불만이 늘고 있다.

“거리에 광고가 안 붙은 곳이 없습니다.” – 카이로 시민 아흐메드 아델(Ahmed Adel)

Night LED Billboards

국가 재정엔 단비가 되고 있다. 이집트 교통부 산하 투자사 MOT Investment and Development의 사업개발 책임자 아흐메드 아피피(Ahmed Afify)는 “광고 위치를 두고 경쟁사들이 가격을 올려 부르는 경매 방식 덕분에 정부 수입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AdMazad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이집트 전체 OOH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한 63억 이집트 파운드(미화 약 1억 3,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대부분은 교통부 또는 그 산하기관을 거쳐 국고로 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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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전문가 시각은 엇갈린다. 일부 운전자는 교통 체증 속 ‘잠시나마 지루함을 잊게 하는 볼거리’라 평가하지만, 다른 이들은 통행 스트레스 가중과도한 소비 유도를 우려한다. 카이로에서 활동하는 심리치료사 칼레드 살라엘딘(Khaled Salaheldin)은 경기 침체, 보조금 축소 등 경제적 압박이 큰 시기에 “이상화된 소비 라이프스타일 광고를 반복 노출하면 자존감 저하·좌절감을 부추길 가능성”을 경고했다.

Traffic and Billboards

실제로 이집트는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웃돌고, 연료·식료품 보조금이 단계적으로 축소되며 서민 생활비 부담이 커졌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광고-현실 괴리 프리즘’이라 부르며, 현실과 광고 속 이상이 멀어질수록 스트레스·우울 증세가 심화되는 것으로 분석한다.


규제 움직임도 가시화됐다. 2025년 9월 17일 Mostafa Madbouly 이집트 총리는 관계 부처 회의를 주재해 “광고가 도시의 미적 가치와 사회 규범을 존중하도록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회의에서는 △광고판 크기·조도
△건축물 조화 여부
△문화·종교적 민감성 고려
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체적 시행령·벌칙이 확정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지방정부·사기업·군 관련 공기업이 얽힌 복잡한 승인 구조와,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정부 재정 현실이 규제 실효성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문가 관점에서 보면, 옥외광고 난립은 단순한 시각 공해를 넘어 ‘도시 브랜드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도시경관학자들은 “과도한 상업 이미지 노출은 역사·문화 자원을 가리는 동시에 방문객에게 혼란스러운 첫인상”을 남긴다고 지적한다. 또한 야간 조도 증가로 에너지 소비가 늘어 탄소배출 감축 목표와도 충돌할 수 있다.

반면 광고업계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콘텐츠 품질과 디자인 세련도가 올라간다”며 자정 효과를 강조한다. 실제로 최근 카이로 시내 일부 교차로에서는 고전 양식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는 저채도·단색 광고판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용어 해설2

아웃 오브 홈(OOH) 광고: 집·사무실 밖에서 접하는 모든 유형의 광고를 가리키며, 전통적 인쇄 빌보드부터 버스·지하철 내부 패널, 디지털 사이니지까지 포함한다.

디지털 사이니지: LED·LCD 패널을 활용해 영상·이미지를 실시간 송출하는 전자 광고판. 콘텐츠 교체가 쉬워 동적 정보 전달이 가능하나, 과도한 밝기는 빛공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종합 평가로, 카이로 옥외광고 시장은 빠른 성장·높은 수익성이라는 장점을 가진 반면, 시각 혼란·안전 위험·심리적 부담 등 부정적 외부효과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도시 조화’ 기준이 실효적 규제로 이어질지, 혹은 광고산업의 성장 논리에 밀려 표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필자는 광고 허가권 경매 수익의 일정 비율을 교통 안전 시설 및 빛공해 저감 사업에 재투입하는 목적세 도입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수익-피해 균형을 맞춰야만 ‘보이는 경제’와 ‘보이고 싶지 않은 부작용’을 동시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확인된 데이터만으로는 옥외광고가 실제 교통 사고율 변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향후 학계·정부·업계가 공동으로 시각 자극과 운전 행동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데이터 기반’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각주
1 AdMazad: 이집트에 본사를 둔 광고·미디어 데이터 분석 기업.
2 용어 해설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자 주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