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COW (로이터)—러시아 정부가 재정적자를 억제하고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부가가치세(VAT) 세율을 현행 20%에서 22%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정부에 정통한 소식통 네 명이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세금 인상은 없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한 이후 제기된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9월 29일 연방 의회에 제출될 2026~2028년 예산안 초안에 VAT 인상 여부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예산안의 핵심 항목은 사전에 푸틴 대통령과 합의되기 때문에 의회 심의 과정에서 대폭 수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4년 차에 접어든 올해 개인소득세와 법인세를 이미 올렸으나, 정부는 5월에 연방 재정적자 전망치를 국내총생산(GDP)의 1.7%로 세 배가량 상향 조정해야 했다. 국영 언론이 이달 익명의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실제 적자는 이마저도 초과할 가능성이 크다.
2026년 재정적자 절반으로 줄일 효과*
소식통 네 명은 해외에 기반을 둔 독립 매체 The Bell이 이번 주 보도한 “VAT 22% 인상 논의”를 확인했다. 한 소식통은 “에너지 초과수익을 적립하는 예산 규칙(‘버짓 룰’)이 유지된다는 전제 아래 2026년 예산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방비나 사회복지비는 더 이상 줄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적자를 줄일 방법은 사실상 세금 인상뿐”이라고 덧붙였다.
VAT는 2024년 연방예산 세입의 37%를 차지했다. 로이터 계산에 따르면 세율을 2%포인트 올리면 2026년 예상 적자를 절반으로 축소할 수 있다.
경기 둔화 속에서도 국방·안보 지출 비중 40%
서방 제재가 강화되는 가운데서도 러시아 경제는 성장세를 이어왔으나, GDP 증가율은 지난해 4.3%에서 올해 1% 수준으로 둔화될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은 8% 이상으로, 노동력과 재정의 40%가 국방·안보 분야에 집중된 현실이 반영된다. 정부 지출이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인 만큼, 푸틴 대통령이 경기 둔화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전쟁비용 지속을 강조하는 현 상황에서 지출 삭감은 어려운 선택지다.
최종 결정은 미정…“버짓 룰 유지”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버짓 룰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해당 규정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를 초과해 벌어들인 초과수입을 국가재정안정기금(Fund for National Welfare)으로 적립하도록 한다.
2022년 침공 이후 서방국가들은 해상보험 및 해운서비스 제공자에게 러시아산 원유를 60달러 이상에 운송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크게 늘렸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2025년 기준)의 압박에 직면해 있다.
국가재정안정기금의 유동성 자산은 현재 약 4조 루블(약 440억 달러)로, 정부는 올해 이 중 4,470억 루블을 적자 보전에 활용할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은 2024년 세제 개편 이후 2030년까지 추가 세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는 9월 5일 정부에 대해 “세금 인상이 아닌 생산성 향상으로 재정수입을 늘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한 정부 소식통은 “국방비는 줄일 수 없고, 사회복지 예산 일부만 깎아 봐야 효과가 미미하다”며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돼지를 털 깎는 것과 비슷하다. 삐걱삐걱 소리는 크지만 얻을 게 많지 않다. 1~2조 루블 정도를 줄일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해야 수백억, 많아야 수천억 루블 수준”
예산 악화에 대한 우려 증폭
2019년 VAT를 2%포인트 올렸을 때 인플레이션은 0.6%포인트 상승했다. 중앙은행은 물가상승률을 목표치 4%로 되돌리기 위해 이를 절반 수준으로 끌어내릴 방침이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는 9월 12일 통화정책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적자 확대보다는 추가 세수 확보가 바람직하다”며 세금 인상을 조심스럽게 지지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현재 17%인 기준금리를 앞으로 더 내릴 수 있을지 여부가 적자 규모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국가채무 비율이 낮아 차입 여력이 충분하다며 “새로운 부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지만, 정부조차 13% 안팎의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며 2025년 이자 비용은 GDP의 2%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용어 설명
VAT(부가가치세)는 재화·서비스의 판매 단계마다 부가되는 가치에 부과되는 소비세다. 러시아처럼 간접세 비중이 큰 국가에서 VAT 인상은 단기간에 세수를 확충하는 수단이지만,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리는 부작용이 있다.
예산 규칙(Budget Rule)은 원유·가스 등 전략 원자재 가격이 기준선을 초과할 경우 초과 수익을 적립해 둔 뒤, 가격이 하락할 때 재정에 투입하도록 한 러시아 특유의 재정안정 장치다. 배럴당 60달러 기준선은 서방의 가격상한제와 맞물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