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Reuters)—헐리우드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위협 속에 ABC가 지미 키멀의 심야 토크쇼를 전격 중단한 조치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하며 일제히 백악관을 비판했다. 이번 사태는 보수 성향 운동가 찰리 커크 암살과 관련해 키멀이 남긴 발언 이후 벌어졌다.
2025년 9월 18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월트디즈니가 소유한 ABC 방송은 적어도 한 곳 이상의 가맹국이 해당 프로그램을 대체 편성하겠다고 통보하고,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조사 가능성을 시사하자 ‘지미 키멀 라이브’를 무기한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키멀은 9월 10일 모놀로그에서 “MAGA(트럼프 지지자) 집단이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을 이용해 정치적 득점을 노리고 있다”고 언급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애도를 “네 살배기 아이가 금붕어를 잃었을 때의 반응”에 빗대어 비판했다. 이 발언이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키자, 미국 최대 방송 지주사 가운데 하나인 넥스타 미디어 그룹은 자사가 보유한 32개 ABC 계열국에서 해당 프로그램의 송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연방통신위원회(FCC)란?
FCC는 미국 방송·통신 전반을 관할하는 독립 규제기관으로, 방송 면허 발급과 벌금 부과 권한을 갖고 있다.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특정 프로그램에 대해 “조사를 개시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은 방송사의 콘텐츠 편성 자유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FCC 브렌던 카 위원장은 보수 성향 팟캐스터 베니 존슨과의 인터뷰에서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고, 어려운 길을 택할 수도 있다”며, 조사 및 벌금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넥스타의 결정에 대해 “지역 사회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디즈니 프로그램에 방송사들이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격려했다.
이에 대해 할리우드 노동조합들은 즉각 반발했다.
WGA 서부지부·동부지부 공동성명 “우리는 때로 고통스럽더라도 의견 차이를 자유롭게 표출하기로 합의한 국가에 살고 있다. 정부에 몸담은 이들이 이 창립 정신을 망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말은 당신들에게 부를 안겨 주었고, 우리를 침묵시키는 것은 전 세계를 빈곤하게 만든다.”
배우 조합 SAG-AFTRA도 “지미 키멀 라이브 방송 중단 결정은 검열과 보복의 전형이며, 모든 이의 자유를 위태롭게 한다”고 규탄했다. 배우 벤 스틸러 역시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이건 옳지 않다”라는 글을 남기며 연대 의사를 밝혔다.
키멀 자신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평소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날카로운 정치 풍자로 유명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에도 자신이 불쾌하게 여기는 프로그램이나 보도를 두고 방송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위협했으며,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150억 달러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전례가 있다.
커크 암살 사건은 9월 11일 유타주에서 발생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22세 용의자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31세였던 커크의 사망은 보수 진영에 큰 충격을 안겼고, 일부 극우 인사들은 커크의 견해를 비판하거나 그의 죽음을 희화화한 인물들을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미국 음악가 연맹(American Federation of Musicians)은 “트럼프의 FCC가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을 특정해 ABC를 상대로 과도한 제재를 위협했다. 이는 국가 검열”이라고 비난했다.
전문가 시각
미 헌법 수정 제1조는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 수 없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FCC가 방송 면허, 벌금 같은 규제 수단을 통해 사실상 내용 검열을 시도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공공복리 사이의 균형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른다. 특히 이번 사태는 거대 미디어 기업, 지방 방송사, 규제기관, 그리고 정치권력이 얽힌 복잡한 역학관계를 드러내고 있어, 향후 대선 정국 속 언론 자유 및 방송 규제 논쟁의 주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ABC 측은 프로그램 재개 여부에 대해 “추후 공지”라는 짤막한 입장만을 내놨다. 헐리우드 업계와 노동조합이 연대해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FCC가 실제로 조사에 착수할지, 혹은 방송사·제작사 간 협의를 통해 사태가 봉합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