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8일(현지시간) 세 곳의 국가증권거래소가 제출한 규칙 변경안을 전격 승인하며, 가상자산(암호화폐)을 포함한 현물(Spot) 기초 상품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위한 마지막 장애물을 제거했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SEC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나스닥(Nasdaq),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Global Markets) 등 세 거래소가 제안한 ‘일반 상장 기준(Generic Listing Standards)’ 도입을 인가했다. 이에 따라 자산운용사가 새로운 현물 가상자산 ETF를 출시할 때마다 복잡한 개별 심사를 거치지 않고도 빠르게 승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번 조치는 2013년 첫 비트코인 ETF 신청 이후 12년 동안 유지돼 온 관행을 뒤집는 ‘게임 체인저’로 평가된다. SEC는 그동안 현물 가상자산 ETF에 대해 ‘2단계 심사(거래소·운용사 각각 제출)’를 적용해 왔으나, 앞으로는 최대 240일 이상 걸리던 승인 기간이 최대 75일로 단축된다.
주요 내용 및 배경
SEC가 7월 제시한 상세 기준에 따르면, 자산운용사와 거래소는 ▲기초 자산의 유동성 평가 ▲시장 감시 협력 체계 ▲투명한 가격 산정 메커니즘 등을 충족해야 한다. 기존에는 이러한 요건을 개별 서류로 일일이 입증해야 했지만, 표준화된 체크리스트를 활용함으로써 규제 예측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SEC 위원장 폴 앳킨스(Paul Atkins)는 보도자료에서 “혁신을 촉진하고 디지털 자산 상품 접근성을 높이는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비트와이즈 자산운용(Bitwise Asset Management) 사장 테디 푸사로(Teddy Fusaro)는 “미국의 디지털 자산 규제 접근법에 있어 분수령(watershed) 순간”이라고 평했다.
첫 출시 예상 ETF — 솔라나·XRP가 선두주자
현재 솔라나(SOL) 및 XRP를 추종하는 ETF가 가장 먼저 출시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상품은 이미 1년 이상 전부터 제출돼 있었으나, 비트코인·이더리움 외 현물 ETF는 아직 어느 것도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비트코인 현물 ETF조차도 2024년 1월 법정 공방 끝에 겨우 데뷔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업계의 오랜 ‘적체’를 해소하는 의미를 지닌다.
시장 관계자들은 도지코인(DOGE) 등 인기 알트코인 기반 ETF도 속속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규제하는 선물 계약이 6개월 이상 존재해야 하는 등 일정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부 토큰은 아직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 가상자산 기조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SEC는 현물 가상자산 ETF 승인에 소극적이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행정부는 ‘친(親) 크립토’ 노선을 분명히 하며 디지털 자산 산업과 보조를 맞추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천명했다. 이번 SEC 승인도 그러한 정책 방향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문은 열렸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
— 스티브 맥클러그, 캐너리 캐피털 CEO
캐너리 캐피털(Canary Capital)의 스티브 맥클러그 CEO는 “승인 이후에도 마케팅 전략·법적 서류·서비스 제공업체 조율 등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법률 전문가 시각과 출시 일정
미국 로펌 스트래들리 로넌(Stradley Ronon)의 파트너 스티브 파이너(Steve Feinour)는 “선물 계약이 존재하는 자산에 대한 신속 절차(expedited approvals)가 가장 많이 활용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2025년 10월 첫 상품이 상장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일부 토큰은 아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겠지만 이번 결정이 결국 시장 개방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어 설명 — ‘현물 ETF’와 ‘선물 ETF’의 차이
현물 ETF는 말 그대로 기초 자산을 직접 보유하며, 가격도 실시간 현물가에 연동된다. 이에 따라 보관·감사·가격투명성이 중요해진다. 반면 선물 ETF는 선물 계약을 통해 가격 노출을 추구하므로, 롤오버 비용이나 만기 구조가 수익률에 영향을 준다.
그동안 SEC는 ‘시장 조작 가능성’을 이유로 현물 ETF 승인에 신중했으나, 비트코인 ETF의 성공적 안착과 CFTC·거래소 간 ‘감시 공유 협정’ 확대가 규제 당국의 입장을 완화시켰다는 게 업계 해석이다.
전문기자의 관전 포인트
본지 분석에 따르면, 규제 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기관투자자들의 참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알트코인 현물 ETF 출시는 ▲디지털 자산 분산투자 ▲암호화폐 개별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전통 금융사와 가상자산 업계의 파트너십 강화 등 다층적 파급효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해당 자산의 유동성 ▲국제 회계 기준(IFRS·GAAP) 적용 ▲탈중앙화 특성에 따른 거버넌스 리스크 등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SEC가 제시한 75일 ‘패스트트랙’이 실제 승인 기간 단축으로 이어질지, 또는 추가적인 서류 보완 요청으로 지연될지는 오는 4분기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SEC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규칙 변경을 넘어 미국 자본시장 내 디지털 자산의 제도권 편입을 상징한다. 향후 어떤 토큰이 ‘다음 주자’로 낙점될지, 그리고 글로벌 규제 기관들이 미국의 선례를 어떻게 참고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