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 외교위원회, ‘핵옵션’ 가속화 속 트럼프 외교 공관장 36명 인준안 가결

워싱턴 D.C.발 — 미 상원 외교위원회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36명의 외교 공관장 후보에 대해 당파적 갈등 속에서도 대거 찬성표를 던지며 전체 상원 표결 단계로 넘겼다.

2025년 9월 17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위원회는 마이클 월츠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유엔주재 미국 대사 지명안세르지오 고르 백악관 인사국장의 인도 대사 지명안을 포함한 주요 외교직 후보들을 표결에 부쳤다.

이번 표결은 당파선에 따라 갈렸다. 공화당 의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모든 후보를 지지한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대부분 반대표를 던졌다. 그 결과 위원회 차원의 승인은 이뤄졌으나, 향후 공화당 53석 대 민주당 47석 구도의 본회의 표결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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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통령이 외교 사령탑을 신속히 채워야 국가 이익을 지킬 수 있다” — 공화당 간사 발언

트럼프 대통령 2기 출범 이후 ‘핵옵션(nuclear option)’이라는 상원 규칙 변경이 단행됐다. ‘핵옵션’이란 상원 내부 필리버스터나 소수당의 지연 전술을 단순 과반으로 무력화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번 개정으로 전에는 30시간이 필요했던 토론 시간을 2시간 이하로 단축할 수 있게 돼, 인준 속도를 대폭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위원회의 이번 결론은 지난 5월 민주당 의원들이 집단 보이콧을 벌였던 전례와 대비된다. 당시에도 외교위원회는 공석 장기화를 이유로 5명의 대사 후보를 단독으로 처리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초당적 협력으로 유명했던 외교위원회마저 당파 대립이 고착되는 양상이다.

주요 후보 프로필

마이클 월츠 — 플로리다주 출신 전 하원의원·전 특전사 장교. 유엔 무대에서 ‘미국 우선주의’ 방어를 공언.
세르지오 고르 — 백악관 인사국장으로 트럼프의 핵심 측근.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대중(對中) 연대’를 주창.
• 그 외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각 지역 대사 후보 34명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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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은 “민주당의 의도적 지연”이 정부 기능 마비로 이어진다며 규칙 변경을 정당화했다. 반면 민주당은 일부 후보가 공직 경험 부족 또는 이해충돌 논란을 안고 있다며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본회의 전망과 일정 압박

본회의 표결은 이르면 다음 주 예정이지만, 9월 30일 회계연도 종료를 앞둔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 정지) 방지 예산안 협상 때문에 일정이 빠듯하다. 게다가 상원은 곧이어 가을 휴회(recess)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월츠 후보가 뉴욕 유엔 총회(9월 하순) 개막 전까지 인준 절차를 마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만약 일정 내 인준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무부 차관보 또는 임시 대사(ad interim)가 미국 대표로 참석해야 한다. 이는 국제무대에서 ‘대사 공백’이 길어질 때 발생하는 외교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


전문가 해설 — ‘핵옵션’의 정치적 파장

상원 규칙 변경은 의회 절차의 ‘최후수단’으로 불린다. 단기적으로는 행정부 인사 공백 해소에 기여하나, 장기적으로는 소수당 견제 장치를 약화해 정국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도 민주당이 일부 사법 인사를 위해 같은 절차를 사용했고, 이후 공화당이 대법관 인준에 이를 적용한 사례가 있다.

이번에 공화당이 다시 핵옵션을 꺼내 든 것은 ‘일하는 의회’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러나 향후 정권 교체 시 거꾸로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기자 관전평

외교 공관장의 공백은 현장의 협상력 약화로 직결된다. 특히 유엔 대사는 미국 외교의 ‘얼굴’이자 안보리 의제 조율의 핵심이다. 만일 월츠 후보가 유엔 총회 직전 인준에 실패한다면,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 규범 논의에서 리더십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인도 대사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 ‘쿼드(Quad)’ 협력 강화에 핵심적이다. 세르지오 고르 후보가 미·인 국방·기술 협력 의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는 아직 의문점이 남아 있다는 평가도 있다.


용어 설명

핵옵션(nuclear option) — 상원 규칙 22조(필리버스터)를 단순 과반으로 변경해 소수당 토론 지연권을 봉쇄하는 절차. 이름은 ‘핵무기’에 비유될 만큼 정치적으로 파괴력이 크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필리버스터(filibuster) — 상원의원 1명이 무제한 토론을 선언해 입법·인준 절차를 지연시키는 전통적 소수당 무기. 규칙상 60표(⅗) 이상의 클로처(cloture) 표결로 종료할 수 있다.

유엔 총회(UNGA) — 매년 9월 뉴욕에서 열리며, 각국 정상·외교장관이 참석해 주요 국제 현안을 논의한다.


이번 사안은 행정부·의회 간 권력투쟁, 그리고 초당적 합의를 둘러싼 미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드러낸다. 인준 속도는 빨라졌지만, 절차적 견제 장치 약화가 가져올 후폭풍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향후 본회의 표결 결과와 그 영향, 그리고 유엔 총회에서의 미국 외교 구상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