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통계청(ONS)이 발표한 2025년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8% 상승하며 지난달과 동일한 수준을 기록했다. 핵심 물가(core CPI)도 뚜렷한 둔화 신호 없이 고점 부근을 유지해 영국은행(BoE)의 통화정책에 다시 한 번 복잡한 과제를 던졌다.
2025년 9월 17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ING·노무라·JP모건·UBS·도이체방크 등 글로벌 주요 금융기관은 이번 물가 발표 직후 잇따라 연구 노트를 내고 “3.8%라는 숫자 자체보다 ‘하락 속도 부진’이 더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ING는 “연말까지 물가가 3.5~4% 박스권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금리 인하 시나리오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ING 분석가들은 “식료품 인플레이션이 5%를 넘어선 점이 문제”라며
“식료품 가격은 외식비와 기대 인플레에 직접 연동되기 때문에 BoE가 예민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고 설명했다.
[용어 해설] 식료품 인플레이션
식료품 인플레이션은 전체 CPI 바스켓에서 변동성이 큰 품목군이다. 영국의 경우 가계 지출 구조상 외식비와 식료품 가격이 동시에 움직이는 경향을 보여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형성에 핵심 역할을 한다.
일본계 금융사 노무라는 헤드라인과 서비스 물가가 여전히 “너무 높다”면서도, 기저(service core) 모멘텀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긍정적 단서’를 짚었다. 노무라는 “8월 항공요금 상승폭이 평년보다 작았고 숙박비도 이례적으로 하락했다”며 “다만 한 번의 데이터로 낙관하긴 이르다”는 경계도 곁들였다.
[용어 해설] 서비스 물가 모멘텀
서비스 물가는 임금·렌트·여행비용 등 노동집약적 부문이 많아 임금 상승률과 직결된다. ‘모멘텀’은 월(또는 분기) 단위 상승 탄력을 지칭한다.
JP모건은 “9월 인플레이션이 4% 근처에서 피크를 찍은 뒤 임금 상승세 둔화가 물가를 점진적으로 끌어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JP모건은 자체 산출하는 ‘슈퍼코어’1 물가가 8월 전월 대비 0.3% 상승, 3개월 연율 기준 4.6%로 “여전히 뜨겁다”고 지적했다. 은행은 또한 “가계 기대인플레가 최근 다시 뛰었다”며 BoE의 정책판단이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용어 해설] 슈퍼코어1
일부 투자은행이 계산하는 비공식 지표로, 에너지·식품·주거비 등 변동성·규제 영향이 큰 항목을 제외하고, 임금·서비스 요인에 민감한 항목만 묶어 ‘진짜 기조 물가’를 가늠한다.
UBS는 “9월 CPI가 4.0%까지 오르더라도 2025년 12월 3.4%, 2026년 12월 2.1%로 점진 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UBS는 BoE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7대 2의 압도적 표차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전망하며, “은행은 ‘점진적·신중한(easing)’ 접근법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산제이 라자는 “9월 물가가 4%에 근접한 뒤 완만히 내리지만, 2% 목표 복귀는 2027년쯤에야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노동시장 냉각으로 임금 디스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지만 물가 데이터에 반영되려면 시차가 크다”고 덧붙였다.
BoE 통화정책 전망
시장 스왑금리와 선물 가격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2025년 말까지 최소 두 차례, 총 50bp(0.5%p)의 기준금리 인하를 베팅하고 있다. 그러나 하락 속도가 느린 CPI와 ‘끈질긴 서비스 물가’가 맞물리면서 기대는 점점 후퇴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영국은행 내부에서는 “‘충분히 오래(high for longer)’ 전략을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는 강경파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된다. 반면 부채 부담이 커진 기업·가계는 한시라도 빨리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어 통화정책 경로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엇갈린다.
전문가 인사이트
분석가들은 “명목금리 동결이 곧 실질긴축(real tightening)을 의미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물가가 완만히 내려가더라도 금리가 제자리면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는 상승하게 되며, 이는 기업 투자·주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BoE가 물가의 ‘질’—즉 구성 품목별 압력—과 노동시장 지표를 동시에 확인하며 ‘인내의 카드’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지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시장참여자들은 다음 회의(11월 예정)에서 BoE가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 원칙을 재확인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는 노동시장 냉각, 소비 둔화, 유가 변동 등 다음 분기에 나올 변수들이 ‘연내 첫 금리 인하’를 결정짓는 트리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
종합하면 8월 CPI 3.8%는 숫자보다 그 안의 구성이 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식료품·서비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고공비행 중인 상황에서 BoE는 “성급한 인하”보다 “조기 조정 리스크”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 남은 2025년 하반기 영국 물가·임금·수요 흐름이 금리 방향성을 가를 결정적 변수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