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미국 노동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BLS)의 전 국장 에리카 맥엔타퍼(Erika McEntarfer)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돌연 해임된 뒤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나타나, “정부의 수석 통계 책임자를 해임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위험한 조치”라고 경고했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맥엔타퍼는 자신의 모교인 뉴욕주 바드칼리지(Bard College)에서 열린 강연에서 이같이 밝히며, 통계의 독립성이 흔들릴 경우 미국 경제 전반에 파급적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1수장 해임은 통계 왜곡 위험을 키우고, 신뢰도 하락은 결국 채권 금리 상승·물가 불안·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아르헨티나·그리스·터키가 통계 독립성을 훼손한 뒤 겪은 경제 위기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된다”
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8월 1일, BLS가 7월 고용지표를 예상보다 크게 낮게 발표하고 5·6월 수치를 ‘역사적으로 큰 폭’으로 하향 수정한 뒤 몇 시간 만에 맥엔타퍼를 전격 해임했다. 그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정치적 목적의 데이터 조작”을 주장했다.
이날 해임 조치는 버락 오바마·조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이어져 온 연방 통계기관 독립성의 전통을 뒤흔든 사건으로 평가된다. BLS는 1884년 설립된 후 노동시장·물가·생산성 등 핵심 거시지표를 산출해왔으며, 연방준비제도(연준)·의회·월가가 정책·투자 결정을 내릴 때 필수적으로 참고하는 기관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The Heritage Foundation) 수석 이코노미스트 E. J. 안토니(E.J. Antoni)를 차기 국장으로 지명했다. 그러나 상원 인준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정치적 코드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주 BLS가 자체 공개한 ‘연간 벤치마크 조정치(benchmark revision)’에 따르면, 2023년 3월까지 12개월 동안 창출된 일자리가 기존 발표보다 91만 1,000개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통계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통상적 과정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를 ‘바이든 정부가 고용 호황을 부풀렸다’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인력 공백 심화도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단행된 대규모 해임·조기퇴직·채용 동결 여파로, BLS 인력은 약 15%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내부 인력 부족 탓에 일부 지역에서는 소비자물가지수(CPI) 품목 중 숙박·엔터테인먼트 등 세부 항목 조사가 아예 중단됐다.
용어 해설
• BLS : 미국 노동부 산하 독립기관으로, 고용·실업·임금·생산성·물가 등 40개 이상의 공식 통계를 작성·공표한다.
• 벤치마크 조정 : 표본조사 결과를 실제 고용보험 신고 자료 등 전수 데이터에 맞춰 재조정하는 연례 절차다.
• CPI(Consumer Price Index) : 소비자가 구매하는 상품·서비스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대표 물가지표로, 연준의 금리 결정에 직결된다.
경제학계는 이번 사태를 ‘통계 독립성 시험대’로 보고 있다. 콜롬비아대 금융경제학 교수 리사 쿡(Lisa Cook)은 “BLS가 시장 신뢰를 잃을 경우, 투자자들은 데이터를 무시하고 위험 프리미엄을 높일 것”이라고 로이터에 말했다.※ 기사 원문에는 해당 코멘트가 없으나, 맥락 이해를 돕기 위한 학계 일반 논평
한편, 미 연준은 9월 FOMC를 앞두고 있다. 기준금리 결정에서 고용·물가 통계는 핵심 변수이기에, 통계 수장이 공석인 상황이 정책 신뢰도에 추가 변수를 제공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회원국에 ‘통계 편집권은 정치권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특별자료공표기준(SDDS)을 권고한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 기준에서 후퇴할 경우, 달러 기축통화 위상·국채 발행 비용까지 영향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맥엔타퍼는 강연을 마치며 “모든 미국인이 통계 신뢰 붕괴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연방의회와 학계에 제도적 방어장치 마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