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 5,000억 달러 투입한 美 전기차 충전 인프라, 설치된 포트 400개도 못 미쳐

[워싱턴] 미국 연방정부가 2021년 인프라 투자법(IIJA·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에 따라 7조 5,000억 달러를 배정했음에도, 주(州) 차원에서 설치·가동 중인 전기차(EV) 충전 포트400개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25년 7월 22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 회계감사원(GAO·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은 16개 주에서 충전 포트 384개, 충전소 68곳만이 운영 중이라고 공식 집계했다. GAO는

“프로그램을 공동 관장하는 교통부·에너지부 합동 사무국이 측정 가능하고 시한이 명시된 성과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고 지적했다.

GAO 보고서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2월 해당 프로그램의 예산집행을 일시 중단하고 각 주의 계획 승인을 철회한 것이 지연의 핵심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에 미집행 충전 인프라 예산 60억 달러1를 환수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주요 숫자로 보는 현황

  • 전국 공개 충전 포트 총량: 약 21만 9,000개에너지부 2025년 4월 집계
  • IIJA 예산으로 신규 가동 포트: 384개(2025년 4월 기준)
  • 관련 예산 집행률: 1% 미만

한편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한 16개 주는 2025년 5월 미 교통부(DOT)를 상대로 “합법적으로 배정된 최소 30억 달러의 충전 인프라 자금을 부당하게 보류하고 있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 같은 소송은 주 정부 및 업계가 느끼는 정책 불확실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지난 2024년 6월, 민주당 소속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은 상원 청문회에서

“3년이 지났는데 설치된 충전소가 7곳, 포트 수십 개에 불과하다. 이는 행정적 실패”

라고 강하게 질타한 바 있다.


용어 해설 및 제도적 배경

EV(전기차)는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차량으로, 내연기관 대비 탄소배출이 적어 각국이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GAO는 미 연방의회 직속 독립기관으로, 정부 지출의 효율성과 적법성을 감사·평가한다. GSA(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는 연방정부 건물·차량·조달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정부 소유 EV의 충전 인프라를 담당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1월 Biden 전 행정부가 2021년 서명한 ‘2030년 신차 50% EV 목표’ 행정명령을 철회했으며, 2025년 6월에는 신차 7,500달러·중고차 4,000달러 EV 세액공제도 9월 30일부로 종료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산업·시장 파급 효과

충전 인프라는 EV 확산의 ‘병목 요소’다. 시장조사기관들은 2030년까지 미국에 최소 200만 기 이상의 공공 충전 포트가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그러나 현행 설치 속도라면 목표 달성이 불투명하다. 이는 국내외 완성차·배터리·충전기 제조사에 수요 둔화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 — 예컨대 충전 솔루션 업체들이 — 은행·펀드와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구조를 짜는 과정에서 정책 일관성을 투자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이번 예산 동결이 자금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 시각

자동차·에너지 분야 분석가들은 “연방정부·주정부·민간 간 역할 분담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일례로 캘리포니아는 충전소 설계·인허가 기간이 평균 24개월에 이르고, 그중 40%가 전력회사 승인 대기 시간이라고 보고했다. 이는 퍼밋 퍼밋(permitting) 이슈로 불리는 고질적 장애물이다.

또 다른 관측통들은 세제 혜택 폐지충전 인프라 지연이 복합 작용해, 올해 미국 EV 판매 성장률이 한 자릿수대로 떨어질 가능성을 경고한다. 만약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글로벌 배터리·부품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미국이 친환경차 허브 지위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향후 관전 포인트

첫째,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예산 환수 요청을 승인할지 여부다. 환수 규모가 실제로 확정되면, 주 정부뿐 아니라 민간 사업자들도 프로젝트 전면 재검토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둘째, 16개 주가 제기한 소송 결과다. 법원이 주 정부 손을 들어준다면, DOT·DOE는 집행 절차를 다시 가동해야 하며, 반대의 경우 지연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민간 충전 기업들의 대응 전략이다. 이들은 최근 “충분한 정책 지원이 없다면, 투자를 캐나다·유럽·중동 등으로 돌릴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결국 인프라가 차세대 모빌리티 전환의 핵심 플랫폼임을 감안할 때, 연방·주·민간이 명확한 로드맵과 일정을 재정립하지 않는 한 미국 EV 시장의 성장성은 잠재적 제약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