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작은 행정명령 한 장이 9조 달러 시장을 뒤흔들다”
2025년 8월, 트럼프 행정부가 서명한 401(k) 대체투자 확대 행정명령은 미국 자본시장에 전례 없는 충격파를 던졌다. 1974년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ERISA) 제정 이후 50년간 유지돼 온 ‘저비용‧고유동성’ 중심의 퇴직연금 포트폴리오 구도가 한순간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용주·자산운용사·플랜 스폰서에게 비상장 주식, 사모대출, 부동산, 암호화폐까지 편입할 수 있는 법적 명분을 부여했다. 401(k)는 미국 노동자 6,000만 명의 노후 자산을 담은 그릇이자, 약 9조 달러(1경2,000조 원)에 이르는 거대한 자금 풀이다. 필자는 이번 조치가 향후 최소 10년간 미국 주식·채권·가상자산·사모펀드 생태계를 어떻게 재편할지 장기 시나리오 관점에서 분석한다.
1. 기존 401(k) 구조와 ‘대체투자 진입 장벽’
▲ 메뉴 구성: 2024년 말 기준, 전체 401(k) 자산의 68%가 상장지수펀드(ETF)·인덱스형 뮤추얼펀드에, 24%가 액티브 펀드에, 나머지 8%만이 커스텀 SMA·타깃데이트펀드(TDF) 등으로 배분돼 있었다. 대체투자 비중은 1% 미만이다.
▲ 수탁자 의무: ERISA는 플랜 스폰서에게 ‘참가자 최선의 이익(Sole Interest)’ 원칙을 요구한다. 높은 변동성과 불투명한 정보 공시는 수탁자 소송 위험(fiduciary litigation)을 키워 왔다.
▲ 유동성·수수료 규정: 현행 표준은 T+1 유동성·순자산가치(NAV) 일일 공시·총보수 0.1~1%다. 사모펀드의 2+20 구조, 암호화폐 수탁 비용은 이 기준을 벗어난다.
[표-1] 401(k) 전통 자산 vs. 대체자산 비교
구분 | 유동성 | 정보 투명성 | 평균 총보수 | 과세이연 혜택 |
---|---|---|---|---|
ETF/인덱스 | 매일 매수·매도 | 높음 | 0.05~0.20% | 모두 동일 |
액티브 펀드 | 일일 환매 | 보통 | 0.6~1.2% | |
사모주식/대출 | 5~10년 | 낮음 | 2%+성과 20% | |
암호화폐 | 24시간 거래 | 높음(온체인)·낮음(수탁) | 0.8~1.5%+스프레드 |
2. 행정명령의 핵심 조항과 실행 타임라인
- 90일 이내 노동부(DOL)는 ‘대체투자 안전항로(Safe Harbor)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내용: (1) 포트폴리오 내 대체자산 한도 15% (2) 3년차부터 성과·위험 메트릭 공시 (3) 수탁자 면책 조건.
- 12개월 이내 IRS·SEC·CFTC가 암호화폐 과세·회계·시장감시 공통 규칙(CONFISSA 룰북)을 제정한다.
- 2027회계연도부터 고용주는 TDF·매니지드 어카운트에 한해 사모·암호화폐 펀드 편입을 허용할 수 있다. 단계적 상한: 2027년 5%, 2029년 10%, 2031년 15%.
⇒ 정치 리스크: 2028년 대선 결과에 따라 규정이 완화·폐지될 여지가 있지만, 한 번 열린 ‘제도적 물꼬’를 완전히 되돌리긴 어렵다.
3. 장기적 충격 분석 – 5대 자금 흐름
3-1) 사모펀드(PE·VC) – 2035년 1조 달러 신규 수요
블랙스톤·KKR·아폴로 등은 이미 401(k) 전용 낮은 보수·분기 환매 모델을 개발 중이다. PwC 컨설팅 시뮬레이션(2025)은 “최대 한도 15%가 적용될 경우, 10년간 8,900억~1조1,200억 달러의 PE·VC 자금 유입”을 전망했다. 이는 현재 글로벌 PE 드라이파우더(dry powder)의 30%에 해당한다.
• 장점: 사모시장의 미실현 평가이익(UPV)로 단기 변동성 완화.
• 리스크: ① 하방 사이클에서 8~10년짜리 자금이 묶이는 잔혹한 J-커브 ② 수익 편차 확대.
3-2) Private Credit – 은행 공백 메우는 ‘연금 머니’
대형 은행의 대기업 대출 심사가 강화되면서, 중위험·중수익 사모대출 시장이 커졌다. S&P LCD 데이터: 미국 Private Credit AUM 1.7조 달러(2024) → 3.0조 달러(2030E). 퇴직연금의 장기·고정 금리 선호가 맞아떨어진다.
단, 금리 하락 국면엔 스프레드 압축·채무 불이행률 상승 이중 위험.
3-3) Real Assets – 상업용 부동산·인프라의 숨통
2022~2024년 금리 급등 후 미국 오피스·리테일 캡레이트가 150~250bp 확대됐다. 401(k) 자금이 진입하면 부채 리파이낸싱에 숨통이 트인다. ESG·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에도 그린 인프라·데이터센터 REIT 형태로 유입될 가능성.
3-4) 암호화폐 – ‘디지털 골드 vs. 고변동성’
① ETF·CME 선물·마이크로지수 파이어드릴이 끝나면 장기 현물수요가 관건. 401(k) 자금은 HODL 성향이 강해 비트코인 공급 쇼크(반감기)와 맞물려 2028년 4차 불마켓 확률을 높인다. ② 단, 네트워크 업그레이드 실패·규제 리스크 시 급락 시나리오도 컸다.
3-5) 전통 주식·채권 – 밸류에이션 프리미엄 축소
자본시장 전체적으로 경쟁적 자금 재배분이 일어나면 S&P500의 일종의 멀티플 디스카운트 압력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대체자산이 경기 침체 시 시장가치 평가 손실에 직면하면 정반대의 역류 현상이 발생한다.
4. 매크로·금융안정 관점의 중장기 리스크
- 유동성 미스매치 – 분기 환매 모델이라도 ‘은행 불안’급 리포트 발생 시 동시 환매 러시 가능성.
- 시스템 리스크 전이 – 암호화폐 가격 폭락 → 담보가치 하락 → 레버리지 연쇄 청산 시, 연금 안정성 논쟁 재점화.
- 규제 아비투러지 – 벤처 GP·크립토 거래소가 낮은 공시 기준을 악용할 소지. SEC·CFTC·DOL 3각 공조가 실패할 경우 ‘대체자산 엔론’ 위험.
5. 투자 전략 로드맵 – 고용주·참가자·운용사의 체크리스트
① 고용주(Plan Sponsor)
- ★ Fiduciary Safe Harbor 충족 여부 법률 검토
- ★ TDF·매니지드 어카운트 등 포장형 래퍼 채택: 개별코인·개별펀드 노출 지양
- ★ 교육·리스크 설명: 백테스트·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의무 공지
② 참가자(근로자)
- • 타깃데이트펀드 내 대체 비중 확인(5→15% 상한) 후 자기 위험허용도 점검
- • 암호화폐 세금(매도 시 과세) 및 Roth vs. Traditional 과세이연 시뮬레이션
③ 운용사
- • 레거시 2+20 대신 1+10, 0.75+5 등 디스카운트 구조 출시
- • T+30 주기 단순평가→월간 NAV, 분기 환매 시스템 구축
- • 가상자산 커스터디: 보험·멀티시그·온체인 감사 프로토콜 의무화
6. 한국 투자자·정책당국 현미경
국내 퇴직연금(DC·IRP 400조 원)도 2024년 디폴트옵션 도입 이후 타깃데이트펀드 비중 18%로 빠르게 늘었다. 미국 사례는 “장기 디폴트 메뉴에 대체자산을 탑재할 때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한가”라는 실험 무대가 된다. 금융위·고용부가 2026년까지 디지털자산·사모펀드 편입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미국 DOL의 Safe Harbor 모델은 벤치마크가 될 수 있다.
7. 결론 – ‘퇴직연금 3.0’ 시대, 무엇이 바뀌는가
① 구조적 자금 흐름은 전통 주식·채권에서 대체자산으로 샌드아웃(sand-out)되는 경향을 강화한다.
② 자본비용은 낮아진다. 성장성 높은 비상장 기업이 상장 시기를 늦춰 유니콘 규모를 키울수록 IPO 시장의 ‘희소성 프리미엄’은 올라갈 수 있다.
③ 규제·감독은 복잡해진다. CFTC·SEC·DOL 3국(局) 체제에 OCC(통화감독청)·NAIC(보험규제)까지 얽히면 규제 격차(reg-arbitrage)가 커질 수 있다.
④ 투자자 교육은 의무가 된다. 1,000만 명이 비트코인 가격 급락 후 은퇴 포트폴리오가 반토막 나는 시나리오를 막으려면, 리스크 파이낸스 리터러시 강화가 필수다.
⑤ 글로벌 파급 – 캐나다·호주·한국 등 자본시장 선진국도 퇴직연금 + 대체자산 모델을 단계적으로 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요약하자면, 401(k) 대체투자 개방은 ‘적립·기대수익률 제고’라는 당위와 ‘투명성·수탁 책임’이라는 불안을 동전 양면처럼 품고 있다. 제도 실험이 성공한다면 미국 자본시장은 새로운 연금 머니 사이클을 맞이하며 사모·암호화폐 시장을 제도권으로 흡수할 것이다. 반대로 통제 실패 시 퇴직자 노후불안 +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정치·경제적 후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 2025년의 작은 행정명령이 2035년 미국 경제지도에 그릴 파문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글 | 이중석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