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k)에도 가상자산 편입 길 열리지만, 본격 도입까지는 시간 걸릴 듯

가상자산과 퇴직연금의 결합이라는 말이 실제 제도권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행정명령에 서명해 401(k) 등 퇴직연금계좌의 투자대상에 비트코인·이더·솔라나 등 디지털 자산을 포함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시장은 이를 “게임 체인저”로 평가하며, 장기투자 수요 확대와 제도권 편입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2025년 8월 9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1974년 제정된 근로자퇴직소득보장법(ERISA) 체계 안에서 ‘대체투자 자산군’을 401(k) 투자메뉴로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첫 번째 대통령 직권행위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정책 신호는 커졌지만, 실제 직장인들이 버튼 몇 번만 누르면 코인을 매수할 수 있는 날은 당장 오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고용주(플랜 스폰서)가 디지털 자산을 투자옵션(investment menu)으로 승인해야 한다. 파이낸셜플래너 더그 본파스(Bone Fide Wealth 설립자)는 “지난 2022년 피델리티가 401(k)에 비트코인 펀드를 최초로 내놨을 때도, 최종 결정은 고용주의 위험선호와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에 달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행정명령 한 줄로 이 구조가 하루아침에 뒤집히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표면적으로는 대통령급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30%·40%·50%의 변동성을 감내하기 어려운 근로자에게 고용주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핵심이다.” — 더그 본파스 CFP

ERISA란?
ERISA(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는 미국에서 퇴직연금·복지플랜의 최소 요건, 수탁자의 의무, 참가자 보호조치를 규정한 연방법이다. 수탁자는 ‘참가자의 최선(sole interest)’ 원칙 아래 자산을 운용해야 하며, 과도한 위험 노출 시 법적 책임을 진다.

또 다른 CFP 플래너 프레스턴 체리(Concurrent Financial Planning)는 “메뉴가 많아질수록 근로자가 압박을 느껴 투자 자체를 포기하는 현상도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 세션이 제공돼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비율이 낮다는 것이다. 그는 “비트코인·이더·솔라나 정도를 제외한 알트코인에 대해선 투자위원회가 별도 심사를 해야 한다”며 “‘BONK’ ‘퍼지 펭귄(Pudgy Penguins)’ 같은 밈 코인이 연금계좌 명세서에 찍힐 상황은 당분간 상상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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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키퍼와 플랜 프로바이더의 의사
투자회사협회(ICI)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기준 미국 연금시장은 43조 달러, 이 가운데 401(k)가 9조 달러 규모다. 반면 전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4조 달러에 불과하다. 이 거대한 연기금 생태계에 코인을 넣을지 여부는 결국 피델리티·슈왑·뱅가드·매스뮤추얼 같은 레코드키퍼플랜 프로바이더의 선택에 달려 있다. 타이론 로스(401 Financial CEO)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을 암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며 걸어온 궤적의 연장선”이라면서도 “대형 운용사가 ‘좋다, 당장 실행하자’고 나설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이번 행정명령은 7월 통과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GENIUS Act),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프로젝트 크립토’와 맥을 같이한다. SEC는 프로젝트 크립토를 통해 증권 규제 프레임워크를 디지털 자산에 맞게 현대화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한 바 있다.

왜 지금 ‘장기투자’ 프레임이 중요한가
비트코인은 2024년 미국 최초의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투자가 유입이 가속되며 제도권 자산이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본파스 CFP는 “퇴직연금 계좌 편입이 현실화되면 투자자들이 단타 거래보다 10년·20년 시계로 비트코인을 보유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체계적으로 교육해야만 문이 조금 더 열린다”고 강조했다.

401(k)·IRA 등 미국 퇴직연금 구조
미국 근로자는 급여의 일부를 세전 또는 세후(로스) 방식으로 401(k) 계좌에 납입할 수 있으며, 고용주는 매칭 기여를 제공한다. 세제혜택과 장기간 복리효과 덕분에 가계 자산 축적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의 퇴직연금(DC·IRP)과 유사하지만, 투자메뉴 선택권이 훨씬 넓다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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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보는 리스크 관리 포인트
1) 자산 변동성 — 비트코인은 2022년 한 해에만 최고점 대비 70% 급락한 바 있다. 2) 규제 변경 리스크 — 행정부 정책과 의회의 입법 속도가 달라질 경우, 제도 정합성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3) 보관·해킹 리스크 — 401(k) 내 커스터디 인프라가 주식·채권 대비 복잡하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정치권의 최고 단계에서 가상자산을 공론화’했다는 메시지 자체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본파스는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잘 설계된다면 미래의 퇴직투자라는 문이 조금 더 열릴 것”이라고 낙관했다.


용어 설명
Stablecoin(스테이블코인) — 가격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달러 등 실물자산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가상화폐. Recordkeeper — 401(k) 참가자의 납입·잔고·배분 내역을 기록·관리하는 기관. Plan Provider — 투자 옵션, 관리 시스템, 고객서비스 등 401(k)의 전반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금융회사.

본 기사에서 언급된 기업·기관·인물의 명칭과 수치는 원문 보도를 토대로 옮긴 것이며, 추가 해석이나 과장 없이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