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과 인공지능(AI)의 결합이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Global Market Insights)는 2034년까지 전 세계 자동차 AI 시장이 연평균 43%에 달하는 고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전통적 내연기관에서 전기차(EV)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차내 소프트웨어 정의(Software-Defined Vehicle) 트렌드가 AI 수요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5년 9월 2일, 나스닥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대전환의 수혜를 가장 크게 누릴 반도체 기업으로 NXP 세미컨덕터스(NASDAQ: NXPI)가 급부상하고 있다. 업계에는 엔비디아, 퀄컴 등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반도체사가 다수 존재하지만, NXP는 ‘범퍼 투 범퍼’(bumper-to-bumper) 완성형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경쟁사와 차별화된다. 실제로 포드, 폭스바겐, BMW, 현대차 등 주요 완성차 업체가 NXP의 솔루션을 채택해 배터리 관리·차량 연결성·레이다 안전 시스템 등을 구현 중이다.
AI 기능, 이미 도로 위에 있다
많은 이들의 예상보다 AI는 현실 차량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테슬라 일부 모델과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EQS처럼 자율주행 레벨 3 인증을 획득한 차량들은 엔비디아가 설계한 ‘Drive AGX’ 컴퓨팅 플랫폼으로 주행 데이터를 실시간 연산한다. 리비안, BYD, 리오토 등 신흥 EV 브랜드도 유사한 아키텍처를 받아들이며 고속도로 파일럿, 차선 유지, OTA(Over-the-Air) 업데이트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자율주행은 전체 자동차 AI 가치 사슬에서 일부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애플 ‘카플레이(CarPlay)’는 운전자가 아이폰을 차량 인포테인먼트 화면에 연동해 시리 음성제어로 내비게이션·음악·메시지 서비스를 이용하게 한다. 제너럴모터스(GM)의 ‘온스타(OnStar)’는 차량 센서 데이터를 원격 분석해 예측 정비를 지원, 도로 위 돌발 고장과 과잉 정비 비용을 줄인다. 아직까지 모든 제조사가 이 같은 기능을 기본 탑재하지는 않지만, 소프트웨어 기반 수익 모델(Software as a Service in Car) 확장에 따라 필수 항목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숨은 강자’ NXP, 자동차 전장 누적 경험으로 승부
NXP 세미컨덕터스는 일반 소비자에겐 생소할 수 있지만, HVAC, 스마트 가전, 병원, 항공기 등 산업 전반에 칩을 공급해 온 70년 역사의 네덜란드계 반도체사다. 특히 차량용 MCU·센서·통신 칩 분야 글로벌 1위 지위를 다져 왔다. 현재 NXP 솔루션이 탑재된 차량 수는 5억 대 이상으로 추정된다.*사측 자료
EV 부문에서 NXP의 경쟁력은 배터리 관리 시스템(Battery Management System·BMS)에 집중된다. 리튬이온 배터리 팩은 온도·전압 불균형이 성능과 수명을 좌우하는데, NXP는 전압 측정·셀 밸런싱·열 제어를 통합한 ‘FS26’ 시리즈 BMS 칩셋을 공급한다. 폭스바겐은 고성능 SSP(Super-Platform) 전기차 아키텍처에 해당 칩셋을 채택, 1회 충전 주행거리를 최대 700km까지 확보했다는 자체 시험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배터리 수명 문제는 EV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통상 EV 배터리는 10~15년 또는 10만~15만 마일(약 16만~24만km) 사용 후 교체가 필요한데, 교체 비용이 5,000~2만 달러(약 660만~2,650만 원)에 달한다. BMS 효율이 향상되면 배터리 열화 속도가 늦춰져 소비자 총소유비용(TCO)이 대폭 절감된다.
“배터리 관리가 곧 EV 비즈니스의 생명선”이라는 업계 격언은, NXP의 기술 포트폴리오가 왜 경쟁 우위를 가지는지 설명해 주는 대표적 문장이다.
충전 인프라 역시 NXP의 또 다른 사업 축이다. 회사는 스마트 충전기 컨트롤러와 보안 암호화 모듈을 결합한 솔루션을 통해 AC 22kW 급속·DC 350kW 초급속 충전기를 최적화한다. 이는 EV 배터리 보호뿐 아니라, 원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결제 시스템을 안전하게 운영하는 데 필수다.
완성차·부품사 협력 구도, NXP만의 기회 창출
포드는 최근 북미 지역 EV 전략을 강화하며 NXP의 차량용 이더넷·V2X(차량 간 통신) 플랫폼을 시험 중이다. BMW는 2023년 ‘디지털 키(Digital Key)’ 시스템 구축 공로를 인정해 NXP에 우수 공급사 상을 수여했으며, 현대차도 운전자 안전을 위한 77GHz 레이다 프로젝트를 공동 개발 중이다.
대형 반도체사의 공세를 고려할 때 “시가총액 600억 달러 규모의 비교적 작은 NXP가 엔비디아·퀄컴과 맞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모듈 단위가 아닌, 시스템 단위의 통합 솔루션을 원하는 완성차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NXP처럼 센서·연산·보안·네트워크를 한 번에 제공하는 기업은 드물다.
또한 AI 기술의 조각화(fragmentation) 현상은 NXP엔 오히려 기회다. 예컨대 엔비디아 자율주행 플랫폼이 다른 AI 모듈과 호환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완성차사는 ‘자체 통합’이라는 난제를 떠안아야 한다. NXP는 이를 해결해 줄 ‘End-to-End 레퍼런스 아키텍처’를 갖추고 있어, 부품 조립·검증·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드는 시간을 단축시켜 준다.
애널리스트 시각과 장기 모멘텀
최근 사이클 둔화로 NXP의 분기 실적은 일시적으로 정체됐으나, 월가 애널리스트 다수는 여전히 ‘강력 매수’ 의견을 유지한다. 이는 단기 수급보다는 2030년 이후 EV·자율주행 대중화 국면에서 얻을 구조적 성장 동력을 더 무겁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견해: 필자는 자동차 산업의 소프트웨어·반도체화가 1990년대 PC 혁명, 2010년대 스마트폰 생태계 구축과 유사한 궤적을 보일 것으로 판단한다. 당시에도 초기 시장 점유율보다 수직 통합·플랫폼 리더십이 장기 승부를 갈랐다. NXP는 아직 대중적 브랜드 파워는 부족하지만, 오랜 차량용 반도체 노하우와 완성차 맞춤형 플랫폼 전략으로 ‘조용한 MVP’가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
또한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친환경 보조금 정책·안전 규제 강화가 이어지면서, 차량용 AI·BMS·레이다 수요는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과적으로 NXP 같은 ‘전장 토털 솔루션’ 업체에 강력한 순풍을 제공할 것이다.
낯설 수 있는 용어 해설
-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 배터리 각 셀의 전압·온도·충전상태(State of Charge)를 실시간 관리해 안전성과 수명을 최적화하는 시스템.
- Drive AGX – 엔비디아가 자율주행 차량용으로 개발한 고성능 SoC(System on Chip) 플랫폼.
- OTA(Over-the-Air) – 무선 통신망을 통해 차량 소프트웨어를 원격 업데이트하는 기술.
- V2X(Vehicle-to-Everything) – 차량과 차량·인프라·보행자 간 정보를 주고받아 사고를 예방하고 교통 효율을 높이는 통신 기술.
결론: 시장조사기관 전망대로 2034년까지 연 40% 이상 성장이 이어진다면, EV·자율주행 시대의 ‘필수 부품’인 AI 반도체 시장은 한층 치열해질 것이다. 그러나 센서→데이터 처리→전원 관리→보안에 이르는 ‘풀스택(full-stack)’ 역량을 갖춘 NXP 세미컨덕터스는 거대 경쟁사와 차별화된 통합 가치 제안으로 점유율 확대가 예상된다. 소비자 관점에서도 배터리 수명 연장·차량 안전·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편의성이라는 실질적 혜택이 입증되면, NXP의 탑재 비중은 2030년 전기차 대중화 시점에 표준 사양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