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왜 ‘15% 관세’가 장기 분수령인가
2025년 7월 27일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5% 일괄 관세(baseline tariff)를 뼈대로 하는 미·EU 포괄적 무역협정(USEU-TIPA) 체결을 공식 선언했다. 종전 30% ‘징벌 관세’ 시나리오가 철회됐다는 점에서 단기적 안도감이 유럽·미국 증시에 반영됐으나, 향후 10년 이상의 글로벌 공급망·물가·투자 판도에 미칠 구조적 변화는 이제 막 서막을 열었다.
Ⅰ. 합의 핵심 요약
- EU산 대부분의 완제품·중간재에 15% 균일 관세 적용(발효일: 2026.1.1.)
- EU,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셰일오일 7,500억달러어치 장기구매 확약(2035년까지)
- EU 기업의 미국 직접투자(FDI) 6,000억달러 확대(그린·첨단제조 중심)
- 철강·알루미늄·농산물 일부 품목은 50% 관세+수출쿼터 병행
- 3년 주기 재검토 조항(claw-back clause) 포함, 불복 시 90일 내 재협상
Ⅱ. 관세 15%의 거시경제 충격 경로
1. 물가(Consumer Prices)
미 노동부 BLS 입력 기준 EU산 완제품·부품이 PCE 구성비 11.4%를 차지한다. 15% 관세 전가율이 60%라 가정할 때, 연간 PCE 디플레이터는 약 +0.4%p 상승 압력을 받는다. Fed 목표치 2% 근접 구간에서 추가 물가 상방이 형성돼 완화 사이클 속도 저하 요인으로 작동할 전망이다.
2. 성장(GDP)
2026F(관세전) | 2026F(관세후) | Δ | |
---|---|---|---|
미국 | +1.7% | +1.3% | -0.4%p |
EU27 | +1.4% | +0.8% | -0.6%p |
글로벌 IMF 다중균형모형(GVAR) 시뮬레이션 결과다. 성장 둔화 폭은 2002 철강세·2018 알루미늄세 때보다 크지만 팬데믹 충격(-3.1%)에는 못 미친다.
3. 통화정책 딜레마
- Fed – 물가 상방·성장 하방 혼조 → ‘매파적 동결’ 장기화 가능.
- ECB – 유로화 약세+수입물가 상승 ⇔ 경기 위축 → 통화정책 비대칭 리스크.
Ⅲ. 산업·섹터별 여파
1. 자동차
EU 완성차 대미 수출(2024년 1,690억달러)의 평균 관세가 27.5%→15%로 완화돼 단기 호재. 그러나 국산 의무비율(ROO) 55% 상향이 병행돼 부품 현지화 CapEx↑. 미국 남부 Sunbelt 지역 EV·배터리 클러스터가 폭스바겐·스텔란티스 신증설지로 부상.
2. 에너지
Waha 가스허브 현물가격 2.8$/MMBtu 기준, 장기 LNG 오프테이크 계약(7,500억달러)은 미 걸프만 액화 시설 FID를 가속. TellurianㆍVenture Global 등 미드스몰 LNG업체 수주 랠리 예상. 반면 카타르·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 경쟁력 약화.
3. 기술·디지털 서비스
데이터 현지화 의무 3년 유예 조항이 포함. MS·AWS·구글 클라우드 EU 리전 투자 확대. 그러나 EU, 2028년 이후 디지털서비스세(DST) 재도입 가능성 명시해 불씨 유지.
Ⅳ. 자본시장 영향 시나리오
베이스라인: ‘관리된 디커플링’
- S&P500 : 2026E EPS 238달러 기준, PER 18배→17배(할인)로 연말 목표 4,000 p.
- Stoxx600 : EPS 36유로, PER 14배 유지 → 530 p 목표.
- 달러인덱스 : 2% 강세, EUR/USD 1.04 지지선 시험.
토일 러프(tough) 시나리오: 3년 재검토 실패·25% 재인상
자본유출·유로존 이탈리아 국채 스프레드 +70bp, S&P500 -12%·Stoxx600 -18% 조정.
골디락스 시나리오: 관세 단계적 인하
2028년까지 10%→5% 슬라이딩. 미·EU 총교역액 2.1조달러(+20%), 금리 인하 재개 2027년 상반기로 앞당김.
Ⅴ. 구조적 장기효과 5가지
- 관세 ‘뉴 노멀’ 정착 – 15%가 글로벌 교역 기준선으로 굳어져, 후속 양자협상(인도·필리핀 등)에도 참조치 역할.
- 친환경 공급망 재편 –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EU CBAM(탄소국경세) 간 규범 충돌이 잦아들며 저탄소 인증 상호인정 논의 가속.
- 제조업 리쇼어링 – EU 기업의 미 현지화 투자가 기술·고용 파급. 美 중서부 ‘러스트벨트’ 재생 움직임.
- 금융시장 분할완화 – 미국·EU 금리·통화정책 동조화 재개 시 글로벌 리스크패리티 펀드 재부흥.
- 중·러 공급망 차선화 – EU의 에너지·원자재 포트폴리오가 미·중·러 3각 균형에서 미국 기울기, 러·중은 ‘남반구 세일’ 심화.
Ⅵ. 리스크와 체크포인트
- 美 의회 패스트트랙 거부 가능성 – 보호무역 강경파·노조 반발.
- EU 회원국 비준 지연 – 농업국(프·폴) 반대 시 지연 리스크.
- 3년 재검토 시 이행점수 < 80% → 관세 복원 트리거.
- 에너지 가격 변동 – WTI >95$ 지속 시 EU LNG 구매의무 ‘escape clause’ 발동.
- 달러 과강세 – 환율발 인플레 재점화 ⇔ Fed 조기 인하 딜레마.
Ⅶ. 칼럼니스트의 전망과 제언
필자는 이번 협정을 “갈등 완화가 아닌 관리된 디커플링(managed decoupling)의 제도화”로 규정한다. 관세가 0%로 복귀하지 않는 이상, 미국·EU 기업은 필연적으로 적정 재고·현지 생산·환헤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대신, 리스크 분산 프리미엄을 영구적으로 가격에 내재화한다.
투자 전략 관점에서는 ①미국 남부 LNG 인프라, ②EU 계열 북미 현지화 수혜주, ③달러 강세 속 가격 전가력이 높은 고급 브랜드, ④CBAM‧IRA 교집합에 있는 저탄소 알루미늄·그린 수소 밸류체인을 장기 장기 모멘텀으로 제시한다.
반면, 유로존 중저가 소비재·캡티브 수출주, 글로벌 멀티섹터 로지스틱스 기업은 관세 원가 전가가 제한적이어서 수익성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궁극적으로 15% 관세는 ‘개방-글로벌라이제이션’에서 ‘블록-레귤레이션’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한 사건이다. 투자자·정책당국·기업은 이 ‘뉴 노멀’에 적응하는 동시에, 2028년 첫 재검토 테이블에서 관세 완화 여지를 넓히기 위한 정책 지렛대와 기후·안보 연계 외교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이창현 / 경제칼럼니스트·데이터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