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신형 AI 모델 R2의 공개 일정을 예정보다 늦췄다. 회사는 화웨이(華為)의 Ascend 칩을 활용한 학습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 기술적 오류를 해결하지 못해 출시를 연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5년 8월 14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딥시크는 결국 학습(트레이닝) 단계에 엔비디아(NVIDIA)의 H20 칩을, 추론(인퍼런스) 단계에 화웨이 Ascend 칩을 병행 적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세 명의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Ascend 기반 학습은 여전히 불안정해 모델 정확도와 속도가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딥시크는 당초 5월 R2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Ascend 칩 호환 문제로 일정이 미뤄졌다. 이는 중국 AI 업계가 미국산 GPU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베이징 당국은 올해 들어 자국 기업에 화웨이 칩 사용을 적극 권장했지만, 실제 개발 현장에서는 엔비디아 H20이 여전히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트레이닝 vs. 인퍼런스 — 무엇이 다른가?
트레이닝은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반복 학습해 AI 모델의 ‘뇌’를 만드는 작업이다. 막대한 연산 능력이 필요해 주로 고성능 GPU를 사용한다. 반면 인퍼런스는 학습이 완료된 모델에 질문을 던져 답변·분류·예측 등을 얻는 과정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연산 자원이 소요된다. 딥시크는 ‘학습은 H20, 추론은 Ascend’라는 이원화 전략을 통해 비용과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2024년 10월 이후 첨단 GPU 수출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했다. 반대로 2025년 7월 일부 완화 조치를 발표해 엔비디아 H20의 중국 판매를 다시 허가했지만, 베이징은 “핵심 AI 인프라에 미국산 칩을 쓰는 것은 안보상 위험”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화웨이 Ascend 라인은 미국 상무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지만, 중국 정부 및 국영 기업들은 국산화율 제고를 이유로 도입을 장려해 왔다. 그럼에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드라이버 안정성·프레임워크 최적화 측면에서 Ascend가 H20에 뒤진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AI 빅4, 여전히 H20에 쏠린 시선
딥시크의 1세대 모델 R1은 올해 초 H20 칩 기반으로 출시돼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기 바이트댄스(ByteDance), 텐센트홀딩스(Tencent Holdings Ltd, HK:0700), 알리바바그룹(Alibaba Group, NYSE:BABA) 역시 대형 언어모델(LLM)을 H20으로 학습했다. 다수 업계 인사들은 “소프트웨어 스택이 성숙한 H20을 대체하기엔 Ascend의 생태계가 아직 불완전하다”고 지적한다.
중국 정부는 8월 둘째 주 국내 AI 개발사들에게 엔비디아 칩 주문 사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며, 무분별한 외산 GPU 도입을 억제하려는 조치를 취했다. 규제당국은 “프로젝트 성격·보안 등 제반 사항”을 상세히 기술할 것을 주문했다.
한편, 중국 현지 매체들은 “딥시크 R2 모델이 수 주 내 출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미 샨하이 테크, 아이플라이텍(iFLYTEK) 등 경쟁사는 GPT-4 수준의 모델을 연달아 공개해 딥시크가 시장 주도권을 지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Ascend로 학습한 결과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우리는 품질을 포기할 수 없어 출시를 미뤘다.” — 딥시크 내부 관계자*
* 인용은 해당 발언을 전달한 관계자를 통해 확인됐으며, 실명은 비공개 조건으로 제공됐다.
이번 사태는 AI 칩 공급망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기술 격차가 교차하면서 중국 스타트업들이 겪는 난제를 보여준다. 딥시크의 행보는 향후 국내 칩 자립과 글로벌 GPU 생태계 재편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