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스테이블코인 법 시행…‘모든 보유자 실명 확인’ 규정에 업계 우려 확산

홍콩 당국이 8월 1일부로 시행한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모든 보유자에게 실명 기반 고객확인(KYC)을 의무화하면서, 업계 전반에 ‘과도한 규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당 조항이 스테이블코인 도입 속도를 늦추고, 나아가 홍콩이 기대해 온 글로벌 디지털 금융 허브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25년 8월 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세계 최초 수준’의 정교한 규제 체계를 구축했다고 자평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이번 ‘스테이블코인 조례(Stablecoin Ordinance)’는 미 달러화 등 법정통화 예치 자산을 1:1로 담보로 삼는 발행사에게 정식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홍콩 금융당국(HKMA·홍콩금융관리국)은 “초기 단계에서 자금세탁·테러자금 조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KYC가 필수”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이더리움 등과 달리, ‘항상 1달러=1토큰’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블록체인 기반이기 때문에 24시간 국경 없이 송금할 수 있으며, 전통 금융 네트워크보다 수수료와 시간이 크게 절감된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KYC가 강화되면 이런 장점이 약화될 수 있다. 홍콩과기대(HKUST) 금융연구소의 탕보(Bo Tang) 조교수는 “기업이 홍콩 규제 스테이블코인으로 국경 간 결제를 진행하려면, 수취인조차도 홍콩 내 계정을 개설해 실명 확인을 받아야 한다”며 “사용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탕 교수는 “거래가 사실상 전원 실명제로 전환되면 효율성과 프라이버시라는 스테이블코인 고유의 이점이 사라진다”고도 덧붙였다.


美 ‘GENIUS 법’보다 엄격한 규제?

일각에서는 홍콩의 KYC 기준이 미국보다 엄격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은 2025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서명으로 ‘GENIUS Act’를 제정했지만, 계정 보유자만 KYC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반면 홍콩은 “스테이블코인을 한 번이라도 보유·수취하는 모든 개인·기관”을 실명 확인 대상으로 규정했다.

홍콩 소재 암호화폐 트레이더 리키 시에(Ricky Xie)는 “해외 이용자 상당수가 이 같은 규정을 부담스러워해 홍콩산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포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계정을 가진 사람만이 아니라, 토큰을 지갑에 담기만 해도 KYC를 받아야 한다.” — 리키 시에, 홍콩 트레이더

특히 시장에서는 ‘언호스티드 월렛’(Unhosted Wallet) 이용자 대다수가 KYC를 회피해 왔다는 점을 들어, “전체 사용자층의 대규모 이탈”을 우려한다.


HKMA, “라이선스는 소수에게만”

HKMA는 첫 번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라이선스를 2026년 초에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시장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소수의 발행사’에만 허가를 내줄 것”이라고 못박았다.

PwC 아시아 디지털자산 리더 피터 브루인(Peter Brewin)은 “홍콩 규제 스테이블코인의 주수요층은 중국 본토 기업이 될 것”이라며, 이들이 무역 결제·해외 송금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올해 들어 주가 급등세를 보였던 중안온라인(ZhongAn Online)·브라이트스마트 증권(Bright Smart Securities & Commodities) 등 ‘스테이블코인 테마주’는 법안 시행 직후 급락해 이익실현 매물이 집중됐다.


전문가 시각: “규제-혁신 균형이 관건”

본지 취재에 응한 복수의 블록체인 전문가는 “홍콩이 ‘안전’을 명분으로 혁신을 제한하면, 싱가포르·두바이 등 경쟁 도시로 자본과 인재가 이동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HKMA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신뢰 확보가 궁극적으로는 더 큰 투자 유입을 불러올 것”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의 ‘실명 기반 투명성’‘익명성 기반 효율성’ 사이에서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가 향후 시장 판도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홍콩 정부가 후속 시행령·가이드라인을 통해 ‘비례적 규제’로 전환할지, 또는 현행 기조를 유지할지는 연내 발표될 시행세칙(Subordinate Legislation)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독자 참고 : KYC(Know Your Customer)는 금융회사가 고객의 신원·주소·자금출처 등을 확인하는 절차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권고사항이다. 언호스티드 월렛은 ‘개인 지갑’으로 불리며, 제3자 플랫폼의 보호 없이 사용자가 직접 암호화폐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익명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홍콩의 초강경 KYC 규정은 ‘투명성 제고’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지만, 혁신과 사용자 경험을 훼손할 위험도 동시에 안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홍콩이 규제와 혁신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가 향후 아시아 가상자산 시장의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