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정부가 핵심 광물 전략비축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강화 전략을 본격화하면서,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일본·한국·싱가포르 등 동맹국들의 관심이 뚜렷하게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미국과의 양해 합의 체결 이후 가속화된 흐름으로, 호주 정부는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희토류·리튬 등 전략 금속의 안정 공급을 뒷받침한다는 구상이다.
2025년 11월 19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돈 패럴(Don Farrell) 호주 무역·관광장관은 멜버른에서 열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회의 계기 인터뷰에서 “미국과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를 본 뒤, 유럽과 일본, 한국, 싱가포르가 이 분야에서 우리가 추진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패럴 장관은 이어 “특히 유럽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인공지능(AI)부터 방위산업에 이르는 폭넓은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10월 미국과 체결한 합의를 통해 약 85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프라인을 마련했다. 이 합의는 호주가 제안한 전략비축을 실질적으로 활용해, 희토류·리튬 등 공급 중단에 취약한 금속을 우선적으로 확보·공급하는 구조를 뒷받침한다.
중국 의존도 완화와 공급망 보강
호주는 미국의 대중 추가 관세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이 4월 일부 희토류 수출을 제한한 이후, 글로벌 공급망 취약성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점을 활용해 전략적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자원 부국인 호주는 그간 핵심 광물의 채굴에 강점을 보여왔으나, 가공·정제 단계까지 가치사슬을 확장하려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패럴 장관은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호주 전략비축에 대한 우선 접근을 의제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또한 양국 합의에는 핵심 광물에 대한 가격 하한(price floor)을 설정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됐다. 패럴 장관은 가격 하한이 없을 경우 기업들이 대규모 산업 기반을 토대로 저비용 생산이 가능한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다만, 이미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한 수요처—일본 등—는 이러한 제도에 상대적으로 덜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라면,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반대 의견을 낼 수도 있다고 본다.” — 돈 패럴 호주 무역·관광장관
일본은 호주 리나스(Lynas)에 초기 투자한 주요 파트너였으며, 리나스는 현재 중국 외 최대 희토류 생산업체로 꼽힌다. 그럼에도 패럴 장관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런 개발에 신뢰성 있게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자 한다면, 결국에는 어떤 형태로든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EU와의 포괄적 FTA 재가동… 부담 커진 협상 테이블
호주와 유럽연합(EU)은 2023년 협상이 결렬된 이후, 최근 다시 광범위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논의를 재가동했다. 호주는 관세 철폐와 쿼터 확대를 통해 농산물 수출을 늘리려 하고, 유럽은 호주의 핵심 광물 산업에 대한 접근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패럴 장관은 “여전히 같은 걸림돌이 남아 있지만, 이를 넘어설 압력은 지금 더 크다”고 말했다.
“향후 며칠이 중요한데, 우리 농가의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유럽 농가의 생계를 결국에는 위협하지 않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지 지켜볼 것이다.”
“변화한 국제 통상 환경을 감안할 때, 책임 있는 협상 주체들은 여전히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이 가능하며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핵심 개념 해설: 왜 ‘핵심 광물’과 ‘전략비축’인가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s)은 하이테크·친환경·방산 분야의 필수 원료로, 공급국이 제한적이거나 대체가 어려운 자원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풍력터빈, 정밀 유도무기, 스마트폰 등 광범위한 첨단 부품에 쓰인다. 리튬은 이차전지의 핵심 원료로, 전기차 보급 확대와 함께 전략성이 급격히 높아졌다.
전략비축은 공급 중단·가격 급등 같은 충격에 대비해 정부 또는 공공부문이 물량을 선제적으로 보유하는 정책 수단이다. 이 접근은 공급 안정성과 산업 투자 확실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호주의 제안은 단순 재고 보유를 넘어, 우선 접근권과 가격 하한을 결합해 시장 변동성 속에서도 프로젝트 금융과 가공 설비 투자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가격 하한(price floor)은 특정 자원의 시장가격이 정해진 기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로, 장기 투자 회수 가능성을 높인다. 다만, 이미 장기공급 계약이나 다변화된 조달선을 확보한 일부 수요처에는 도입 필요성에 대한 체감도가 낮을 수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 차이는 향후 다자 협상에서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CPTPP 맥락: 역내 공급망과 규범의 정합성
CPTPP는 아시아·태평양을 포괄하는 포괄적 고표준 통상협정으로, 원산지 규정·국영기업 규율·디지털 무역 등 다양한 규범을 포함한다. 멜버른 회의 계기 발언은 호주의 핵심 광물 공급망 전략을 역내 표준 및 파트너십과 정합적으로 결합하려는 의도를 시사한다※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다만, 구체적인 신규 참여국이나 개별 합류 일정에 관해 추가 사실은 제시되지 않았다.
전략적 함의: 투자 신뢰와 ‘공급중단 회피’의 균형
호주의 행보는 공급망 리스크 관리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겨냥한다. 가격 하한과 전략비축의 결합은 민간이 겪는 가격 변동성 리스크를 완화해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정제·가공 투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시장 왜곡 우려와 기득 공급망 보유 수요처의 신중론이라는 구조적 과제도 병존한다. 이러한 상반된 이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호주가 목표로 하는 채굴→가공→정제의 전 가치사슬 확장 성공 여부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EU와의 FTA 재가동 국면에서 농업시장 접근과 핵심 광물 접근 간 교환의 정교한 균형도 요구된다. 패럴 장관의 표현대로 “농가의 생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상호 접근을 넓히는 공통분모를 찾는 일은 정치·산업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난제다. 그럼에도 변화한 국제 통상 환경—특히 전략물자를 둘러싼 지정학·지경학적 긴장—을 감안하면, 공급망 복원력과 공정무역의 양립을 보여주는 합의의 유인은 과거보다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용어 브리핑
• 핵심 광물: 전략산업에 꼭 필요한 광물로, 대체가 어렵고 공급 리스크가 큰 자원군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희토류·리튬·니켈·코발트 등이 거론된다.
• 희토류: 전기차 구동모터, 풍력발전기, 정밀전자기기 등에서 자석·촉매 형태로 널리 쓰이며, 소량으로도 큰 성능 변화를 이끈다.
• 전략비축: 공급 중단·가격 급등 등 위기에 대비해 정부가 물량을 보유하는 제도.
• 가격 하한(Price Floor): 특정 자원의 거래가격이 일정 수준 아래로 하락하지 않도록 설정하는 정책·계약상의 장치.
• Antipodean: 보통 남반구, 특히 호주·뉴질랜드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관전 포인트
첫째, EU·일본·한국·싱가포르 등 이해당사국이 가격 하한과 우선 접근권을 포함한 호주 모델에 어느 수준까지 동의할지, 둘째, EU FTA 테이블에서 농업·광물을 둘러싼 교환이 어떤 절충으로 이어질지가 핵심이다. 셋째, 중국의 수출 정책과 글로벌 규제환경 변화가 향후 시장 심리에 미칠 영향도 변수다. 이들 요소는 프로젝트 파이프라인(85억 달러)의 가시화 속도와, 호주가 노리는 가공·정제 역량 내재화의 성공 가능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