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바이오보안 규제 전격 해제…미·호 무역 갈등 완화 기대

SYDNEY/캔버라 – 호주 정부가 약 18개월간 이어 온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바이오보안(biosecurity) 수입 제한을 전면 해제했다. 이로써 미국 행정부가 제기해 온 핵심 무역 현안 가운데 하나가 해소될 전망이다.

2025년 7월 23일, 로이터 통신과 호주 파이낸셜 리뷰(AFR)의 보도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내부 검토를 마치고 미국 측에 해당 결정을 공식 통보했다. 이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기 전 시행됐던 규제를 되돌리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호주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AFR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해제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우려를 표해 온 양국 간 무역 장애 요인을 제거하는 성격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호주와의 쇠고기 교역 불균형”을 반복적으로 지적하며 강경 대응을 시사해 왔다.

현재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실은 “관련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공식 논평을 보류했다. 그러나 정가 안팎에서는 바이오보안 규제 해제 결정이 조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 도입된 철강·알루미늄 50% 관세를 완화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AFR는 “앨버니지 노동당 정부가 이번 결정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고율관세의약품 200% 관세 부과 위협을 철회하도록 압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앨버니지 총리는 지난 4월 열린 대미 관세 협상 당시 “호주의 엄격한 바이오보안 기준은 결코 완화될 수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불과 석 달 만에 입장이 바뀐 셈이어서, 국내 농가·축산 업계에서는 추가적인 보완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성명을 통해 호주산 쇠고기 수입이 지난해 A$40억(미화 26억4천만 달러)으로 급증했다며 “양국 간 공정 무역을 위해 추가 조치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미 미국 내 쇠고기 생산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호주산 저지방 쇠고기가 패스트푸드 체인을 중심으로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는 점이 배경이다.


● 배경: 2003년 ‘광우병’ 사태 이후 20여 년 만의 해제

호주는 2003년 미국에서 소해면상뇌증(BSE, 일명 광우병)이 확인되자 곧바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제한했다. 소해면상뇌증은 이른바 프리온 단백질 변형에 의해 뇌 조직이 해면(海綿) 형태로 변하는 치명적 질환이다. 인간에게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으로 발병할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고강도 방역 조치가 시행돼 왔다.

현행 규정상 미국에서 ‘출생·사육·도축’ 전 과정을 모두 마친 소만 호주 통관이 가능했지만, 북미 축산업 특성상 캐나다·멕시코와의 국경 이동이 빈번해 실제 충족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호주 정부는 자국을 ‘질병 청정국’으로 유지함으로써 일본·한국 등 고부가가치 시장을 지켜 왔다. 반면 미국 외식 업계는 호주산 풀먹이 쇠고기저지방·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선호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결정을 견인한 요인이란 평가가 나온다.

환율 기준 1미국달러=1.5152호주달러로 환산된다.


● 용어와 쟁점 해설

바이오보안(Biosecurity)은 동식물·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병원체·해충·잡초를 국경 단계에서 차단하는 정책·법적 장치를 의미한다. 호주는 섬 국가로서 농축산업 의존도가 높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바이오보안 체계를 운영해 왔다.

광우병(BSE)은 ‘소해면상뇌증’의 영어 약칭으로, 비정상 프리온 단백질이 소 뇌 신경조직에 구멍을 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질환이다. 1990년대 영국에서 대규모 발생하여 국제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각국은 사료 규제·전수 검사·수입 통제 등을 시행해 왔다.


● 전망 및 시사점

무역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미·호 양국 간 상호 관세 협상의 ‘선(先) 신뢰 구축’ 장치로 기능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다만 철강·알루미늄·의약품 관세 문제는 국가 안보 및 헬스케어 정책과도 직결된 사안이어서, 호주가 기대하는 즉각적 완화까지는 상당한 협상력을 요할 전망이다.

또한 호주 내 축산단체는 “질병 청정국 지위를 지켜온 지난 20년의 성과를 한순간에 내줄 수 없다”며 수입 검사·검역 절차 강화, 이력 추적 시스템 보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어떤 보완 패키지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국내 여론의 향배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 공급 확대가 소비자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내 축산 농가 경쟁력 약화 우려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정책당국은 소비자 후생과 산업 보호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결정은 광우병 사태 이후 20여 년간 고착돼 온 미·호 축산 무역구조에 중대한 변곡점을 제공한다. 향후 추이를 가늠할 핵심 변수는 미국발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실제로 완화되는지 여부와, 호주 정부의 추가 바이오보안 대책 마련 속도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