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경쟁·소비자위원회(ACCC)가 독일계 대형 할인점 ALDI의 호주 법인에 신선농산물을 공급해 온 업체 4곳과 이들 업체의 고위 임원 3명을 가격 담합(price-fixing) 혐의로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ALDI 본사는 관련 혐의를 받지 않는다고 즉각 해명했다.
2025년 9월 1일, 로이터 통신과 현지 복수 매체 보도에 따르면, ACCC는 2018년부터 2024년까지 브로콜리·콜리플라워·아이스버그 상추·오이·방울양배추·주키니 등 주요 가정용 채소의 공급가격을 담합해 총 28회에 걸쳐 시세를 인위적으로 유지·조정한 정황을 포착했다.
※공정거래·가격 담합이란? 가격 담합은 동일 업종 사업자들이 경쟁을 회피하고 가격·수량·시장 지분 등을 비밀리에 합의해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호주 경쟁법상 최고 1,000만 호주달러의 과징금이나 해당 거래 매출액·이익 배수로 산정된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기업들이 경쟁 대신 공조하면 가격은 오르고 소비자는 피해를 입는다. 공정한 경쟁을 시도하는 다른 기업들도 불리해진다.”
— 지나 캐스-고틀립(Gina Cass-Gottlieb) ACCC 위원장
이번 소송에서 거론된 4개 신선농산물 공급사는 브라이튼 프로듀스(Brighton Produce), 그리너 필즈(Greener Fields), 서던 플레인(Southern Plains), 퀸밴 밸리(Queanbeyan Valley)로 확인됐다. ACCC는 이들이 이메일·메신저·대면 접촉 등을 통해 ▲공급가 인상 시점 ▲인상 폭 ▲공동 대응 전략 등 세부 사안을 합의했다고 주장한다.
소송 대상 기간 동안 ALDI 호주는 호주 내 슈퍼마켓 점유율 10% 내외를 확보한 3위 사업자다. ACCC는 “유통사 관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이에 대해 ALDI 대변인은 로이터와의 이메일 답변에서 “우리는 피소 대상도, 조사 대상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호주 유통업계 구조와 규제 환경
호주 식료품 시장은 ▲콜스(Coles), ▲울워스(Woolworths)가 양강을 이룬 가운데, ALDI와 코스트코(Costco) 등이 후발주자로 경쟁하는 구도다. 2024년 후반기 기준 전체 시장 규모는 약 1,200억 호주달러로 추산된다. ACCC는 시장 집중도가 높은 산업에서 담합 우려가 큰 만큼, 지난 10년간 농산물·유류·건설업 등에서 잇따라 반경쟁 행위를 적발해 왔다.
가격 담합 적발 방식
ACCC는 자체 정보제공자(whistle-blower) 제도, 공급망 회계자료 분석, 경쟁사·소비자 제보 등 다각적 루트를 통해 담합 증거를 확보한다. 이번 사건도 내부 관계자가 제출한 전자메일과 회의록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연방법원은 ▲담합 실질 발생 여부 ▲소비자 피해 규모 ▲과징금·손해배상액 산정 기준 등을 심리할 예정이다.
국제적 의미와 파급 효과
ALDI는 전 세계 18개국에 1만 3,000여 개 매장을 두고 있는 글로벌 할인점 체인이다. 따라서 공급망 윤리·가격 투명성 문제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기업 이미지에 민감한 유럽·미국 소비자층이 호주 사태를 계기로 다국적 소매기업의 공급망 관리 체계를 재평가할 수도 있다.
한편, ACCC는 2024년 3월 보고서에서 호주 주요 슈퍼마켓들이 높은 마진 폭을 유지하며 물가 상승 국면에서 이익을 확대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제소는 “물가 급등 → 담합·시세 조작 단속 강화”라는 정책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시장 반응 및 전망
관련 농산물 도·소매업체 협회는 공식 논평을 자제했지만, 일부 중소 농가 단체는 “대형 업체 간 담합으로 우리가 받는 단가가 정체됐었다“며 환영 입장을 내놨다. 법조계는 “피고 측이 담합 사실을 부인할 경우 최대 2~3년간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소송 결과에 따라 호주 내 신선식품 유통 가격 체계 전반이 투명화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전문가 시각
가격담합 규제 분야 전문가인 시드니대 로스쿨의 리사 호건 교수는 “공급사 간 담합은 소비자 가격 상승뿐 아니라 농산물 가격 변동성을 왜곡해 농민과 식당·식품 제조업체 모두에게 손실을 초래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ACCC가 이번 사건을 통해 담합 행위에 대한 실질적 처벌 수위를 상향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향후 체크포인트
① 피고 업체들의 조기 합의(plea bargain) 여부
②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가격 영향 분석 결과
③ ALDI의 공급망 실사(due diligence) 강화 방안 발표 가능성
④ 호주 의회 차원의 경쟁법 개정 논의 수위
결국, 이번 ACCC 제소는 단순히 신선채소 가격 문제를 넘어 글로벌 유통체인의 공급망 투명성과 호주 물가 안정 정책 전반을 시험대에 올려놓은 사건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