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해리 왕자(서식스 공작)와 엘턴 존을 포함한 여섯 명의 저명 인사들이 데일리 메일을 상대로 제기한 사생활 침해 소송 재판이 런던 고등법원에서 2026년 1월 19일(현지시간) 시작되었다.
2026년 1월 19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소송은 Associated Newspapers Limited(ANL)을 피고로 하는 민사소송으로, 원고 측에는 해리 왕자(Prince Harry), 음악가 엘턴 존(Elton John)과 그의 남편 데이비드 퍼니시(David Furnish), 배우 리즈 허리( Liz Hurley)와 세이디 프로스트(Sadie Frost), 인권운동가 도린 로렌스(Doreen Lawrence), 전 하원의원 사이먼 휴즈(Simon Hughes)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건 개요
이들 원고는 1993년부터 2011년 사이에 데일리 메일 및 자매지 기자들이 사적 조사원(private investigators)을 고용해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해당 행위에는 휴대전화 음성사서함 해킹, 유선전화 도청, 그리고 기만 수법을 통한 기밀 정보 입수—영문으로 ‘blagging’이라 불리는 수법—등이 포함된다. 블래깅(blagging)은 대개 거짓 신분이나 사기적 수단으로 개인 정보를 얻는 것을 의미하며, 본문 하단에 별도의 설명을 추가하였다.
원고들이 지적한 당사자와 혐의의 범위
원고 측은 일부 사건에 관여한 인물로 현직 및 전직 주요 언론인들과 신문 편집자들을 명시했다. ANL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이를 “터무니없는 비방(preposterous smears)”이라고 규정했고, 원고들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정보 유출이 쉬운 환경이었으며 친구나 지인들이 정기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제공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절차 경과
본 소송은 2022년에 정식으로 고등법원에 제기된 이후 수차례의 공판을 거쳤다. 2023년 11월 재판장 매튜 닉클린(Matthew Nicklin) 판사은 원고들의 소송이 시효(6년 기준)를 이유로 각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재판 진행을 허용했다. 또한 원고 측 변호인단은 2011~2012년에 있었던 언론 규정 공적 조사(public inquiry)에 제출된 문서들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이 조사는 루퍼트 머독 소유의 News of the World의 휴대전화 해킹 파문으로 촉발된 공분을 계기로 진행된 것이다.
다만 닉클린 판사는 2024년 10월 일부 쟁점을 제한해 해리 왕자 측이 윌리엄 왕세자의 부인인 케이트 왕세자비에 관한 주장들을 소송에 포함시킬 수 없도록 했고, 원고들의 주장도 특정 기사·사건으로 한정하도록 판시했다.
재판의 진행 방식과 증인
재판에서는 해리 왕자와 다른 원고들이 직접 증언대에 서서 ANL 측 변호인들의 신문을 받을 예정이다. 엘턴 존과 퍼니시는 원격으로 증언할 가능성이 높다. 해리 왕자는 이미 지난 2023년 6월에 데일리 미러(Daily Mirror) 발행인을 상대로 한 휴대전화 해킹 소송에서 승소하며 130년 만에 처음으로 왕실 인사가 증언대에 선 사례가 된 바 있다.
ANL 측 증인 명단에는 현·전직 편집자와 수석 기자들이 포함되며, 특히 오랜 기간 메일 계열사의 편집자로 활동했고 현재 DMG 미디어의 편집장 겸 수석편집자 역할을 하는 폴 데이커(Paul Dacre)가 초반 주요 증인으로 출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ANL 측은 재판 초반에 고위 인사들을 먼저 내세우겠다고 밝혔다.
핵심 쟁점
닉클린 판사는 재판이 특정 기사와 사건에만 집중되어야 하고, 이를 넘어선 폭넓은 언론행태 전반에 대한 제2의 공개조사(public inquiry)로 비화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했다. 법정에서 다툴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메일 계열이 고용한 조사원들이 불법적 수단을 사용했는가. 둘째, 원고들이 수년 전 이미 문제를 인지해 소송 제기 시점이 시효로 인한 각하 대상인지 여부다.
ANL은 이 사건 전반을 배우 휴 그랜트(Hugh Grant) 등 언론 비판 진영과 고(故) 자동차 경영인 겸 프라이버시 운동가 맥스 모슬리(Max Mosley) 등 반(反)언론 인사들이 고안한, 이른바 ‘Daily Mail Plan’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일부 소송은 시효 문제로 기각되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반면 원고 측 변호인인 데이비드 셔본(David Sherborne)은 메일 계열이 공적 조사에서 자신들을 “깨끗한 조직(clean ship)”이라고 선서 증언했다고 지적하며 이는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hear no evil, see no evil, speak no evil)”는 방어 전략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셔본은 ANL이 20년 간 사설 조사원에 지출한 금액이 3백만 파운드(약 400만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셔본 변호사는 많은 문서가 누락됐고(‘masses and masses of missing documents’) ANL이 송장 등을 파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추론적(inferential) 증거로 사건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기사 말미에 환율 표기가 있는데, 보도에는 1달러 = 0.7463파운드라는 표기가 있다.
논쟁의 중심이 된 조사원 가빈 버로스
사건의 중요한 변수는 사립조사원 가빈 버로스(Gavin Burrows)의 증언이다. 버로스는 많은 주장에서 핵심적 인물로, ANL은 그의 증언이 없을 경우 원고들의 주장이 상당 부분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2021년 8월 원고 측 법률팀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자신의 ANL 의뢰 업무에 유선전화 도청(bugging landlines)이 포함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ANL 측 변호인들에게 제출한 추가 진술서에서 이같은 주장을 부인하며, 자신이 해리 측에 제출한 진술서는 “타인의 도움으로 나도 모르게 준비된 것”이며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substantially untrue)”라고 주장했고, 자신의 서명이 위조되었다고 말했다. 이 엇갈린 진술은 법정에서 증언 신빙성을 둘러싼 중대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적·정책적 시사점
이번 재판은 단순히 개인의 사생활 침해 여부를 가리는 차원을 넘어 영국 언론의 취재 관행, 언론 규제의 실효성, 그리고 미디어 기업의 법적 책임 범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법원이 불법적 취재행위의 조직적 관행을 인정할 경우 언론사들의 법적·재무적 부담이 증가하고 광고주 이탈, 구독자 감소 등으로 이어져 매체의 수익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대로 ANL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원고들의 일부 주장이 기각될 경우, 언론사는 취재 관행 정당성 및 정보원에 대한 의존도를 변함없이 유지할 여지가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큰 출판사는 소송 비용과 배상금으로 단기적 현금흐름 압박을 받을 수 있으며, 법적 불확실성은 광고가격과 기업의 브랜드 가치에 하방 리스크를 제공한다. 또한 이 재판 결과는 향후 언론 규제 강화 논의(예: 보이스오브더퍼블릭·언론행동 규범 강화)에도 영향을 미쳐 미디어 관련 규제의 잠재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용어 설명
블래깅(blagging): 타인의 개인정보나 기밀을 부정한 수단으로 빼내는 행위로, 주로 거짓 신분을 사용하거나 기만적 접근을 통해 전화회사·의료기관 등에서 정보를 얻는 방법을 말한다. 법적으로는 사기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
공적 조사(public inquiry): 공공의 관심사가 높거나 중대한 사회적 문제 발생 시 정부가 설치하는 조사로, 공청회·문서 제출·증언 청취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제도 개선 권고를 내린다. 2011~12년 영국의 조사도 언론의 휴대전화 해킹 문제를 다루기 위해 진행되었다.
향후 일정 및 전망
재판은 수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양측의 주요 증인들에 대한 신문·대질이 핵심 국면이 될 전망이다. 법원의 판단은 증거 신빙성과 시효 판단에 크게 의존할 것이며, 가빈 버로스의 최종 증언 신뢰성이 판세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판결 이후에는 항소 등 추가 법적 절차가 이어질 수 있다.
요약적으로 이번 재판은 영국 언론의 과거 취재 관행을 법원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리고 대형 언론사들이 과거의 행위에 대해 법적·재무적으로 어떤 책임을 지는지를 가늠할 중요한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