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조선 협력 모색, 관세 협상 ‘키’ 되나
한국과 미국 정부가 조선업 공동 투자·협력을 중심으로 관세 협상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복수의 정부 및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양국은 미국 조선소 현대화 투자와 미 해군 함정 수리·정비 확대를 축으로 한 ‘제조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논의 중이다.
2025년 7월 24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논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후화된 자국 조선업을 부흥시켜 중국과의 격차를 따라잡겠다는 구상과 맞물려 급물살을 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한국의 첨단 조선 역량과 협력해 미국 조선산업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왔다.
중국은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세계 최대 조선국으로 부상했고, 전투함 234척을 보유해 미 해군의 219척을 앞질렀다자료: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이 같은 양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과의 협력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관세 협상 지렛대로 떠오른 조선업
김석균 前 해양경찰청장(현 한국해양전략연구소 객원연구원)은 “한국은 조선업을 관세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며 “연간 일정 규모의 미 해군 함정을 수리하거나 부분 제작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일본이 미국과 무역 합의를 타결하면서 서울에 대한 압박이 높아진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한국은 세계 2위 조선국으로, 한화오션·HD현대 등 대형 조선소가 미 해군 수리·유지보수 시장에서 실적을 쌓아 왔다. 특히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는 세계 최대 크레인 ‘Goliath’(900톤)와 초대형 독을 보유해 미 해군 수리 수주를 잇따라 따내고 있다.
실질적 협력 사례와 잠재적 장애물
한화그룹은 지난해 필리조선소(미 펜실베이니아주)를 1억 달러에 인수했고, 최근 LNG 운반선 1척을 거제조선소와 공동 건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호주 조선사 오스탈(Austal) 지분 확대를 위해 미 정부 승인도 받았다.
HD현대 역시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HII)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와 컨테이너선 공동 건조에 나섰다. 그럼에도 부품 조달 애로, 현지 인력난 등 미국 조선소의 구조적 한계가 협력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종훈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미국 조선소는 부품 수급과 숙련 인력 확보가 어려워 한국 기술력이 절실하다”면서도 “각종 미국 보호규정을 넘을 정치적 의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美 보호규정 해설: ‘존스법’과 ‘버네스-톨레프슨 수정안’
미 연방법 존스법(Jones Act)1920년 제정은 미 국내 항로(캡티지)를 운항하는 상선은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미국 국적·노무·소유 구조를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버네스-톨레프슨 수정안은 미 해군 함정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다만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존스법 예외 인정 또는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며, 모듈러 건조(선체 블록 국내 제작 후 현지 조립), 특구 지정과 같은 우회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트럼프와 한국 조선의 ‘30년 인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조선업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1998년 거제 대우조선소 방문이 있다. 당시 그는 헬리콥터로 도착해 100m 높이 크레인 위에서 조선소 전경을 둘러본 뒤 “Wonderful, Wonderful”을 연발했다고 임문규 前 대우조선 전무가 회고했다. 임 전무는 “트럼프가 그때 받은 인상이 중국 대비 한국 조선과의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시각과 전망
조선·안보 전문가들은 미 해군 수리·보수 시장이 단기간 초과수요 상태라며, “한국이 해당 분야에서 선제적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관세 협상에서 실질적 이익철강·자동차 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다만, 미국 대선 일정과 보호무역 기조가 변수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는 상황에서 ‘미국 내 일자리 창출’ 효과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을 경우, 의회·노조의 반발이 거셀 가능성도 있다.
결국 한·미 조선 협력은 외교·산업·안보 세 축이 맞물려야 성사될 전망이다.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실익이 동시에 충족될 때, 한국 조선업은 ‘관세 협상 지렛대’를 넘어 글로벌 친미 네트워크 강화라는 장기적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