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교가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I-9 고용 자격 확인 서류 제출에 응하기로 했다. 다만 학생 전용 직위에 고용된 인력의 자료는 당분간 제공하지 않기로 하면서, 대학과 연방 정부 간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025년 7월 2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하버드는 이번 달 초 미국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DHS)로부터 서류 검사 통지서(Notice of Inspection, NOI)와 소환장(subpoena)을 동시에 수령했다고 밝혔다. 해당 문서는 대학 직원 수천 명의 I-9 양식 및 첨부 증빙 서류 일체를 3영업일 내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대학은 연방 규정상 고용주가 소지한 관련 서류를 정부가 열람할 권한이 있음을 인정했다.
대학 측은 29일(현지 시각) 전 직원에게 발송한 이메일에서 “정부가 요구한 I-9(E-Verify) 양식은 미국 내에서 신규 인력을 채용할 때 신원 및 취업 자격을 확인하도록 의무화된 문서”라며, “법적 의무 이행을 위해 자료 제출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I-9는 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국(U.S. Citizenship and Immigration Services·USCIS)가 관리하는 표준 양식으로, 고용주는 신분증명서(여권·영주권·운전면허증 등)와 취업 자격 서류(시민권 증명, 비자, 취업허가서 등)를 확인·보관해야 한다. 본 서류를 3년 또는 고용 종료 후 1년 중 더 긴 기간 보관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벌금이 부과된다.※한국의 ‘사원 채용 대장’과 유사한 기능
하버드는 지난 몇 달간 연방 자금 동결 조치와 맞물려 트럼프 행정부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학교 측은 이미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연구 보조금과 장학금이 묶인 상태라며, 자금 동결 해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행정부는 I-9 제출 요구, 외부 감사 확대 등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서 친(親)팔레스타인 시위, 기후변화 대응, 트랜스젠더·다양성·형평성 프로그램이 확산되는 것은 세금으로 지원된 교육의 본래 목적을 훼손한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최근 연설 중)
트럼프 대통령은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연방 보조금 삭감을 경고하고 있으며, 하버드·컬럼비아·듀크·UCLA 등 명문대를 직접 언급했다. 학계와 인권단체는 “표현의 자유·절차적 정의·학문적 자유 침해”라며 즉각 반발했지만, 백악관은 “연방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철저한 감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올 7월 초 뉴욕타임스는 “하버드가 정부와의 갈등을 조속히 매듭짓기 위해 최대 5억 달러(약 6,800억 원)까지 납부할 의향이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는 일주일 전 컬럼비아대가 연방 조사 종결 대가로 합의한 2억 달러의 2배를 웃도는 금액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하버드가 ‘외부 모니터’ 파견 요구에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최종 합의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전했다.
듀크대·UCLA로 이어지는 조사 확대
DHS는 28일 듀크대학교(Duke University)와 소속 법학 저널(Duke Law Journal)이 소수 인종 편중 편집위원 선발 관행을 뒀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이어 이튿날, 연방 자금 1억 900만 달러를 즉시 동결한다는 통보서를 학교 측에 발송했다.
같은 날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도 연방법 ‘민권법 제6조(Title VI)’ 위반 혐의로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두 대학은 모두 “현재로선 공식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내 독자를 위한 용어 설명
I-9 양식은 한국 기업의 ‘주민등록증 사본·외국인등록증 확인’ 절차와 유사하지만, 연방 이민국이 제시한 표준 문서를 활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E-Verify 시스템과 연계해 비시민권자의 합법적 취업 자격을 즉각 확인할 수 있어, 불법 체류자 고용을 막기 위한 핵심 도구로 평가된다.
Title VI는 연방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기관이 인종·피부색·출신국가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위반이 인정되면 연방 자금 전액을 상실할 수 있다.
전문가 시각 및 향후 전망
미 교육정책 전문가는 “연방 자금 동결은 단순 재정 압박을 넘어 연구 생태계 붕괴와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버드와 트럼프 행정부가 ‘5억 달러+외부 모니터’ 중 어느 선에서 절충점을 찾느냐에 따라, 다른 대학의 대응 전략도 달라질 전망이다.
또한 I-9 양식 전수조사는 향후 사립·공립을 막론하고 고등교육기관의 고용 관행을 광범위하게 재점검하는 시험대가 된다. 한국 유학생·연구자를 포함한 글로벌 인력에게도 비자 유지·취업 절차가 한층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있어, 국내 관련 부처와 대학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