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중앙은행, 대규모 현금 인출 규제 강화…부패 척결 위한 ‘500,000페소’ 한도 신설

[마닐라] 필리핀 중앙은행(Bangko Sentral ng Pilipinas, BSP)이 돈세탁 방지와 정부의 반(反)부패 캠페인 지원을 위해 대규모 현금 인출 한도를 대폭 강화했다. 새로운 지침에 따라 500,000페소(미화 약 8,748.75달러) 이상을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동일 은행 영업일에 일련의 거래로 해당 금액을 초과할 경우, 시중은행은 ‘강화된 고객확인(Enhanced Due Diligence)’ 절차를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2025년 9월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BSP는 9월 18일 자 순환공문(Circular)을 통해 새 규정을 공표했다. 이 규정은 현금 흐름 추적 방식을 수표, 온라인 자금이체, 예금계좌 직접 입금, 디지털 결제 등으로 명확히 제한함으로써 ‘환부(還付) 불가능한 익명 현금’을 사실상 차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조치는 부패가 만연한 인프라 사업에 대한 정부 조사와 맞물려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 대통령은 특히 홍수 방재 예산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불투명 거래에 주목해 독립조사위원회를 설치했고, 이미 100개가 넘는 계좌가 동결된 상태다. BSP는 “본 개혁은 불법 활동에 현금이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며, 새롭게 대두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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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내부 위험평가 및 고객별 금융 프로필을 근거로 500,000페소보다 낮은 자체 한도를 설정할 수도 있다”(BSP 공문)

‘강화된 고객확인’이란 무엇인가

Enhanced Due Diligence(EDD)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에 따라 고위험 거래·고액 현금거래·정치적 위험 고객(PEP)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심화 실사 절차다. 신원 확인, 자금 출처 증명, 거래 목적 검증, 지속적 모니터링 등이 포함되며, 실패 시 거래 거절 또는 금융정보분석원 신고 의무가 발생한다.

정부·시민사회 움직임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부친(마르코스 시니어) 시절 계엄령 선포일인 9월 21일을 전후해 ‘부패 반대 집회’가 예고된 상황에서도 강도 높은 조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가톨릭 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역사적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대규모 시위를 준비 중이다.

시장·경제적 영향

은행권 관계자들은 현금 지출 기반 사업자와 중소기업이 단기적으로 불편을 겪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현금 기반 경제’에서 ‘디지털 결제 인프라’로의 전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 내다봤다. 2023년 BSP 통계에 따르면 필리핀 전체 결제 중 디지털 비중은 42%에 그치는데, 새 규정이 시행되면 2025년 60% 달성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 및 금액 감각

2025년 9월 19일 기준, $1 = 57.151페소를 적용할 때 500,000페소는 약 8,748.75달러다. 필리핀의 1인당 연간 GDP(약 3,500달러)의 2.5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일반 서민 입장에서는 매우 큰 현금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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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시각

본 기자는 ‘현금 의존성 축소’‘제도권 금융 신뢰 회복’이라는 두 축이 서로 맞물린 정책 효과를 주목한다. 과거 동남아 금융위기 이후 필리핀은 금융 투명성 확보를 위해 여러 차례 규제 강화를 시도했지만, 현금에 대한 문화적 선호와 낮은 금융 접근성으로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이번에는 대통령 직속 부패조사위원회와 중앙은행의 공조가 전례 없이 강력해 단기간 내 규제 실효성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과제

① 은행권 시스템 업그레이드—첨단 모니터링·알고리즘 적용으로 실시간 경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② 금융소외층 보호—고액 현금거래가 불가피한 영세 자영업자·농어민의 불이익을 막기 위한 별도 지침이 요구된다.
③ 국제공조—해외계좌·역외법인 유출 자금에 대한 동남아시아 중앙은행 협력 체제도 중요하다.


용어 설명
Bangko Sentral ng Pilipinas(BSP)는 1993년 설립된 필리핀의 독립 중앙은행으로, 물가 안정과 금융 시스템 건전성을 책임진다.
Flood Control Spending은 홍수 방지를 목적으로 한 국가·지방정부의 토목 인프라 예산을 말한다. 필리핀은 열대성 폭풍이 잦아 방재 예산 규모가 크지만, 사업 투명성 부족으로 부패 취약 영역으로 꼽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