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가 이탈리아 최대 상업은행 중 하나인 인테사 산파올로(Intesa Sanpaolo)의 장기 발행자 디폴트 등급(Long-Term Issuer Default Rating·IDR)을 ‘BBB’에서 ‘A-’로, 생존 가능성 등급(Viability Rating·VR)을 ‘bbb’에서 ‘a-’로 한 단계씩 상향 조정했다. 전망은 ‘안정적(Stable)’으로 유지됐다.
이번 조정은 피치가 지난주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상향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이며, 은행 자체의 뛰어난 체력과 자본완충력을 고려해 국가등급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2025년 9월 25일,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의 보도에 따르면 피치는 이탈리아 은행권의 영업환경 점수를 ‘bbb’에서 ‘bbb+’로 상향하면서도 “인테사 산파올로는 탁월한 시장 지배력, 제품·수익 다변화, 그리고 이른바 ‘플라이트 투 퀄리티(flight-to-quality)’ 국면에서의 선호도 덕분에 향후 국가 신용위기 상황에서도 압력을 완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플라이트 투 퀄리티’란 시장 변동성이 심화될 때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되는 자산으로 자금을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금융 용어다. 인테사 산파올로가 이러한 ‘품질 선호’ 흐름에서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점은 국내 최고 수준의 예금 기반과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 보험(Insurance) 부문 경쟁력에 기인한다.
등급 상향의 주요 근거
• 지배적 국내 프랜차이즈: 소매·기업금융 부문에서 전국적 네트워크를 보유하며, 자산관리·보험 사업도 선도적인 입지를 구축.
• 건전한 자산 건전성: 2025년 6월 말 기준 부실채권비율(NPL)이 2.5%로 유럽 평균 수준에 근접.
• 충분한 충당금: 부실채권 충당금비율이 70%를 상회, 잠재 리스크 흡수능력 확보.
• 우수한 수익성: 2025년 상반기(연환산) 위험가중자산 대비 영업이익 비율(Operating profit/RWA) 4.9% 기록.
• 견고한 자본비율: 보통주자본비율(CET1) 13.5%, 규제 최소치 대비 여유 확보.
특히 CET1 자본비율은 스트레스 시나리오에서도 꾸준히 13% 안팎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분석됐다. 다만 피치는 최근 은행의 이탈리아 국채 익스포저(Italian sovereign risk)가 다소 늘어 CET1 자본의 75% 규모까지 확대됐다고 지적했으나, 여전히 국내 은행 평균보다는 낮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추가 상향 여력과 한계
피치는 “인테사 산파올로 등급이 추가로 상향되려면 이탈리아 국가신용등급의 추가 개선, 이탈리아 은행권 전반의 영업환경 개선, 그리고 은행이 신용 사이클 전반에 걸쳐 탁월한 실적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대로 경기 급락, 자산건전성 악화, 자본비율 하락 등이 발생할 경우 등급이 재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 해설: 등급 상향의 함의
국가신용등급과 민간은행 등급은 대체로 정(正)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국가가 부실화되면 은행도 국채와 정부 지원에 의존하기 때문에 위험이 급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치는 “인테사 산파올로만큼은 도매·소매예금, 수수료 기반 비즈니스, 보험·자산관리 등 다중 수익원이 균형을 이뤄 이탈리아 주권위험이 현실화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충격 흡수가 가능하다”고 봤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차별화된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다. 은행은 지난 10여 년간 적극적인 부실채권 매각과 내부 신용평가 모델 고도화를 통해 위기 내성을 강화해 왔다. 이번 등급 상향은 ‘신용 스프레드 축소 → 자금조달 비용 감소 → 수익성 개선’이라는 선순환을 촉발할 수 있어, 향후 주가 및 채권가격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용어 해설
1 Long-Term IDR: 발행자의 장기적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피치의 대표 등급.
2 Viability Rating: 정부 지원을 제외하고, 은행 자체 신용도를 평가하는 지표.
3 CET1(Common Equity Tier 1) Ratio: 보통주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비율로,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자본지표.
시장 반응 및 전망
등급 발표 직후 유로존 채권시장에서 인테사 산파올로 후순위채권 스프레드는 약 5bp(베이시스포인트) 축소되는 등 긍정적 반응이 포착됐다. 애널리스트들은 “이탈리아 국채 금리 변동성이 여전한 만큼 스프레드 축소 흐름이 장기화될지는 미지수”라고 전했지만, 단기적으로 은행 채권·주식 수급에 우호적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피치의 상향조정은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정상화, 경기 회복세, 그리고 이탈리아 정부의 재정개선 노력이라는 세 가지 변수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4~2025년 사이 이탈리아 경제는 관광·제조업 rebound로 성장세를 이어가며 재정적자/GDP 비율을 완만하게 축소했다.
결론
피치의 이번 결정은 국가·은행 간 위험 분리가 가능하다는 신호를 시장에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이탈리아 은행권 전반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낮추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으며, 동시에 유럽 내 신용등급 피라미드 재편을 앞당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향후 경기 둔화, 지정학적 불확실성 등 복합 리스크가 재부각될 경우 등급 전망이 다시 조정될 수 있으므로 투자자는 자본·유동성 지표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종합하면, 인테사 산파올로는 국가신용 상향에 따른 우호적 영업환경 속에서 탄탄한 자본과 다변화된 수익구조를 결합해 ‘A-’ 등급을 획득했다. 이는 자금조달 비용 절감과 영업 탄력성 제고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탈리아 금융시장의 체질 개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