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런티어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초저가(ULCC) 모델’ 논쟁 격화
프런티어항공 최고경영자(CEO) 배리 비플(Barry Biffle)이 유나이티드항공 CEO 스콧 커비(Scott Kirby)의 “미국 내 초저가 항공 비즈니스 모델은 끝났다”는 발언에 대해 “That’s cute(귀엽군)”이라고 응수했다. 그는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스킵트 글로벌 포럼(Skift Global Forum) 기조연설에서 “커비가 수학에 능하다면, 현재 미국 항공 시장은 공급 과잉 상태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반박했다.
2025년 9월 17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비플 CEO의 발언은 일주일 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항공 콘퍼런스에서 커비 CEO가 “초저가 항공사 스피릿항공(Spirit Airlines)은 곧 파산할 것”이라고 단언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커비는 ‘왜 스피릿이 문을 닫을 것이라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수학을 잘한다(Because I’m good at math)”고 답했다.
■ “가라앉는 배의 마지막 생존자? 아니다”
커비 CEO는 “프런티어가 미국 최대 초저가 항공사가 되고 싶다면, 결국 ‘가라앉는 배의 마지막 남은 사람(last man standing on a sinking ship)’이 될 것”이라며 비플 CEO를 겨냥했다. 이에 대해 비플은 “그것은 마치 노드스트롬(Nordstrom·고급 백화점) CEO가 ‘나는 고객들이 월마트에서 청바지를 사도록 허용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날을 세웠다.
비플은 자사 단위비용(CASM·보유 좌석 1마일당 운임비용)이 리터당 연료비를 제외하고 7.50달러라고 강조했다. 이는 2분기 유나이티드항공의 12.36달러 대비 40%가량 낮다. 그는 “초저가 항공은 ‘어차피 여행을 포기할 수도 있는 고객’에게 항공여행 기회를 제공하고, 비행 요금은 아끼되 호텔·관광에 과감히 지출하려는 고객을 겨냥한다”고 설명했다.
◇ ULCC와 ‘기본 이코노미’의 차이, 한국어 독자에게는 생소
ULCC(Ultra-Low-Cost Carrier)는 항공권을 ‘최저가’로 제시하고, 위탁 수하물·좌석 지정·기내 음료 등 대부분 서비스에 추가 요금을 붙여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모델이다. 이에 맞서 미국 메이저 항공사들은 ‘기본 이코노미(Basic Economy)’ 요금을 도입해 같은 방식으로 가격을 낮추되, 광범위한 노선망·마일리지 프로그램을 활용해 고객을 묶어두고 있다.
◇ ‘ASM(Available Seat Mile)’이란?
ASM은 항공사가 판매 가능한 좌석(available seats)에 비행 거리(miles)를 곱해 산출하는 지표로, 항공사 공급 규모와 효율성을 가늠하는 핵심 물량 지표다. 단위비용(CASM)은 이 ASM을 분모로 삼아 총비용을 나눈 값으로, 낮을수록 비용 경쟁력이 높다.
■ 스피릿항공 ‘2년 연속 파산’ 여파…프런티어·유나이티드·젯블루의 노선 쟁탈전
스피릿항공은 지난 8월 29일 2년 연속 자발적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했다. 초저가 항공사들이 팬데믹 이후 급등한 비용, 국내선 공급 과잉, 대형 항공사와의 치열한 가격 경쟁에 직면한 결과다. 스피릿의 ‘빈자리’를 노리고 프런티어·유나이티드·젯블루(JetBlue Airways) 등 경쟁사들은 주요 노선에 신규 취항을 잇달아 발표하며 승객 확보전에 돌입했다.
커비 CEO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고객은 가성비(value)를 중시하지만, ULCC에서는 ‘가성비’를 체감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형 항공사의 기본 이코노미 상품이 “저렴한 요금과 글로벌 네트워크, 마일리지 혜택을 한꺼번에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플 CEO는 이에 대해 “초저가 항공 비즈니스는 단순히 싼 항공권을 파는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항공여행 수요를 창출한다. 이를 통해 관광·외식 등 타 산업에 소비를 유도하는 선순환을 만든다”고 반박했다.
◇ 프런티어, 적자 전환에도 2026년 흑자 자신
프런티어항공은 2분기 7,000만 달러(약 945억 원)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그러나 3분기에는 단위수익(RASM) ‘중·고 한 자릿수’ 성장세를 전망했고, 2026년 실적 개선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단위비용이 경쟁사 대비 상당히 낮은 데다, 비행기 좌석 수요 대비 공급 과잉이 해소되면 수익성은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다.” — 배리 비플 프런티어항공 CEO
프런티어는 새 A321neo 기재 도입을 지속해 좌석당 연료 효율을 20% 이상 개선하고, 부가서비스 번들 상품을 확대할 계획이다. 비플은 “우리가 새로 시도 중인 프리미엄 번들·더 넓은 좌석 옵션은 기존 모델에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며 “고객 선택권을 넓혀 추가 수익을 확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문가 시각: ‘저가항공 모델’ 사망 아닌 진화
항공산업 애널리스트들은 “팬데믹 이후 인건비·정비비 상승, 신형 항공기 납기 지연으로 ULCC들의 단기적 고비용 구조가 드러났지만, 이는 구조적 ‘사망 선고’라기보다는 ‘사업 모델 재정비’ 단계”라고 진단한다. 비용이 낮고 기재 효율이 높은 사업자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사업자는 도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북미 항공시장이 고금리·강달러 환경에서 국제선 투자 매력도가 높아지자, 대형 항공사는 국제선 증편과 프리미엄 좌석 확충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반면 중·소형 ULCC는 국내선 중심 노선망과 제한적 자본력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 이런 격차 속에서 프런티어가 주장하는 ‘초저가 모델 진화’ 전략이 효과를 보일지 주목된다.
◇ 향후 관전 포인트
첫째, 스피릿항공 파산 절차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둘째, 프런티어의 단위수익 개선 목표가 현실화될지, 셋째,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메이저 항공사의 ‘기본 이코노미’ 확장 전략이 가격 결정을 어떻게 재편할지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또한 미 연방항공국(FAA)의 기재 인증·슬롯 배분 정책도 공급 과잉을 조정할 선제조건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치권·소비자단체의 항공권 가격 투명성 규제 강화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별도 수수료(ancillary fee)에 의존하는 ULCC들의 수익 모델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 이 기사는 CNBC가 2025년 9월 17일(그리니치표준시) 보도한 ‘Frontier CEO fires back at United CEO declaring discount airline model dead’를 바탕으로 작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