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2027년까지 연금개혁 중단…단기 정치안정 도모하지만 재정 부담 여전

프랑스 정부가 2027년까지 논란이 뜨거웠던 연금개혁 시행을 전격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즉각적인 사회·정치적 갈등을 완화할 잠재력이 있으나, 구조적 재정 문제와 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라는 근본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5년 10월 18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세바스티앵 르코르뉴 프랑스 총리는 국회 총정책 연설에서 연금개혁 중단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는 소수 정부가 제출할 2026 회계연도 예산안 통과를 위해 사회당(PS)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절박한 정치적 현실을 배경으로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사회당은 2023년 통과 이후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야기했던 연금개혁안을 ‘사회적 불안의 핵심 원인’으로 규정해 왔다. 당 지도부는 “개혁 보류 없이는 예산안에 단 한 표도 던질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고, 르코르뉴 총리는 이를 수용함으로써 두 차례의 불신임안 표결을 무사히 넘길 가능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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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이번 조치로 2026년 약 4억 유로, 2027년 약 18억 유로의 추가 재정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UBS는 “단기적으로는 국채 시장 변동성을 완화해 총리가 불신임을 피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근본적 재정 체질 개선이 지연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49.3조를 쓰지 않겠다”는 청와대격 발언도 주목된다. 프랑스 헌법 49조 3항(Article 49.3)은 정부가 예산안을 포함한 법안을 국회 표결 없이 자동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르코르뉴 총리는 “민주적 정당성 회복을 위해 49.3조를 더는 사용하지 않겠다”면서도 “긴축(오스테리티) 정책 역시 없다”고 선언해 야당과 노동계에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UBS는 “프랑스의 재정 전망은 여전히 팽팽하게 조여진 고무줄”이라고 표현했다. 정부는 2026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5% 아래로 끌어내리겠다고 공언했지만, UBS는 “현 정책 기조가 유지될 경우 적자는 5%를 상회하고, 국가부채는 현 113%에서 매년 2~3%포인트씩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었다. 프랑스 10년물 국채(OAT)와 독일 분트·이탈리아 BTP 간 금리 스프레드는 발표 직후 소폭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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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S는 “추가 축소 여력이 제한적으로 남았지만, 국내외 투자자들은 정치 불확실성이 소비·기업 심리를 이미 훼손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OAT 스프레드가 무엇인가?
OAT(Obligations Assimilables du Trésor)는 프랑스 재무부가 발행하는 중·장기 국채다. 독일 국채(분트) 또는 이탈리아 국채(BTP)와의 스프레드는 국가 신용위험을 가늠하는 대표 지표로 활용된다. 스프레드가 좁혀지면 상대적으로 프랑스 위험 프리미엄이 낮아졌다는 뜻이고, 반대로 벌어지면 위험이 커졌다는 의미다.

투자 전략 측면에서 UBS는 단·중기물 프랑스 국채와 중간 Duration(만기)의 투자등급(IG) 회사채에 우호적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내 소비·부동산 경기에 민감한 프랑스 내수주는 2027년 대선 전까지 지속적인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 시각: “연금개혁 가시권 후퇴, 그러나 지연 비용은 더 커진다”

본 기자는 이번 조치를 “정치적 타협을 위한 전략적 후퇴”로 평가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고령화·경쟁력 저하라는 구조적 한계가 남아 있어, 결국 개혁은 불가피한 숙제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노동 참여율·생산성 개선 없는 연금 재정 안정 논의는 공허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개혁 피로도 완화’ 전략이 오히려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우려도 상존한다.

또한 49.3조 포기 선언으로 구축된 ‘대화의 창’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 여부도 변수다. 2027년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합의 정치 동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고, 극우 또는 극좌 포퓰리즘 정당이 재정·통화정책 논의를 장악할 경우 국채시장은 다시 요동칠 공산이 크다.

결론적으로 연금개혁 중단은 단기적 정치 휴전일 뿐, 재정을 둘러싼 구조적 시한폭탄 문제를 잠재우지 못한다. 시장참여자들은 프랑스 국채 수익률 곡선의 평탄화 여부, 신용평가사 등급 전망, 그리고 2026 예산안 논의 과정에서의 여야 공방을 지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