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발(Reuters) —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의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이 단행되면서, 임명된 지 불과 며칠 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신임 총리가 첫 번째 예산 협상부터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노동계는 긴축 재정을 막겠다며 대규모 총파업을 예고했고, 재계는 부유층 증세 움직임에 집단행동을 경고하고 있다.
2025년 9월 14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피치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국가채무 확대를 이유로 프랑스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는 프랑스가 기록한 최저 등급이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년 새 다섯 번째 총리를 지명한 직후 발표돼 정치‧경제적 충격을 증폭시켰다.
■ 신용등급이란?
국가나 기업이 채권 발행 시 원리금을 상환할 능력을 알파벳 기호로 평가한 등급이다. ‘AAA’가 최고, ‘D’가 최저이며, 한 단계 하락만으로도 차입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 *투자자 위험지표*
피치의 이번 결정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예상됐으나, 예산 초안 제출 시한과 맞물리며 파장이 커졌다. 르코르뉘 총리는 오는 10월 7일(최대 13일까지 연장 가능)에 2026 회계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현재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는 5.4%로 유로존 최악 수준이다.
“투자자들은 프랑스가 지출을 통제하길 원한다. 그러나 의회 다수파가 불분명한 현실에서 긴축만으로는 정치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 파리 소재 자산운용사 애널리스트 발언(기사 내 해설)
노동계 VS 재계: ‘이중 전선’
르코르뉘 총리는 길거리에서도 압박을 받고 있다. 노총들은 9월 18일(목) 전국 동시 파업을 선언하며 “적자 축소를 위한 복지 삭감 반대”를 외쳤다. 반면, MEDEF(프랑스 기업연합) 회장 파트릭 마르탱은 “부유층 증세가 추진된다면 대규모 시위를 조직할 것”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야당도 삼분된다. 사회당은 초고액 자산가 대상 ‘부유세’를 조건으로 정부 불신임안 불참을 검토 중이지만, 공화당층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세율을 더 올리면 경제가 질식한다”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 총리의 첫 메시지: ‘공휴일 삭감은 폐기, 지방 분권은 확대’
르코르뉘 총리는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전임 총리가 추진했던 공휴일 2일 축소안을 철회하고, 자치단체 권한 강화 및 행정 절차 간소화를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향후 예산안이 나의 모든 소신을 담을 수 없다, 어쩌면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토로하며, 사회당‧녹색당‧공산당과의 “솔직하고 고차원적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파·극우의 공세
보수 공화당의 브루노 르타이요 임시 대표(내무장관직에서 물러날 예정)는 “사회당 요구 수용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발언했다. 극우 국민연합(RN) 지도부도 맹공을 가했다. 마린 르펜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조기 총선 시행을 재차 요구했고,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는 “과거 정책과 결별 못 하면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하겠다”고 경고했다.
■ 프랑스 국채 시장이 보내는 시그널
신용등급 하향 직후 10년 만기 프랑스 국채 금리는 장중 15bp(1bp=0.01%p) 상승해 3.35%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 상승은 정부가 자금을 조달할 때 부담해야 할 이자가 커짐을 뜻한다. 르코르뉘 총리는 “예산은 반드시 건전한 재정 궤도를 보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A+’ 신용등급은 여전히 투자등급 상단이지만, 추가 하향 우려가 남아 있어 예산 신뢰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 전문가 시각 & 전망
필자 분석으로는, 현 시점에서 프랑스가 재정적자를 단기간에 3% 이하로 낮추기는 정치‧사회 여건상 쉽지 않다. 다만 유로존 차원의 ‘재정준칙’ 개편 논의와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동결 기조가 지속된다면, 파리 정부는 ‘점진적 지출 구조조정 + 선택적 증세’라는 절충 해법으로 시장을 달랠 공산이 크다. 결국 핵심은 의회 설득력과 거리 민심 관리로 귀결된다.
“총리 교체가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 신용시장에 중요한 것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다.” — 프랑크푸르트 소재 국제투자은행 채권전략가
결론적으로, 피치의 등급 강등은 르코르뉘 총리에게 ‘정치‧경제의 복합 퍼즐’을 던졌다. 10월 예산안이 투자자, 노동계, 재계, 야권을 동시에 납득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현 정부가 ‘안정적(outlook: stable)’ 전망을 지킬 수 있을지가 향후 유럽 재정정책 논쟁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