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에 걸린 KKR 로고는 이제 미국·유럽을 넘어 아시아 시장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상징이 됐다. 글로벌 사모(私募) 대출, 즉 프라이빗 크레딧(private credit) 운용사들이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7월 24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전통적 은행 대출 감소로 발생한 자금 공백(funding gap)이 커지면서 대체 금융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신흥시장과 선진시장이 혼재하는 APAC의 자본시장 구조 변화, 그리고 높은 경제성장률과 맞물려 대규모 자본 이동을 촉발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아시아는 부인할 수 없는 프라이빗 크레딧 성장의 핫스폿“이라고 평가한다.
Standard Chartered 글로벌 프라이빗뱅크의 니컬러스 청(Nicholas Cheng) 그룹장은 “빠르게 커지는 자금 공백, 급속한 경제 성장, 차입기업의 고도화, 규제 진화가 이 지역을 비옥한 토양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아시아 AUM, 2000년 ‘제로’에서 2024년 623억 달러로 급증
시장조사업체 피치북(PitchBook) 자료에 따르면, 2000년 ‘0’ 수준이던 아시아 프라이빗 크레딧 운용자산(AUM)은 2024년 1분기 623억 달러(약 85조 원)로 늘었다. 2017년 343억 달러에서 7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성장한 셈이다.
이러한 급성장세를 발판으로, 글로벌 대형 운용사들도 본격적으로 아시아 진출 속도를 높이고 있다. Apollo Global Management는 최근 싱가포르 정부의 10억 달러 규모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 운용사로 선정됐다. Hillhouse Investment는 일본에서 연간 10~20억 달러를 투입하고, 현지 인력을 두 배가량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유럽 대비 조성(調成)이 덜 된 아시아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에서 높은 수익률(yield)을 노리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은행 의존도 높은 아시아, ‘미드마켓’ 공백 노린다
KKR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는 기업 대출의 79%를 은행이 담당한다. 이는 유럽 54%, 미국 33%와 대비된다.
피치북의 카일 월터스(Kyle Walters) 애널리스트는 “국가가 성장할수록 중견기업(mid-sized companies)이 늘어나지만, 그들이 은행 대출에 접근하기 어려워진다”며 “프라이빗 크레딧이 그 틈을 메운다”고 설명했다.
또한 월터스는 “성숙한 미국 시장이 포화되면 사모펀드(PE)와 프라이빗 크레딧 매니저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아시아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J.P.모건은 특히 최근 3년간 아시아 고수익 공모채(high-yield bond) 시장이 디폴트와 투자 심리 위축으로 사실상 멈춘 상황을 지적했다. 제도권 자금이 말라붙자, 맞춤형·복합구조 대출을 제공하는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가 빠르게 공백을 채웠다는 분석이다.
• 용어 브리핑: 프라이빗 크레딧이란?
프라이빗 크레딧(private credit)은 은행이나 공개 시장(채권 발행)을 거치지 않고, 사모 형태로 기업·기관 등에 대출을 제공하는 투자 전략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와 구조화된 조건을 통해 투자자는 수익을, 차입자는 자금 조달 유연성을 확보한다. 대신 유동성·정보 비대칭·법적 집행 리스크가 뒤따르므로 전문 운용사와 정교한 실사 과정이 필수다.
주요 국가 및 섹터: 인프라·테크·재생에너지에 ‘큰손’ 몰린다
인도와 동남아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중산층 확대로 자본 유입이 활발하다. 싱가포르는 여전히 금융 허브 역할을 하며, 인도네시아·베트남이 ‘핫스폿’으로 부상 중이다. 반면 일본·한국은 안정적이지만 은행 우위가 여전해, 미드마켓 특화 기회가 존재한다.
중국은 거시적 역풍에도 불구하고 일부 은행 디레버리징(deleveraging)으로 틈새 수요가 발생했다. KKR 아시아 크레딧 총괄 디앤 라포시오(Diane Raposio)는 “견실한 현금흐름과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춘 중국 기업에 한해, 고도의 선별적 투자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호주는 성숙한 법·회계 인프라를 기반으로 고도화 전략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섹터 측면에서는 인프라·기술·재생에너지가 핵심 테마다. SeaTown Holdings International의 에디 옹(Eddie Ong) 부/CIO는 “신흥 아시아에서는 여전히 재생에너지, 유료도로, 데이터센터 등 기간시설을 대규모로 지어야 한다”며 인도·호주·홍콩을 집중 노린다고 언급했다.
리스크와 성장 전망: 법·통화·투명성 장벽을 넘어
그러나 아시아는 각국 법제·규제·통화 체계가 천차만별이다.
니컬러스 청은 “담보권 행사나 보고 기준이 서구보다 뒤처져 집행·투명성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월터스도 “변동성 높은 외환시장을 고려해 헤지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KKR의 라포시오는 “아시아는 전 세계 GDP 성장의 약 60%를 차지하지만, 신용 자산 비중은 5% 미만”이라며 “약 7,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상당한 성장 궤적(significant trajectory)’을 확신했다.
Standard Chartered의 청 역시 “두 자릿수 성장률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 대출 위축, 규제 다변화, 투자자 인식 개선이 맞물려 프라이빗 크레딧의 제도권 편입이 가속화될 것이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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