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통적 동맹·경쟁국을 가르는 독특한 통상‧안보 전략으로 다시 한 번 국제사회를 흔들고 있다. 러시아에는 극진한 환대를, 중국에는 관세 유예를, 반면 오랜 파트너인 인도에는 고율의 ‘징벌 관세’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2025년 8월 21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 말부터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인도에 대해 25%의 2차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19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인도가 값싼 러시아산 원유를 통해 부당이익을 얻고 있다”며 추가 관세 인상을 경고했다.
같은 날
“인도는 서방의 대(對)러 제재를 무력화하며 러시아 원유의 글로벌 청산소 역할을 하고 있다”
는 백악관 무역고문 피터 나바로의 기고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렸다. 그는 “인도가 원유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재수출하며 러시아 경제에 달러를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표적 제재’ 반발…“미국 자신도 러 무역한다”
인도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뉴델리는 “시장 안정을 위해 러시아산 원유를 사라”는 것이 미국 측 요청이었다며, 미국과 EU 역시 핵연료·팔라듐·비료 등 러시아산 전략물자를 여전히 수입한다고 맞받았다. 실제로 2024년 미·러 양자 교역액은 52억 달러로 2021년(360억 달러) 대비 급감했지만, 완전 중단은 아니었다.
반면 인도-러시아 교역은 2025회계연도(2024.4~2025.3) 687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인도는 2025년 상반기 하루평균 160만 배럴의 러시아산 원유를 들여와 2020년(5만 배럴) 대비 32배 급증했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관세 외교’를 두고 “원칙보다 ‘힘의 레버리지’에 초점을 맞춘 현실주의”라고 평가한다.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시아연구소 베르트 호프만 교수는 “세계는 이미 트럼프식 ‘즉흥적·모순적’ 정책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푸틴에겐 레드카펫…‘림진 동승’으로 과시된 밀월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일주일 전 10년 만에 미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레드카펫으로 영접했고, 자신의 전용 의전 차량에 함께 탑승해 회담장으로 이동하는 파격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회담 후 푸틴은 “우크라이나 평화는 러시아의 ‘정당한 안보 우려’가 해소돼야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협상단을 이끈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워싱턴에서의 대화는 중요한 외교의 날이었다”고 평가했지만, 구체적 휴전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푸틴을 달래는 동시에 인도에 압박을 가해,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휴전 테이블로 끌어내려 한다”(매트 거트켄, BCA리서치)고 분석한다.
중국에는 ‘관망 모드’…희토류·정상회담 카드
러시아산 원유 최대 수입국인 중국은 이상하게도 2차 관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중국에 즉각 보복관세를 검토하지 않는다. 2~3주 후 상황을 보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올해 상반기 러시아 원유 수입량이 전체 러시아 수출의 46%를 차지했다.
베센트 장관은 “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부터 대규모로 러시아 원유를 사왔다”며 ‘사안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장기 통상합의를 성사시키려는 트럼프의 전략적 유보라는 관측도 나온다(스티븐 올슨,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
중국은 또한 ‘희토류 지배력’을 협상 지렛대로 삼아, 4월 부과된 고율 관세 일부를 5월 상호 협의 과정에서 유예시켰다. 희토류는 전기차 배터리·미사일 유도장치 등 핵심 산업·군수재에 필수적인 17개 광물을 말한다※Rare Earth Elements.
美, ‘농산물 장벽’도 불만…트럼프의 선거 계산
싱가포르 난양공대 RSIS의 케빈 천은 “트럼프는 인도가 콩‧옥수수 등 미국 농산물 관세장벽을 유지하는 데도 불만”이라며, ‘쌍끌이 압박’으로 통상협정 타결을 노린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싱크탱크 윌슨센터 마이클 쿠겔먼은 “트럼프는 인도-파키스탄 휴전 중재 공로를 모디 총리가 가로챘다고 여전히 앙금을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루 톰프슨 RSIS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관세정책의 본질은 외교 원칙이 아닌 국내 감세 재원 확보”라며, “결국 2026년 중간선거를 겨냥한 선거용 메시지”라고 진단했다. 이는 ‘관세로 압박 → 양보 이끌어내기 → 성과 과시’라는 전형적 패턴이라는 설명이다.
용어·배경 설명
2차 관세(Secondary Tariff)는 제3국이 제재 대상국과 거래할 경우 부과하는 벌칙성 관세를 뜻한다. 또 희토류는 지각에 소량 포함된 17개 원소로, 정제·가공 난도가 높아 공급망 리스크를 결정짓는 전략자산이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안보, 경제, 선거 전략을 복합적으로 얽어 ‘차별적 관세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 향후 중국까지 2차 관세 대상에 포함될 경우 원유 시장과 글로벌 공급망에 파급적 변동성이 예상된다. 국내 투자자와 수출기업은 미·중·인 3국 간 통상협상 동향과 러시아산 에너지 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