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윤리적 전자기업 페어폰(Fairphone)이 미국 시장에 공식 진출한다. 회사는 먼저 수리가 가능한 헤드폰을 선보여 시장 반응을 살핀 뒤, 스마트폰 출시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레이먼트 판 에크(Raymond van Eck)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계획을 공개하며, 미국 내 전략적 진입의 배경과 기대를 설명했다.
2025년 11월 5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미국에서 확산하는 ‘수리할 권리(right-to-repair)’에 대한 소비자·입법 수요를 정면으로 겨냥한 행보다. 판 에크 CEO는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장기 관점에서 총소유비용(TCO)을 따지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어, 페어폰의 수리성과 지속가능성이 미국 시장에서 통할 것으로 내다봤다.
핵심 발언
“우리의 전략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설계됐다. 관세라는 ‘날씨’는 매일 바뀔 수 있지만, 미국에서의 수요 시그널은 분명하다. ‘수리할 권리’ 입법이 전국적으로 진전되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 레이먼트 판 에크 페어폰 CEO
맥락에서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다수 주(州)가 스마트폰부터 트랙터에 이르기까지 수리가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제품에 대한 반발을 배경으로, ‘수리할 권리’ 법을 제정했다. 이러한 흐름은 제조사가 수리용 부품·매뉴얼·진단 도구를 보다 개방하도록 압력을 높였고, 지속가능한 소비와 순환경제를 중시하는 소비자층의 선택지를 넓혔다.
페어폰은 여타 전자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생산하지만, 광산에서 칩까지 전 과정에서의 지속가능성과 공급망 추적성(traceability)을 강조해 왔다. 판 에크 CEO는 이러한 접근이 부품 부족 국면에서도 리스크를 식별·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공급망의 투명도를 높여 윤리적 조달을 뒷받침하고, 장기적 제품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실적 지표에 따르면, 페어폰은 2025년 3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매출 61% 증가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디바이스 판매는 61%, 오디오 제품은 40%, 교체용 부품은 41% 늘었다고 회사는 밝혔다. 해당 수치는 페어폰의 수리 가능성 중심 제품 전략이 상업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내 목표와 관련해, 회사는 올해 미국에서의 오디오 제품 판매량을 작년 유럽 판매 실적과 최소한 같은 수준으로 달성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 판매 목표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 34% 관세가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소비자 가격 책정과 유통 전략에 직·간접적 변수가 된다.
회사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인 ‘페어폰 6’는 총 8년의 지원을 약속하고, 5년 보증과 2033년까지의 교체 부품 공급을 제공한다. 이는 긴 수명주기와 장기 유지보수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제안으로, 폐기물 저감과 소유 비용 절감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겨냥한다.
다음 단계로, 페어폰은 아마존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오디오 라인업을 판매하면서 미국 시장에서의 교두보(beachhead)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판 에크 CEO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휴대전화의 90% 이상이 이동통신사 채널을 통해 유통된다고 설명하며, 이에 맞춰 스마트폰 론칭을 신중히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용어 풀이설명
– 수리할 권리(right-to-repair): 소비자가 제품을 손쉽게 수리할 수 있도록 제조사가 부품·수리 매뉴얼·진단 도구 등을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원칙 혹은 법·정책을 뜻한다. 이는 제품 수명 연장과 전자폐기물 감축에 기여한다.
– 총소유비용(TCO): 구매가뿐 아니라 유지보수·부품교체·업그레이드·폐기 비용까지 포함한 총비용을 의미한다. 수리가 쉬울수록 TCO는 낮아질 수 있다.
– 공급망 추적성(traceability): 부품과 소재의 출처와 이동 경로를 투명하게 추적하는 능력이다. 윤리적 조달과 리스크 관리에 핵심적이다.
– 교두보(beachhead): 낯선 시장에 진입할 때 초기 거점을 확보해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전략적 접근을 가리킨다.
해설 및 분석
페어폰의 미국 진출 전략은 관세라는 외부 변수와 채널 구조의 진입 장벽을 동시에 고려한 위험 분산형 접근으로 해석된다. 먼저 오디오 제품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고, 소비자 피드백과 규제 환경을 면밀히 확인한 뒤 스마트폰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시험대(entry test) 성격이 강하다. 특히 34%의 관세 부담은 가격 경쟁력에 불리하지만, 장기 지원(8년)·5년 보증·2033년까지의 부품 공급이라는 가치 제안은 가격보다 내구성과 유지비를 중시하는 수요를 공략한다. 이는 ‘수리할 권리’ 법제화의 흐름과 맞물려 차별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미국 휴대전화 유통의 90% 이상이 이동통신사 중심이라는 구조는, 소매·온라인 직판 비중이 높은 유럽과 비교해 별도의 협상·인증·현지화 과정을 필요로 한다. 페어폰이 스마트폰 론칭을 ‘신중히’ 준비한다고 밝힌 대목은, 단말 보조금 체계·네트워크 호환성·사후지원 체계 등 복합 요소를 면밀히 점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마존 파트너십을 통한 오디오 판매는, 복잡한 통신사 벽을 통과하기 전 브랜드 신뢰와 고객 서비스 역량을 검증하는 합리적 단계다.
공급망 관점에서, 페어폰의 윤리적 조달과 추적성 중시는 부품 부족 같은 외생 변수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는 품질 관리와 교체 부품의 안정 공급에도 유리하게 작용해, 장기 지원 약속의 실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동시에, 이러한 지속가능성 내재화는 미국 내 친환경 소비 성향과 기업 책임 요구에 부합해 브랜드 프리미엄을 형성할 수 있다.
소비자를 위한 포인트
미국 소비자는 아마존을 통해 먼저 페어폰 오디오 제품을 만나게 된다. 관세 34%는 단기적으로 가격에 반영될 수 있으나, 수리 용이성·부품 접근성·장기 보증이 총소유비용 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할 만하다. 스마트폰 출시와 관련해 회사는 통신사 채널 중심 시장 구조를 감안해 출시 시점을 신중히 조율 중이라고만 밝혔으며, 구체적 일정이나 판매 목표는 공개하지 않았다.
요약하면, 페어폰은 수리성과 지속가능성이라는 핵심 역량을 내세워 미국의 ‘수리할 권리’ 흐름과 맞물린 수요를 공략한다. Q3 2025 매출 61% 성장과 오디오·부품 부문 호조는 전략 실행의 기반을 보여준다. 이어질 스마트폰 상륙은 관세·통신사 유통이라는 과제를 동반하지만, 페어폰 6의 8년 지원·5년 보증·2033년 부품 공급은 차별화된 가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미국 진입은 윤리적 전자제품과 순환경제가 주류 시장에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가늠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