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미·EU 관세 합의로 미국 판매 가격 프리미엄 축소 여력

【밀라노】 세계적인 럭셔리 스포츠카 제조업체 페라리(Ferrari N.V.)가 올해 4월 미국 시장에 도입했던 가격 프리미엄을 일부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유럽연합(EU)과 미국이 합의한 새로운 15% 자동차 관세가 발효될 경우를 전제로 한 조치다.

2025년 7월 3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페라리는 관세가 낮아지면 미국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가격도 완화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회사 측은 4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부과한 27.5%의 고율 관세를 반영해 일부 모델에 최대 10%까지 인상한 판매가를 책정했으나, 새 관세 시행에 맞춰 가격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국과 EU는 지난 27일(현지시간) 광범위한 무역 협상 끝에 EU산 자동차 관세를 27.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합의했다.

“새 관세 체계가 발효되는 즉시 현재의 상업 정책을 조정하겠다”

며 베네데토 비냐(Benedetto Vigna)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콜에서 말했다.


실적·가이던스 — ‘더 강한 확신’

페라리는 관세 리스크 완화에도 불구하고 2025년 가이던스만 ‘강화된 확신(stronger confidence)’을 표시하고, 연간 실적 전망치는 추가 상향하지 않았다. 이날 밀라노 증시에서 페라리 주가는 장중 한때 11% 급락했다. 한 밀라노 기반 트레이더는 “예상 가능한 수준의 실적 발표 이후 차익 실현 물량이 집중됐다”고 전했다.

2분기 페라리의 순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 증가한 17억8,700만 유로를 기록해, 로이터가 집계한 애널리스트 컨센서스(18억2,000만 유로)에는 소폭 미달했다. EBITDA는 6% 늘어난 7억900만 유로를 달성해 시장 전망치(7억700만 유로)를 소폭 상회했다.

참고로, EBITDA는 ‘Earnings Before Interest, Taxes, Depreciation and Amortisation’의 약자로, 불확실성이 큰 금융·회계 변수를 제외한 기업의 핵심 현금창출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왜 관세가 중요한가?

미국은 페라리의 최대 단일 시장 중 하나다. 이전 27.5% 관세는 고가 스포츠카 가격 변동에 민감한 고객층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페라리는 관세 인상 리스크를 흡수하기 위해 마진 50bp(0.5%p)를 미리 반영했지만, 이번 합의로 해당 부담이 제거된다.

관세 인하가 적용되면, 회사는 4월 도입했던 최대 10%의 판매가 인상을 재조정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비냐 CEO는 “2분기 동안 미국에 판매된 차량 대부분은 관세 인상 이전에 선적된 물량이어서 실제 가격 인상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로드맵 — ‘올-일렉트릭’ 페라리의 첫 드라이브

비냐 CEO는 내년 출시 예정인 페라리 최초의 순수 전기차를 직접 시승해 봤다고 공개했다. 오는 10월 열릴 미디어·애널리스트 행사에서 해당 모델이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다.

미 증권사 씨티(Citi) 애널리스트들은 “페라리 2분기 실적은 ‘양호’”라면서도, 하반기 판매 대수·평균판매가격(ASP) 성장 둔화를 관전 포인트로 제시했다. 그들은 “시장이 둔화되는 환경에서 페라리가 ASP를 얼마나 유지 또는 확대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전망 — 장기 주문·마진 방어

페라리는 2025년 EBITDA를 최소 26억8,000만 유로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유지했다. 회사의 수주잔고는 2027년 초까지 확장돼 있어 단기 수요 변동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실적 방어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고가 모델 ‘SF90 XX’·‘12Cilindri’ 라인업은 물론, 맞춤형(personalisation) 옵션 확대가 ASP와 마진을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개인화 옵션은 소비자가 차량 외관·내장재·전자장비 등을 주문제작 방식으로 선택해 ‘나만의 페라리’를 만드는 프로세스로, 평균적으로 차량 가격을 수십 퍼센트까지 높인다.

알아두기 — ‘퍼스널라이제이션(personalisation)’은 초고가 럭셔리카 시장에서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고 마진을 극대화하는 주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경기 방어적(pricing resilience)’ 성격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전문가 시각

경제·무역 측면에서 이번 미·EU 관세 합의는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에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페라리와 같은 고가 럭셔리 브랜드뿐 아니라 중·저가 브랜드까지 단계적 가격 안정 효과가 예상된다. 다만 환율 변동, 경기 둔화 및 고금리 부담은 하반기 자동차 소비 심리에 여전히 리스크 요인으로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관세 인하로 확보한 ‘가격 여력’을 전기차 전환, 연구·개발(R&D) 및 탄소중립 프로젝트에 투자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지속가능성 경영브랜드 가치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전략적 판단이 될 것이다.

종합하면, 관세 부담 완화는 페라리의 단기 실적에 호재로 작용하지만, 전기차 시장 경쟁 격화와 거시경제 변수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신흥부유층 수요가 향후 성장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