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보안 업계가 대형 인수·합병(M&A) 소식으로 다시 한 번 요동치고 있다. 아이덴티티 관리(Identity Management) 전문 기업 사이버아크(CyberArk Software Ltd.)의 주가가 29일(현지시간) 장중 한때 18%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이는 클라우드·네트워크 보안 선두업체 팔로알토네트웍스(Palo Alto Networks Inc.)가 200억 달러(약 27조 원) 이상에 사이버아크를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가 전해진 데 따른 것이다.
2025년 7월 29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두 회사 관계자는 즉각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았지만, 시장은 대규모 거래 가능성을 적극 반영하며 사이버아크에 매수세를 집중시켰다. 반면, 인수 주체로 거론된 팔로알토네트웍스 주가는 같은 날 3.5% 하락해 투자자들의 엇갈린 반응을 드러냈다.
AI 시대, 클라우드 보안 수요 급증
기업 IT 환경에서 클라우드 전환과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해킹 위협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암호화해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는 랜섬웨어(ransomware) 공격이 일상화되자, 기업들은 접근 권한 관리·인증 솔루션에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다. ※랜섬웨어: 시스템을 ‘몸값(ransom)’과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로, 해커가 데이터를 암호화한 뒤 돈을 요구하는 공격 방식.
팔로알토네트웍스의 ‘공격적’ M&A 행보
2005년 설립된 팔로알토네트웍스는 최근 몇 년 간 업계 ‘컨솔리데이터(consolidator)’로 불릴 만큼 적극적인 기업 인수에 나서 왔다. 2023년 Talon Cyber Security·Dig Security·Zycada Networks를 연달아 품은 데 이어, 2025년 7월에는 Protect AI를 사들여 AI 기반 위협 탐지·대응 역량을 강화했다. 이번 사이버아크 인수까지 성사된다면, 팔로알토네트웍스의 전체 시가총액(약 1,300억 달러)을 감안할 때 최대 규모의 투자다.
“팔로알토네트웍스는 시장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접근권한 관리(PAM)’ 분야의 선두주자를 노리고 있다.” – 업계 애널리스트 평가
사이버아크, 아이덴티티 보안 ‘원조’ 기업
사이버아크는 이스라엘에서 1999년 창업해 2014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기업 내 직원이 여러 애플리케이션에 로그인할 때 발생하는 권한·세션 관리를 자동화해 보안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높이는 기술로 두각을 나타냈다. 경쟁사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옥타(Okta), IBM의 해시코프(HashiCorp) 등이 있으며, 동종업체 세일포인트(SailPoint)는 2025년 2월 재상장을 통해 다시 공개시장에서 투자자를 모으고 있다.
사이버아크는 2025년 1분기 매출 3억 1,800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3% 성장했다. 순이익은 1,150만 달러로 흑자 전환에 성공, 높은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입증했다. 이번 주가 급등으로 시가총액이 210억 달러 안팎까지 불어난 상태다.
빅테크, 보안 시장 ‘큰손’으로 부상
올해 들어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는 대형 거래가 줄을 잇고 있다. 구글은 3월 클라우드 보안 스타트업 Wiz를 320억 달러에 인수하며 사상 최대 규모의 M&A 기록을 세웠다. 2023년에는 시스코(Cisco)가 280억 달러를 들여 데이터 분석·관제 전문업체 스플렁크(Splunk)를 품으며 업계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시장·투자자 반응
사이버아크 주가는 지난해 52% 급등한 데 이어 올해도 29% 상승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 왔다. 반면 팔로알토네트웍스 주가는 올 들어 9% 상승에 머물러 있다. 대규모 인수 자금 조달에 대한 우려가 주가 조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양사 모두 “인수설 관련 공식 입장을 밝힐 계획이 없다”고 전해, 실제 계약 타결 여부와 구체적 조건은 미지수다. 그러나 AI·클라우드 보안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아이덴티티 관리’ 분야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확장 해설: ‘컨솔리데이터’란?
컨솔리데이터는 동종 업계 여러 회사를 적극적으로 인수·합병해 규모의 경제와 기술 시너지를 일으키는 기업을 뜻한다. 팔로알토네트웍스처럼 독립적·분산적으로 존재하던 보안 솔루션을 한데 모아 ‘플랫폼화’하려는 전략이 대표적 사례다.
전망과 시사점
업계 전문가들은 “AI·클라우드가 결합된 차세대 보안 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15%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팔로알토네트웍스가 사이버아크를 흡수할 경우, 엔드포인트·네트워크·클라우드·아이덴티티를 아우르는 ‘토털 보안 스위트’를 구축하게 돼 경쟁사 대비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를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인수가 현실화될 경우, 규제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와 고평가 논란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스라엘 본사를 둔 사이버아크와 미국에 기반한 팔로알토네트웍스 간 해외 투자 심사(CFIUS 등)가 절차상 관문으로 거론된다.
향후 협상 결과와 시장 반응에 따라 보안 업계 판도는 물론, 주요 지수 편입 종목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