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작업이 길게 이어졌던 미국 미디어 그룹 파라마운트 글로벌과 제작사 스카이댄스 미디어가 8일(현지시간) 84억 달러(약 11조 4,000억 원) 규모의 거래를 최종 마무리하고, 새로운 지배회사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코퍼레이션’으로 공식 출범했다.
2025년 8월 7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병으로 탄생한 신설 법인의 클래스B 보통주는 이날 나스닥 시장에서 종목 코드 PSKY로 첫 거래를 시작해, 1% 오른 11.74달러에 장을 마쳤다.
양사의 결합은 파라마운트가 보유한 방대한 글로벌 배급망과 100년 가까이 축적된 영화·TV 라이브러리를, 스카이댄스가 장점으로 내세운 최첨단 제작·기술 역량과 엮어내는 형태다. 새 회사를 이끌게 된 데이비드 엘리슨 최고경영자(CEO)는 ‘오늘은 새로운 파라마운트의 첫날이며, 앞으로 수개월간 우리는 기업 운영 방식, 콘텐츠 제작 과정, 시장 공략 전략을 전면 재설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설 법인은 스튜디오·직접소비자(D2C)·TV미디어 등 3개 사업 부문으로 재편된다. 엘리슨 CEO는 ‘스트리밍 사업 확대와 기술 고도화, 현금흐름 창출 극대화’라는 세 가지 과제를 최우선으로 제시했다.
파라마운트는 전통적 선형(Linear) TV 시장의 침체로 고전해 왔다. 소비자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로 이동하면서, 케이블 자산에서만 60억 달러에 달하는 손상차손을 반영해야 했다. 이는 디즈니, 워너브러더스디스커버리 등 다른 ‘레거시 미디어’와 같은 구조적 위기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규제 측면에서는 지난달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조건부로 합병을 승인했다. 불과 몇 주 전 파라마운트가 CBS ‘60 미니츠’ 프로그램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을 합의로 종결한 직후다.
승인 과정에서 스카이댄스 측은 ‘CBS 뉴스 및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에 편향을 배제하고, 최소 2년간 뉴스 옴부즈맨을 고용하며, 다양성(다이버시티) 프로그램을 종료하겠다’는 조건을 수용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 안나 고메스 FCC 위원은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며 ‘이번 거래는 우리 역사에서 어두운 순간의 마지막 장’이라면서, ‘근거 없는 소송을 해결하고 규제 승인을 얻기 위해 전례 없는 합의금을 지불한 것은 비겁한 굴복’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메스 위원은 ‘뉴스룸의 편집권에 대한 유례없는 정부 통제를 받아들인 것은 수정헌법 1조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공화당 출신 브렌던 카 FCC 의장은 ‘사실 기반 보도와 비편향 저널리즘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했다’며 조건을 옹호했다. 카 의장은 ‘기성 주류 미디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해설: FCC·클래스B 주식·옴부즈맨이란?
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는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미국 연방 기관으로, 대규모 미디어 합병 시 공정경쟁과 공익성을 판단한다. 클래스B 주식은 의결권이 제한된 보통주로, 지배주주가 보유한 클래스A 주식 대비 투표력이 낮다는 특징이 있다. 옴부즈맨은 시청자 불만을 수렴해 뉴스 보도의 공정성·정확성을 사내에서 감시·중재하는 독립 직책이다.
미디어 산업에 미칠 파급효과
이번 합병으로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아마존 프라임비디오 등 스트리밍 강자들과의 경쟁에서 콘텐츠 공급망과 기술 인프라를 동시에 확보했다. 특히 AI·가상제작(Virtual Production)에 강점을 가진 스카이댄스의 프로세스가 파라마운트의 전통적인 스튜디오 시스템에 접목될 경우, 제작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반면 뉴스 편집권에 대한 규제기관의 조건부 개입은 언론 자유 침해 논란을 지속적으로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정치권 이해관계에 따라 보도 내용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무 측면에서는 스트리밍 플랫폼 파라마운트플러스의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한 가운데, 합병 시너지로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해외 시장 공략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또한 60억 달러 규모의 손상차손과 합병 관련 차입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공격적인 비용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향후 시장은 ① 합병 이후 12개월 내 혹은 24개월 내 현금흐름 전환 시점, ② 옴부즈맨 보고서가 공개될 경우 뉴스 편향성 관련 논란 재점화 여부, ③ 엘리슨 CEO가 예고한 ‘기술 드라이브’가 실질적으로 스트리밍 경쟁력을 강화하는지 여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의 출범은 레거시 미디어 구조조정과 신흥 기술 기반 제작 모델 간 ‘빅 텐트’ 실험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규제·정치·재무 리스크가 교차하는 복합적 게임이기도 하다. 투자자와 업계 관계자들이 단순한 시너지 기대 너머에 존재하는 리스크 요인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