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해설] 유럽연합(EU) 와인 및 증류주 생산업체들이 미국과 EU 간에 막바지 조율 중인 무역 협정에서 보기 드문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부 유럽 당국자들은 이번 합의가 EU에 불리하다고 평가하지만, 주류 업계만큼은 관세 면제라는 구명줄을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25년 7월 28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번 고위급 합의는 대부분의 EU산 제품에 대해 15%의 기본 관세를 부과하는 대신,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일부 농산물에 대해서는 면제 조항을 포함할 예정이다.
“향후 며칠 안에 이번 긍정적 회담이 미·EU 양측 증류주 제품에 대한 ‘제로 대 제로’(zero-for-zero) 관세 복원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크리스 스웽거 미국 증류주협회(DSC) 회장은 성명에서 밝혔다.
‘제로 대 제로’란 양측이 동일 품목에 대해 서로 관세를 전혀 부과하지 않는 방식을 뜻한다. 이는 관세 교환(Reciprocal Tariff)을 넘어선 완전 철폐로, 글로벌 주류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지키는 핵심 수단이다.
프랑스 무역장관 로랑 생마르탱도 월요일 인터뷰에서 “증류주 부문이 미국 관세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현실화되면, 이는 세계 최대 증류주 제조사 디아지오(LON:DGE), 페르노리카르(EPA:PERP), 레미 코앵뜨로(EPA:RCOP), 깜빠리(LON:0ROY) 등 거대 기업에 결정적 수혜가 될 전망이다.
이들 업체는 미국 시장 의존도가 매우 높다. 다국적 소비재의 둔화 속에서 주류 소비 감소로 이미 이익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추가 관세는 실적에 치명적일 수 있다.
관세 완화 기대감에 장 초반 페르노리카르·디아지오·깜빠리 주가는 올랐지만, 오전 7시 7분(그리니치표준시) 기준 각각 –1.3%, –0.4%, –0.3% 하락 전환했다. 레미 코앵뜨로는 –2.2%로 낙폭이 더 컸다.
美 시장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는 프리미엄 주류
EU는 2024년 기준 미국에 약 90억 유로(105억 달러) 규모의 주류를 수출했다(유로스타트). 특히 레미 마르탱 꼬냑과 샴페인은 지리적 표시제(GI)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만 생산해야 한다. 아일랜드산 위스키, 예컨대 페르노리카르의 제임슨은 전체 수출 물량의 3분의 1이 미국행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서 7월 30% 징벌적 관세를 경고해 업계에 충격을 준 바 있다. 미국은 프랑스 샴페인 총수출의 18%, 꼬냑은 무려 43%를 흡수한다. LVMH가 소유한 헤네시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꼬냑 판매 비중이 70% 이상인 레미 코앵뜨로는 세계 각국 관세 여파로 이미 4,500만 유로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번 미국 관세는, 이달 초 중국발 최대 35% 관세 위협을 가까스로 피한 뒤 찾아온 또 다른 도전이다.
스페인·이탈리아 와인도 타격
스페인 와인과 이탈리아 와인은 각각 14%, 24%가 미국 시장으로 향한다.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와 판매 위축이 불가피하다.
반면, 맥주·RTD(Ready-To-Drink) 칵테일 업체들은 별도의 부담을 안고 있다. 협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EU산 알루미늄 캔에 대해 50%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 = 0.8518유로)
용어 풀이 및 시사점
• 베이스라인 관세(15%) : 특정 국가·품목에 일괄 적용되는 ‘기본 관세율’로, 본 협정에서는 EU 모든 상품에 우선 부과된다.
• 지리적 표시제(GI) : 제품 명칭이 생산 지역 명성과 직결되는 경우, 해당 지역 외에서는 같은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 규범이다.
• RTD 칵테일 : 즉석 음용 형태로 병·캔 등에 담겨 판매되는 칵테일.
관세가 철폐되면 주류 수출 업체의 마진 회복과 주가 반등이 기대된다. 반면,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50% 관세 유지로 맥주·RTD 부문은 원재료 비용 압박이 지속될 전망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증류주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가격 탄력성이 비교적 낮다”면서도, “관세 부과 시 도·소매 유통망이 가격 인상을 전가하게 되면 소비 둔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망과 과제
EU와 미국이 협정을 최종 비준하면, ‘제로 대 제로’ 방식으로 다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구체적 적용 시점·품목이 명시되지 않아, 기업들은 정책 리스크 헷지를 위한 공급망 다변화 및 가격 전략 재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관세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 알루미늄 사용 기업들은 대체 포장재 개발이나 현지 생산 확대를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협상은 전통 강세 품목인 와인·증류주에는 숨통을 틔우는 동시에, 산업 성격이 다른 맥주·RTD 부문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던졌다. 향후 세부 이행 규정과 미 대선 이후 통상정책 방향이 주류 시장의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