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더들, ECB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 낮게 본다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 회의 후 시장 반응]

유럽 금융시장에서 추가 금리인하보다는 현 수준 동결이 더 유력하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30일(현지시간) ECB는 예금금리(deposit rate)를 2%로 유지하며 세 번째 연속 회의에서 동결을 결정했다. 지난 2024년 6월 완화 기조 전환 이후 누적 200bp(베이시스포인트) 인하를 단행한 뒤 처음으로 긴 휴지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은 이미 “이번 사이클에서 추가 인하가 없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2025년 10월 30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좋은 위치(good place)에 있다”고 언급하며 물가와 성장 간 균형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트레이더들은 미드 2026년까지 약 10bp 인하만이 가격에 반영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불과 사흘 전 월요일 25bp 인하 가능성을 절반가량(약 50%)으로 봤던 것과 비교할 때, 추가 인하 베팅이 크게 줄어든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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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견조한 경제 지표와 “골디락스” 시나리오

라가르드 총재의 표현처럼 인플레이션이 목표치(2%) 부근에서 안정되고 성장세도 둔화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통화정책 당국에 “달콤한 구간”을 제공한다.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Brown Brothers Harriman)의 전략가 엘리아스 하다드는 “유로존의 물가·성장 배경은 ECB가 현 수준을 유지할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통화당국 입장에서 보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Goldilocks) 국면이다.” — 엘리아스 하다드, BBH 수석 전략가

이러한 시각은 거시 리스크 완화와 일맥상통한다. 팬데믹 이후 가파르게 뛰었던 물가가 진정된 가운데, 무역·지정학적 긴장의 파급 효과도 당초 우려보다는 제한적이었다. 이에 따라 “추가 인하가 “가능성”은 있으나 “기준”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점이 시장 가격에 반영됐다.


2. 금리·환율·채권시장의 즉각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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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에서 유로/달러(EUR/USD)는 $1.1572로 소폭 반등했으나, 여전히 전일 대비 0.3% 하락한 수준이다. 이는 전날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2월 인하 가능성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며 매파 톤을 유지한 영향이 크다.

채권시장에서는 독일 2년물 국채금리가 2bp 올라 2%대를 기록했고, 10년물 분트(Bund) 금리도 2bp 상승한 2.64%에서 거래됐다. 유로존 지수(Stoxx 600) 등 주식시장은 소폭 하락하며 관망세를 보였다. 이는 미·중 간 무역 갈등 완화와 견조한 유로존 지표가 금리 인하 베팅을 약화시켰다는 분석과 맥을 같이한다.


3. “성장 하방 리스크 완화” — 공식 지표와 라가르드 총재 발언

유로존 3분기 GDP(국내총생산)는 예상치를 웃도는 성장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는 소비 회복수출 부진독일 경기 부진 등 부정적 요인을 상쇄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무역 합의·협상
무역 환경 개선에 기여하며 하방 리스크를 줄였다고 진단했다. 다만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며 신중론도 동시에 제시했다.

슈로더(Schroders)의 유로존 이코노미스트 아이린 라우로는 “성장 전망 개선과 독일의 재정 확대(fiscal boost)를 고려하면, 2026년까지 추가 인하 없이 동결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2027년에는 오히려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4. 인플레이션 흐름과 정책 여지

ECB는 내부 직원 전망치를 통해 2026년 중반까지 물가가 목표(2%)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2025년 독일의 재정 확대와 에너지 가격 반등이 물가에 상방 압력을 더한다면 완화적 통화정책 창구가 좁아질 수 있다. 9월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서비스 물가와 에너지 가격 둔화 둔화 영향으로 2.2%를 기록, 4월 이후 처음으로 목표를 상회했다.

시장에서는 31일(현지시간) 발표 예정인 10월 HICP 플래시 추정치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예상보다 높게 나올 경우, “동결 장기화” 또는 “재정 긴축 압박”이 더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5. 용어·배경 설명

• 베이시스포인트(bp) : 1bp는 0.01%p로, 금리 변동 폭을 정밀하게 표시할 때 쓰인다.

• 예금금리(Deposit Facility Rate) : 상업은행이 초과준비금을 ECB에 예치할 때 적용되는 단기 기준금리다.

• 골디락스 시나리오 : 인플레이션이 낮고 성장도 적절히 유지돼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급변동할 필요가 없는 이상적인 경기 국면을 뜻한다.

• 분트(Bund) 금리 : 독일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로, 유로존 무위험지표로 간주된다.


6.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시장 참여자들은 미국 연준의 정책 경로유로존 재정·무역 환경ECB 행보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파월 의장의 매파적 뉘앙스가 유지될 경우 달러 강세가 장기화될 수 있으며, 이는 유로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반대로 미·중 관계 개선이 원재료 가격과 교역 비용을 안정시킨다면 유럽 기업 실적과 소비자 실질소득에 긍정적이다.

따라서 ECB로서는 1) 글로벌 무역질서, 2) 독일 재정 정책, 3) 미국의 장단기 금리 차 등 다중 변수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현재의 “관망”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시장 가격에 반영된 10bp 수준의 인하 기대치는 “긴급 상황에서의 보험” 성격으로 받아들여지며, 그만큼 지금의 통화 여건이 중앙은행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7. 기자의 종합 견해

유로존은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요인(서비스·임금)경기 회복 속도 간 “미묘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 ECB가 당장 긴축 또는 완화를 서두를 유인이 크지 않은 가운데, 재정정책이 통화정책을 보완하는 정책 믹스가 관건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큰 변수는 결국 미국의 금리 결정과 달러 흐름이다. 달러 강세가 장기화될 경우, 유로존 수입물가 상승과 성장 압박 간 딜레마가 다시 부각될 여지가 있다. 반면 미·중·EU 간 무역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추가 금리인상보다 목표 달성 후 장기 동결이라는 그림이 한층 명확해질 수 있다.

ECB 본부

다만 정책 기대와 실제 정책 사이에는 언제나 래그(lag)가 존재한다. 시장 참여자는 지표·발언·국제 정세의 미세한 변화를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하지만, 중앙은행은 실물경제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기에 “신중함”이라는 단어가 앞으로도 자주 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