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서 들어오는 모든 상품에 대해 최소 15~20%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압박하며 양측 간 무역 협상이 다시 한 번 난항에 빠졌다.
2025년 7월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와 CNBC 보도에 따르면 미국·EU 양측은 ‘8월 1일 시한’ 이전에 관세 프레임워크 합의 도출을 목표로 수 주째 협상을 이어 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요구 수위를 높이면서 사실상 교착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협상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 3명을 인용해 “미국 측이 현행 10% 수준의 관세를 유지하는 영국식 모델 대신, ‘15~20% 일괄 최소 관세’를 고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EU가 1980억 유로(미화 2,31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상품 무역흑자를 시정하지 않는 한, 관세 인하나 예외 품목을 인정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다.
EU는 영국과 체결했던 ‘10% 기본 관세 + 일부 산업 면제’ 모델을 희망해 왔다. 특히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자동차 업계가 높은 관세 충격을 우려해, 자동차·항공·명품 등 전략 산업을 예외 품목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EU는 오랫동안 미국 시장에 공정하지 못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관세 감면 대신 미국산 에너지·농산물 구매 확대를 압박 카드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불공정 거래를 참지 않을 것이다. 관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FT 인용
주요 지표 반응과 시장 충격
보도 직후 미국 증시는 급락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장중 한때 250포인트 이상 하락하며, 투자자들은 관세 전면전 재개 가능성을 우려했다. S&P500과 나스닥지수도 각각 0.7%, 0.9%가량 떨어지며 동반 약세를 기록했다.
배경: ‘관세’란 무엇인가?
관세(tariff)는 정부가 외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관세 인상은 국내 산업 보호, 무역 불균형 해소, 협상 지렛대 확보 등을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소비자 물가 상승과 보복 관세를 유발해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 수 있다.
양측 이해관계와 전망
EU 집행위원회는 “상품이 아닌 서비스·투자까지 포함하면 양측 교역은 훨씬 균형적”이라며, 미국이 제시한 관세율이 WTO(세계무역기구) 규범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브뤼셀은 미국산 천연가스·원유 수입 확대 카드를 내놓으며 협상 공간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 민족주의’ 기조를 재점화해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미국 내부에서도 철강·알루미늄·농업 등 제조업 지대를 중심으로 관세 인상 지지가 높지만, IT·첨단 부품 업계는 원가 상승과 공급망 혼란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별 영향
자동차 : EU 완성차 및 부품업계는 미국 내 판매량의 최대 20% 가격 상승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BMW·메르세데스-벤츠·스텔란티스 등은 미국 남부 공장 증설을 통한 ‘현지 생산 확대’로 대응을 검토 중이다.
농업 : 관세 인상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산 대두·옥수수·소고기 수출 증대가 예상된다. 반면 EU산 치즈·올리브유·와인 등 농식품은 소비자 가격 상승과 수요 감소가 불가피하다.
에너지 : 트럼프 행정부는 EU가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압박하고 있다. 관세 패키지 협상에 ‘에너지 구매 확대’ 조항이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향후 시나리오
무역 전문가들은 8월 1일 시한 이전에 ‘부분 합의(interim deal)’가 나올 가능성을 50% 이하로 평가한다. 미국이 관세를 공식 발동하면 EU는 항공기·의류·농산물 등에 맞대응 관세를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양측 모두 경기 둔화를 우려해 ‘막판 타협’에 나설 여지도 남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관세 전면 적용 시 글로벌 GDP가 최대 0.4%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회복세가 완만해진 세계 경제에 또 다른 하방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자 시각: 왜 지금 관세 카드를 꺼냈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무역적자 해소’와 ‘선거전략’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과거 2018~2020년에도 대중(對中) 관세를 통해 제조업 일자리 확대를 공언했지만, 결과가 엇갈렸다. 이번 EU 겨냥 관세는 정치적 레버리지 측면이 더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이슈로 어려움에 처한 EU의 ‘협상 여력’이 약해진 틈을 노린 전략적 계산도 깔려 있다. 미국이 에너지 수출 강국으로 부상한 현재, 에너지-관세 패키지 협상은 미 행정부에 유리한 카드다.
결국 15~20%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도가 빨라지고 ‘지역화(리쇼어링·니어쇼어링)’ 흐름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 등 제3국 기업에도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제공할 전망이다.
※ 용어설명
• 관세(tariff) : 특정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에 부과하는 세금. 국가 재정 확보·산업 보호·교역 교섭력 확보 등의 목적을 가짐.
• 무역수지(trade balance) : 한 국가의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값. 흑자면 순수출, 적자면 순수입 상태를 의미.
• WTO(세계무역기구) : 164개 회원국이 가입한 다자간 무역 규범 기구. 관세·보조금·무역분쟁 해결 절차 등을 감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