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30% 관세 위협에 EU, ‘무역 바주카’ ACI 가동 검토

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EU산 제품 30% 관세에 맞서 ‘무역 바주카’로 불리는 반강제수단(ACI·Anti-Coercion Instrument)을 실제로 꺼내 드는 방안을 본격 검토하고 있다.

2025년 7월 22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독일 등 주요 회원국 외교관들은 “협상이 결렬될 경우 미국을 대상으로 한 ACI 발동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8월 1일까지 양측이 무역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30% 관세를 단행하겠다고 재차 못 박았다. 백악관은 “데드라인은 고정돼 있지만 관세 발동 이후에도 협상은 계속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CI란 무엇인가

ACI(반강제수단)은 2023년 제정된 EU의 대외무역 방어 장치다. 제3국이 정치·경제적 압박을 통해 EU 정책을 변경하려 할 때, EU가 ‘억제(deterrence)’를 목적으로 상대국에 대대적인 무역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EU 집행위 설명서 “ACI의 궁극적 목표는 상대국이 강제 행위를 중단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협의와 외교적 해법이 우선이지만, 필요할 경우 수입·수출 제한, 지식재산권 제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규제 등도 가능하다.”

ACI가 ‘무역 바주카’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 보복관세를 넘어 공공조달 배제, 디지털 서비스 접근 제한, 지식재산 사용 금지 등 광범위한 조치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넷플릭스·우버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의 서비스 수출을 겨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과 미국의 교역 구조

유럽이 ACI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배경에는 지속적인 미국과의 상품무역 흑자가 자리한다. 유럽이사회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양측 총교역액은 1조 6,800억 유로(약 1조 9,700억 달러)였다. EU는 상품 부문에서 흑자를, 서비스 부문에서는 적자를 기록했으며 총합 흑자는 약 500억 유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불균형을 “불공정 무역”이라 규정하며 고율 관세를 압박 카드로 활용해 왔다. EU는 ‘10% 상한선’이 협상의 현실적 타협선이라고 판단하지만, 관세율이 15%를 초과할 경우 보복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ACI 발동 절차와 난점

ACI를 실제로 가동하려면 EU 집행위 조사→회원국 검증→회원국 정성 다수결(27개국 중 15개국 이상)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설령 승인이 나더라도, 집행위는 상대국과 추가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따라서 ACI는 ‘마지막 수단(last resort)’으로 간주된다. 유라시아그룹의 무지타바 라만·엠레 페케르·클레이턴 앨런 애널리스트는 “초기에는 상품 보복관세로 대응하겠지만, 관세 전면전(10% 시나리오)으로 치달으면 브뤼셀은 ACI를 꺼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① 외교적 파장 — ACI가 실제로 발동되면 EU·미국 관계는 2018년 철강·알루미늄 관세 갈등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특히 미국 의회가 EU 대응을 ‘경제전쟁’으로 규정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② 공급망 재편 — 미국 기업이 EU 공공조달·디지털 시장에서 배제될 경우, 유럽 내부에서 대체 클라우드·콘텐츠·배달 플랫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유럽 디지털 주권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③ 시장 영향 —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116억 유로 규모의 미국산 수출품이 1차 타깃이 될 것으로 추산한다. 금융·기술·항공·농업 관련 주식 변동성이 확대될 전망이다.


용어 해설

• ACI(반강제수단) — Anti-Coercion Instrument의 약어. ‘강요’로 번역되는 Coercion은 상대국이 무역·투자 제한 등 경제적 압력을 통해 특정 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행위를 뜻한다. ACI는 이러한 압력에 대응하는 EU의 다목적 무역 제재 법적 틀이다.

• 정성 다수결(Qualified Majority) — EU 이사회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전체 회원국의 55%(현재 27개국 중 15개국) 이상이, 그리고 EU 총인구의 65% 이상을 대표해야 성립하는 이중 기준이다.


기자 해설

기자는 ACI가 “실험적 도구”라는 점에 주목한다. 아직 발동 사례가 없기 때문에 시장은 효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EU가 디지털 서비스처럼 미국이 흑자를 내는 분야를 겨냥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협상 지렛대로서 위력은 상당하다.

이번 사안은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 통상 카드’로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행보로도 해석된다. 반면 EU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경기 둔화 등 내부 과제 속에 ‘미국과의 전면 충돌’을 꺼리는 분위기다. 결국 양측은 10% 안팎의 ‘체면 세우기용’ 합의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