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7개 제약사 CEO에 미국 내 처방약 가격 인하 최후통첩

【워싱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개 글로벌 제약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서한을 보내 해외 수준으로 미국 내 처방약 가격을 인하하라고 압박했다. 백악관은 1일(현지시간) 관련 사실을 공개하며, 제약업계가 이를 거부할 경우 정부 차원의 규제 입법·행정조치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강경 방침을 재확인했다.

2025년 7월 3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서명한 ‘가장선호국(Most-Favored-Nation·MFN) 약가 정책’ 행정명령에 근거해 이번 개별 서한을 발송했다. 그는 엘리 릴리(NYSE:LLY), 사노피(NASDAQ:SNY), 리제네론(NASDAQ:REGN), 머크 앤드 컴퍼니(NYSE:MRK), 존슨앤드존슨(NYSE:JNJ), 아스트라제네카(NASDAQ:AZN) 등 다국적 제약사를 포함해 모두 17곳에 같은 요구안을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에서 “

미국민을 위한 처방약 가격을 해외 최저 수준으로 맞추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

”라며, “정부 보조금이나 책임 전가를 위한 기존의 방식을 더는 수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9월 29일까지 구속력 있는 답변을 제출하라며 시한도 못박았다.

주요 요구사항은 ▲저소득층 대상 공적 의료보험 메디케이드 가입자 모두에게 ‘가장선호국 가격’을 적용할 것 ▲신약에도 동일한 가격 정책을 즉시 보장할 것 ▲미국 약가 인하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선진국에서 가격을 올린 경우 그 초과 수익을 미국 정부·납세자에게 환급할 것 ▲향후 미국보다 유리한 가격을 어떤 선진국에도 제공하지 않을 것 ▲중간 도매상을 배제하고 환자에게 직접 공급하는 경우에도 MFN 가격을 유지할 것 등이다.

백악관은 “업계가 협조하지 않으면 약가 규제 규칙 제정·해외 저가 의약품 수입 허용 등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유럽산 의약품의 병행수입 합법화, 메디케어(노인·장애인 의료보험) 약가 직접 협상권 도입 등을 거론해왔다.

시장 반응도 즉각 나타났다. 31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화이자(NYSE:PFE), 엘리 릴리, 길리어드 사이언스(NASDAQ:GILD) 주가는 각각 2% 하락했고, NYSE Arca 제약지수는 3%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정부 압박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결과다.

업계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화이자, 노바티스(SIX:NOVN), 애브비(NYSE:ABBV), 독일 머크KGaA 자회사인 EMD 세로노 등은 “정부와 협력할 의지는 있으나 연구·개발(R&D)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해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화이자 대변인 에이미 로즈는 “접근성과 경제성 개선을 위해 행정부·의회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는 건설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시각도 회의적이다. 밴더빌트대 스테이시 두제티나 보건정책학 교수는 “일부 품목에 한해 직접판매 방식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겠지만, 전반적인 약가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UBS의 중 훼인 애널리스트는 “기존 요구 사항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며 “실효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왜 ‘가장선호국 가격’이 문제인가? MFN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미국 소비자는 동일 성분 의약품을 다른 선진국보다 평균 세 배 비싸게 구입하고 있다. 제약사들은 “미국 시장이 연구·개발 투자금을 회수하는 핵심 창구”라며 대폭 인하가 혁신 동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관련 용어 해설
메디케이드(Medicaid) : 소득 하위 계층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공공 의료보험 프로그램.
가장선호국 조항(MFN) : 통상·무역에서 특정 국가에 부여하는 최고 수준 혜택을 다른 모든 국가에도 자동 적용한다는 원칙. 약가 정책에 차용하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낮은 가격’을 의미하게 된다.
중간도매상(Pharmacy Benefit Manager·PBM) : 제약사와 보험사·약국 사이에서 약가 협상·유통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미국 약가 인상 요인으로 자주 지목된다.


기자 시각 : 이번 조치는 선거를 앞두고 약가 부담을 호소하는 유권자에게 직접 호소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다만 의회의 초당적 입법 없이는 업계 저항을 돌파하기 어렵고, 행정명령만으로 세계 최대 제약 시장의 가격 구조를 일시에 뒤흔들기는 현실적으로 제한적이다. 실제로 MFN 약가제는 국제 레퍼런스 가격 도입, 도매마진 공개 등 글로벌 규제 트렌드와 맞닿아 있으나, 미국 특유의 민간 보험 중심 구조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9월 29일 답변 시한은 상징적 의미가 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제약사들의 단계적 가격 인하 여부 ▲메디케어·메디케이드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 압박 완화 효과 ▲의회 차원의 초당적 약가규제 법안 추진 동력 등이다. 특히 민주당·공화당 모두 약가 인하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2025년 미국 의료·제약 정책은 대선을 넘어 중·장기적 규제 환경 변화를 모색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