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청(Andrew Chung) 기자·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국립보건원(NIH)의 다양성(Diversity) 관련 연구비 대폭 삭감을 재추진하기 위해 연방대법원에 긴급 신청을 제기했다.
2025년 7월 24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보스턴 연방지방법원 윌리엄 영 판사가 지난 6월 내린 보조금 삭감 중단 결정을 해제해 달라며 대법원에 요청서를 제출했다. 영 판사는 매사추세츠주 등 16개 주와 연구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정부 조치를 위법으로 판단하고, 기존 보조금 접근권을 복원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NIH는 세계 최대 생의학 연구 자금 지원 기관으로, 연간 예산만 약 480억 달러*2024 회계연도 기준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지출 축소와 다양성·형평·포용(DEI) 프로그램 및 트랜스젠더 의료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광범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NIH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삭감은 정치적 편향성을 연구 현장에 들이밀어 미국인과 전 세계인의 건강을 해치는 조치다.” — 2025년 6월, NIH 직원 40여 명이 연명한 공개 서한 중
트럼프 행정부는 하급심에서 제동이 걸린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보수 6 대 진보 3 구도로 재편된 연방대법원에 반복적으로 개입을 요청해 왔다. 2025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한 이후, 대법원은 심리에 회부된 거의 모든 사건에서 행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DEI·NIH가 무엇인가?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는 조직·기관이 인종·성별·성적지향·장애 등 다양한 배경의 인력을 포용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뜻한다. 미국 대학·공공기관·기업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으나, 보수진영은 “역차별”을 초래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는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27개 연구소·센터가 모여 있는 기관이다. 암, 알츠하이머, 코로나19 등 글로벌 보건 위기를 다루는 핵심 연구 자금을 지원해 “생명의 은행“이라 불린다.
이번 사안의 발단은 두 건의 소송이었다. 첫 번째는 미국공중보건협회(APHA)와 개별 연구자 등이 제기했으며, 두 번째는 매사추세츠·캘리포니아 등 민주당 주지사 관할 16개 주가 공동으로 제기했다. 원고 측은 보조금 삭감을 “성별 정체성·DEI·기타 모호한 금지어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연구 과제를 무차별적으로 숙청하는 이념적 숙청“이라고 주장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윌리엄 영 판사는 6월 판결문에서 “행정부 교체 때마다 정책 변화를 추진할 수 있지만, 합리적 근거와 충분한 설명이 동반돼야 한다”고 밝히며, 트럼프 행정부 조치를 “압도적으로 자의적이고 변덕스럽다“고 규정했다.
영 판사는 “DEI”라는 용어를 정의조차 하지 않은 채 해당 연구들이 “가치 없고, 과학적이지 않다”고 단정한 행정부 보고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미국 보수층은 DEI 정책이 백인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다수의 학계·기업·연구단체는 “포용적 환경이 혁신과 조직 성과를 높인다”는 근거 연구를 제시하며 맞서고 있다.
행정부는 7월 18일 제1순회항소법원(보스턴 소재)에 영 판결 효력 정지를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이어 법무부는 사건을 연방대법원에 회부하며 “본 소송은 연방정부 손해배상 전문 법원인 연방청구법원(Court of Federal Claims)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리는 2025년 4월 대법원이 교사 훈련 보조금을 대폭 삭감한 트럼프 정책을 허용할 때도 근거로 제시됐다. 당시 대법원은 “해당 사안은 청구법원 관할”이라며 하급심의 정책 집행 정지 결정을 뒤집었다.
법적·정책적 파장 전망
현재 NIH 예산 중 DEI·성 소수자·트랜스젠더 관련 연구 분야는 전체 연구비의 5% 미만NIH 내부 집계로 알려졌으나, 에이즈·정신건강·유전질환처럼 직접적 질병 연구와 연관돼 있어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만약 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 손을 들어줄 경우, 유사 소송을 통해 미국 내 교육·환경·국방 분야의 DEI 예산도 줄줄이 삭감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대법원이 하급심 판단을 유지한다면, 행정부 재량과 의회 승인 예산의 법적 경계를 둘러싼 향후 정치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금으로 특정 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은 더 이상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으나, 민주당과 과학계는 “과학의 정치화“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연방대법원의 보수적 판례가 누적되면서, 미국 내 사법 신뢰도와 주·연방 정부 간 권한 분쟁이 한층 격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