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신흥 전략을 내세우며, CHIPS법(반도체 지원법)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지분 일부를 직접 취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번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워싱턴이 민간 반도체 대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상 초유의 정책 전환으로 평가된다.
2025년 8월 20일, Reuters 보도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인텔에 대한 현금 지원과 맞바꾸는 10% 정부 지분 취득 방안을 토대로, 마이크론·TSMC·삼성전자 등 다른 CHIPS법 지원 대상 기업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이미 관련 사안을 백악관·재무부와 협의 중이며, 미 상무부는 $52.7 억 달러 규모 CHIPS법 예산 집행을 총괄한다.
익명을 요구한 백악관 관계자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은 “아직 대다수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 지분 매입안을 통해 조기 시장 안착 및 투자 회수를 동시에 노린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CHIPS법 자금 배정 규모는 삼성 47억5천만 달러, 마이크론 62억 달러, TSMC 66억 달러 등이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이라는 두 축을 모두 충족시키길 원한다”며 “전례 없는 창의적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러트닉 장관도 CNBC 인터뷰에서 “지분 인수는 경영 간섭이 아닌 투자 신뢰성 확보”라고 강조했다.
선례와 비교
미국 정부가 기업 지분을 확보한 사례는 앞서 글로벌 금융위기(2008) 당시 자동차·금융사 구제금융 때에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일본 제철(Nippon Steel)의 U.S. Steel 인수 승인 과정에서, 설비 이전·폐쇄를 막는 특수 의결권 ‘골든 셰어(golden share)’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골든 셰어란, 정부나 특정 주주가 소수 지분만으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 형태를 뜻한다. 이는 기업 활동이 국가 안보와 직결될 때 활용되는 수단으로, 이번 반도체 지분 인수 논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편 재무부의 스콧 베센트 장관도 관련 논의에 참여하고 있으나, 실무 조율은 상무부가 주도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6월 바이든 행정부 시절 체결된 일부 보조금 계약이 “과도하게 후하다”며 재협상을 선언한 바 있다. 당시 마이크론은 미국 내 공장 투자 규모 확대를 제안하며 협상 국면을 이어갔다.
CHIPS법이란 무엇인가?
CHIPS and Science Act(2022)는 미국 내 반도체 연구·개발(R&D) 및 제조 시설 유치를 위해 총 $2800억 달러(연구·세액공제 포함)를 지원하는 법으로, 그중 $527억이 공장 건설 보조금과 인센티브로 책정돼 있다. 법안 목적은 공급망 안정, 중국·대만 리스크 완화, 첨단기술 패권 확보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1위 TSMC, 메모리 강자 마이크론·삼성전자 등은 미국 애리조나·뉴욕·텍사스주 등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 중이다. 다만 건설비 급등과 인력 부족으로 투자 수익성이 낮아진 상태여서, 정부 지분 방안이 추가 자금줄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산업정책 전문가들은 “지분 인수는 단순 보조금보다 회수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정부가 경영 판단에 개입할 위험을 경고한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민감한 기술·설비 이전 문제로 국제 분쟁 소지를 안고 있어, 지분 구조 변화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미칠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또 다른 관측통은 “10% 지분은 주주총회 특별결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충분치 않지만, 정책 방향성 시그널로서 상징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시장에선 “정부가 일정 보유분을 의결권 제한 우선주 형태로 보유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결국 핵심은 안보와 산업경쟁력이라는 국가 목표와, 민간 경영 효율성 간의 균형이라는 점이다.
향후 구체적 지분율·의결권 범위·매각 시점 등이 확정되면, 다른 산업·타국 정부에도 정책 벤치마크로 활용될 전망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정부와 기업 모두 ‘윈–윈’ 구조를 설계하지 못하면 투자 위축이 야기될 수 있다”면서, 보조금 수혜 대상 기업과의 상호이익 보장을 주문했다. 러트닉 장관과 백악관은 공식 입장 표명을 아끼고 있으나, 업계에선 “몇 달 내 구체적 계약 조건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만약 이번 방안이 성공적으로 도입되면, 미 정부는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투자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글로벌 규제 당국의 독점·보조금 심사와 해외 동맹국과의 외교적 협력 문제가 변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