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미국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DOJ)가 인공지능(AI) 산업 전반에 걸친 반독점(공정경쟁) 감시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공언해온 ‘미국 AI 지배력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한 배타적 행위와 과도한 기업 결합을 초기에 차단해 혁신 생태계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2025년 9월 18일, 로이터(Reuters) 보도에 따르면 게일 슬레이터(Gail Slater) 미 법무부 반독점국 차관보(Assistant Attorney General)는 뉴욕 포덤대(Fordham University)에서 열린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AI 기술 스택 각 계층의 경쟁 구도와 상호작용을 면밀히 살펴, 핵심 데이터·유통 채널 접근을 봉쇄하는 배타적 행위를 집중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슬레이터 차관보는 특히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access to data)이 향후 반독점 정책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지목했다. 실제로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은 최근 알파벳(Alphabet)의 구글(Google)에 대해 일부 검색 데이터를 AI 스타트업을 포함한 경쟁사와 공유하라고 명령한 바 있다. 구글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힌 상태다.
AI 스택과 ‘데이터 독점’… 왜 문제인가?
AI 스택(stacks)은 일반적으로 ①데이터 수집·정제, ②모델 학습·추론, ③애플리케이션·서비스 배포 등 3단계로 나뉜다.
데이터는 곧 ‘연료’다. 양질의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활용하느냐가 모델 성능을 결정짓기 때문에, 독점적 데이터 소유 기업이 시장 진입 장벽을 올리고 경쟁사를 배제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 당국의 시각이다.
슬레이터 차관보는 “데이터를 보유한 하류(downstream) 기업이 상류(upstream) 공급사와 수직적 결합(vertical integration)을 추진하거나, 경쟁사의 데이터 접근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는 시도가 늘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의료·헬스케어 분야처럼 민감하고 고가치 데이터를 보유한 산업에선 이러한 합병·인수(M&A)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경쟁업체로부터 데이터를 빼앗거나(삭제), 아예 취득 자체를 차단하려는 동기가 각종 거래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인수·합병 심사 과정에서 데이터 축적 동기를 면밀히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오픈소스 AI 모델, ‘진정한 개방성’이 관건
슬레이터 차관보는 “오픈소스 AI 모델은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혁신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도구”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수립한 AI 액션플랜에 ‘개방형 기술 확산’이 핵심 기조로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
‘진정한 오픈소스’란 특정 벤더가 일방적으로 관리·통제하지 않으며, 과도한 사용 제한을 부과하지 않는 모델
”이라며, 형식적 개방을 빌미로 사실상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왔다. 지난해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법무부는 ‘빅테크—AI 스타트업’ 간 투자·협력 관계를 집중 조사하는 등, 기술 지배력 이전 및 경쟁 제한 여부를 꾸준히 점검해 왔다.
전문가 시각 — 향후 쟁점과 전망
전문가들은 법무부가 언급한 ‘데이터 중심’ 심사 방식이 플랫폼 경제 전반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미 막대한 사용자·거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AI 응용 서비스 영역까지 영향력이 확대될 경우 ‘초거대 지배력’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외 규제기관 간 공조 체계도 주목된다.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AI 법(AI Act)’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법제 역시 데이터 접근성·알고리즘 투명성을 중요 평가 요소로 삼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각 지역 규제에 동시 대응해야 하는 ‘복합 규제 환경’에 직면할 전망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지나친 규제는 혁신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고성능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와 같은 ‘인프라 레이어’ 투자를 주도하는 대형 기업들이 시장 혼란을 이유로 신기술 도입을 지연할 경우, 오히려 글로벌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용어 풀이
수직적 결합(Vertical Integration) — 공급망 상·하류 단계의 기업을 한 지붕 아래 두어 비용 절감·효율화를 꾀하는 전략. 그러나 데이터·플랫폼 산업에선 경쟁사업자 배제 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 반독점 심사 대상이다.
AI 스택(AI Stack) — 데이터 수집→모델 학습→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지는 AI 가치사슬을 층(layer)으로 구분한 개념이다. 각 단계에 필수 인프라·기술이 집중돼 있어 지배력 집중과 시장 진입 장벽, 혁신 동력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기자 견해
이번 DOJ 발언은 단순한 ‘법 집행 예고’가 아니라,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공정 경쟁 시스템을 정책 레버리지로 삼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이 ‘혁신 촉진’을 명분으로 한 적극적 규제에 나설 경우, EU 및 중국·한국 등 주요 법제권 역시 규제 정합성 확보를 위해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AI 산업의 데이터 거버넌스와 플랫폼 규제가 세계 시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