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미국 연방 의회가 이미 배정됐던 예산 가운데 총 90억 달러를 회수하는 법안을 공화당 단독 표결로 통과시켰다. 하원은 216대 213, 상원은 51대 48로 법안을 가결해 백악관으로 송부했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 절차만을 남겨두게 됐다.
2025년 7월 18일, NBC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번 법안은 공영방송 지원 예산과 국외 원조 자금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Rescissions라 불리는 극히 드문 절차를 활용해 상원의 필리버스터 요건인 60표 장벽을 우회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번 패키지는 공영방송협회(CPB) 예산 11억 달러를 깎고, 미국국제개발처(USAID)·보건·난민 지원 프로그램 등 대외 원조 80억 달러를 추가로 삭감했다. 다만 부시 행정부 시절 시작돼 HIV/AIDS 퇴치를 지원해 온 인기 프로그램 PEPFAR에 대한 4억 달러 삭감은 막판 조정 과정에서 제외돼 기존 자금이 유지됐다.
Rescissions 절차란?
연방 예산이 의회에서 이미 통과된 뒤, 행정부가 특정 항목을 다시 “집행 보류” 형태로 묶어두도록 요청하면, 의회가 이를 승인해 실제로 예산을 취소할 수 있는 방법이다. 1980년대 이후 거의 활용되지 않았으며, 60표 필리버스터 장벽을 피할 수 있다는 특수성 때문에 이번처럼 정당별 힘의 균형이 팽팽한 상황에서 주목받는다.
공화당 지도부는 이번 법안을 “깨진 재정 살림을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자평했다. 스티브 스컬리스 하원 원내대표(공화·루이지애나)는 “90억 달러 삭감은 출발점일 뿐이며, 향후에도 정부의 ‘각성(woke)·낭비성’ 지출을 줄이는 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전원 반대표를 던지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공화당이 지난달 당론으로 통과시킨 3조3천억 달러 규모의 대형 법안으로 국가부채를 급격히 늘려 놓고, 이제 와서 공영방송·취약계층 지원 예산을 “잔인하게” 삭감해 재정 책임 있는 척한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내부 갈등: ‘에프스타인 문건’ 공개 요구
하원 표결 직전, 규칙위원회(Rules Committee) 소속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정부가 제프리 에프스타인 관련 기밀 문건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을 넣지 않으면 합류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지도부는 강제성이 없는 “상징적 결의안” 표결을 다음 주에 진행하겠다는 약속으로 해당 의원들을 달랬다. 그러나 토마스 매시 의원(공화·켄터키)은 “의회가 국민을 바보로 본다“며 비판했고, 제이미 래스킨 의원(민주·메릴랜드)은 “이는 치즈 구멍 투성이의 무의미한 결의”라고 맞받았다.
지역사회 우려와 상반된 시각
리사 머카우스키 상원의원(공화·알래스카)은 공영방송 삭감이 농어촌 지역 주민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며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 테레사 레헤르 페르난데스 하원의원(뉴멕시코)은 “국민은 누가 ‘빅버드’와 함께했는지, 누가 그를 ‘목 졸랐는지’ 기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초당적 합의 전통 훼손 논란
하원 세출위원회 민주당 간사 로사 델라ур로 의원(코네티컷)은 “입법부의 ‘지갑 권한’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위험한 선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초당적 예산 협력이 절실하지만,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이미 승인된 자금을 취소하며 의회의 신뢰를 잠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CPB·NPR·PBS가 한국 독자에게 의미하는 바※배경설명
CPB는 미국의 공영 라디오·TV 네트워크인 NPR(라디오)과 PBS(텔레비전) 지역 지국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광고 의존도가 낮은 구조 덕분에 교육·문화·어린이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공급돼 왔으며, 특히 시청·청취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에서 중요한 정보 채널 역할을 한다.
국외 원조 삭감의 파장
USAID 예산과 난민·보건 프로그램 예산 80억 달러 삭감은 글로벌 보건·인도주의 사업 규모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다만 PEPFAR는 마지막 순간 보존돼, HIV/AIDS 대응 자금 지원은 계속될 전망이다.
향후 전망
법안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를 통과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관측된다. 만약 서명될 경우, 1974년 예산통제·집행법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단일 ‘rescission’이 기록된다. 전문가들은 대선을 앞둔 양당 정치 구도 속에서 후속 예산 충돌이 잇따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