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원전 신속 승인 추진, 규제 독립성 훼손 및 안전성 약화 우려

워싱턴 D.C.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대적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s)을 통해 원자력발전소 승인 절차를 대폭 단축하겠다고 밝히면서, 원전 안전을 책임지는 독립 규제기관의 권한이 약화되고 국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2025년 7월 17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원전 규제 완화 ▲승인 기간 단축 ▲규제기관 구조 개편 등을 골자로 하는 총 4건의 광범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2050년까지 미국의 원전 발전량을 4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인공지능(AI) 시대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신속한 원전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가장 핵심적인 행정명령은 1975년 의회가 설립한 독립 규제기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uclear Regulatory Commission·NRC)의 조직과 규정을 전면 개편해 발전소 건설·운영 허가를 18개월 이내에 완료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규제당국이 ‘과도한 위험 회피(risk aversion)’로 신규 원전 건설을 가로막아 왔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빠르고 안전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며, 완전히 다른 인력이 산업을 규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독립성 약화에 대한 전·현직 위원장들의 경고

Plant Vogtle

NRC 위원장을 역임한 앨리슨 맥팔레인(재임 2012~2014), 스티븐 번스(2015~2017), 리처드 머서브(1999~2003) 등 세 명의 전직 수장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개입은 NRC의 독립성을 훼손해 원전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전직 위원장은 모두 민주당 행정부에서 임명됐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임명된 데일 클라인 위원장의 비서실장 출신 폴 딕먼도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후쿠시마 사고는 정부·산업·규제기관의 유착이 초래한 인재(人災)였다.” — 앨리슨 맥팔레인 전 NRC 위원장

맥팔레인 전 위원장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 사고를 사례로 들며, 독립 규제 부재가 국가안보와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사고 직후 전체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서 전력 공급의 30%를 잃었고, 이는 곧 경제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신속 승인·규제 완화가 초래할 잠재적 문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안전보다는 속도’를 중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번스 전 위원장은 “규제 당국이 안전성을 충분히 검토할 수 없는 촉박한 기한원전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머서브 전 위원장 또한 “이미 검증되지 않은 소형모듈원전(SMR)·마이크로리액터에 대해 엄격한 데이터 검증 없이 촉박한 기한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소형모듈원전(SMR)·마이크로리액터란?
전통적 대형 경수로(Light Water Reactor) 대신, 모듈화된 소형 설계를 적용해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이려는 차세대 원전 기술이다. 일부는 냉각재로 나트륨이나 용융염을 사용하는 등 안전·운영 방식이 기존과 크게 달라, 실제 상용화 전까지는 철저한 실증과 검증이 필수적이다.

Tech & Nuclear

그러나 행정명령은 NRC가 ‘고용량(high volume)’으로 신규 기술을 승인하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백악관 예산관리국(OMB)과 정부효율성부(DOGE)가 규정 개정 과정에 개입하도록 규정했다. 폴 딕먼 전 비서실장은 “기술적 검토에 전문성이 없는 기관이 규제 내용까지 좌우할 경우, 정치적 개입의 여지가 커진다”고 말했다.


예산·인력 감축과 조직 개편의 파장

트럼프 행정명령은 NRC 인력 감축까지 지시하고 있다. 딕먼 전 비서실장은 “숙련된 인력이 빠져나가면 규제 역량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구체적 감원 규모는 미정”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경험 많은 심사·안전 전문가가 떠날 경우 심각한 전문성 공백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더불어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NRC 커미셔너 크리스토퍼 한슨을 ‘사유 없이’ 해임했다. 머서브 전 위원장은 이를 “NRC 독립성 전면 무력화의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원전 건설 비용과 일정 지연 문제, 규제가 원인인가?

전문가들은 원전 확대 부진의 핵심 원인으로 ‘높은 건설 비용’을 지목한다.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완전히 신규로 건설된 원전은 단 두 기다. 조지아주 보그틀(Vogtle) 3·4호기는 예산이 무려 180억 달러 초과됐고, 준공이 7년이나 지연됐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두 기 건설 프로젝트는 2017년 중단됐으며, 이 과정에서 업계 대표 기업인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가 파산에 이르렀다.

“공적 신뢰는 독립 규제기관이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때 형성된다. 그렇지 않으면 치명적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 — 리처드 머서브 전 NRC 위원장

관계자들은 “정치·산업 이해관계가 규제보다 앞설 경우, 후쿠시마와 같은 참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또한 NRC가 국제적 ‘골드 스탠더드’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독립성 훼손은 미국 원전 기술의 해외 수출 경쟁력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

백악관 대변인 해리슨 필즈는 “대통령은 안전과 복원력을 우선시하면서 원전 규제 현대화규제 장벽 완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NRC 대변인 스콧 버넬 역시 “공중 보건과 안전을 보호하면서 행정명령 이행을 신속히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전망 및 함의

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확대, 전기차 보급 등으로 안정적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원전이 100% 무탄소 전원이자 베이스로드(기저부하) 전력으로서 재조명받고 있다. 그러나 안전 회의론이 고조될 경우, 원전 확대 정책이 거센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도 크다.

전문가 평가: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NRC 구조를 대폭 손질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승인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규제 역량 약화와 사회적 비용 증가, 국제 경쟁력 상실 등 부메랑 효과가 우려된다.

결국 원전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국민 신뢰 확보를 위해서는 독립성·투명성·전문성의 삼박자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라는 것이 전직 위원장들의 공통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