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 의장 교체를 둘러싼 시장의 시나리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후임자를 가려내기 위해 최종 후보군을 압축하면서, 글로벌 투자자와 전략가들은 각 후보별 잠재적 시장 반응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유력 후보가 현직 연준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인 경우에는 정책 연속성에 대한 기대로 호재가 예상되는 반면, 트럼프와 밀접한 관계로 ‘독립성 훼손’ 우려가 큰 인물이 지명될 경우엔 부정적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교차한다.
2025년 8월 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수개월간 파월 의장 교체 가능성을 시사해 왔지만, 최근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의 돌연 사임 사실이 알려지면서 통화정책 당국의 권력 구도와 향후 행방에 대한 관심이 한층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초 경제 고문 케빈 해셋, 전 연준 이사이자 트럼프 지지자로 꼽히는 케빈 워시 등 4명의 후보를 언급했으며, 이 가운데 2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어 6일(현지시간)에는 쿠글러 잔여 임기를 수행할 ‘임시 의장’ 후보를 세 명으로 좁혀 조만간 지명하겠다고 밝혔고, 7일 블룸버그 통신은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월러 이사가 트럼프 진영 내 최우선 카드라고 보도했다.
“차기 의장은 트럼프 성향의 완화적 인사”라는 시장의 선반영
토론토 소재 결제·외환 기업 코페이(Corpay)의 수석 시장전략가 칼 샤모타는 “백악관이 수개월간 신호를 발신한 결과, 투자자들은 차기 의장이 트럼프에게 충성적이며 비둘기파(dovish) 성향일 것이라고 이미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암호화 기반 온라인 예측시장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과 칼시(Kalshi)*1도 7일 기준 월러, 해셋, 워시를 파월 후임 가능성이 높은 3인으로 표시했다.
백악관 대변인 쿠시 데사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부(富)를 다시 키우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가장 유능하고 경험 많은 인사를 지명할 것”이라며 “대통령의 공식 발표 전까지 모든 인사 논의는 추측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연속성(Continuity)을 중시하는 시장: 월러 카드를 선호
연속성이 확보될 경우 시장은 긍정적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월러 이사는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하기로 한 결정에 반대표를 던지며 “관망(wait-and-see) 전략은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공개 반발했고, 트럼프가 요청한다면 의장직을 수락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영국계 스탠다드차터드은행의 글로벌 G10 통화 리서치 총괄 스티븐 잉글랜더는 “월러는 현재 연준 운영 방식과 가장 높은 연속성을 제공할 후보”라고 평가했다. 또 자니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채권 수석 전략가 가이 르바스는 “월러와 워시 사이 정책 차이에 대한 시장 확신은 뚜렷하지 않지만, 월러는 임기 중 유연하고 신속한 결정으로 매파·비둘기파 구분을 초월해 왔다”고 설명했다.
리테일 중개사 시버트 파이낸셜의 최고투자책임자 마크 말렉도 “월러 지명 시 월가가 가장 즉각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연준 대변인은 논평 요청에 답변을 거부했다.
트럼프 라인 인사? ‘독립성 침해’ 변수
트럼프와 지나치게 밀착된 인사가 지정될 때는 사태가 복잡해진다. 몬트리올 소재 BCA리서치의 전략가 펠릭스 베지나-푸아리어는 “후보가 백악관과 가깝다고 판단될수록 미국 자산 전반엔 더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가령 해셋이 지명될 경우, 장기 국채금리 상승과 달러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게 다수 애널리스트 견해다. 그는 현 백악관 경제 고문으로, 연준 독립성 훼손 논란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는 해셋 측에 논평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워시 역시 시장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인 그는 2006년 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연준 이사를 지냈으며, 당시 긴축 성향을 꾸준히 강조하며 양적완화(QE) 확대에 비판적이었다. 코페이의 샤모타는 “워시는 다마스커스에서의 ‘극적 개종’처럼 최근 금리 인하를 지지하고 있지만,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축소에도 강경해 차입비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워시는 즉각 응답하지 않았다.
시장에 가장 큰 충격을 줄 시나리오는 연준 또는 거시경제 경험이 부족한 인사가 전격 기용되는 경우다. 채권 전략가 르바스는 “결국 관건은 차기 의장이 백악관의 재정적 이해관계에 얼마나 ‘포획(captured)’되느냐”라고 경계했다.
전문가 해설: 용어와 배경
*1 폴리마켓·칼시: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한 예측시장 플랫폼으로, 이용자들이 실제 돈을 걸고 미래 사건(정책, 선거, 스포츠 등)의 결과를 거래한다. 체결 가격을 통해 ‘군중 지혜’가 반영된 확률을 산출한다. 이런 플랫폼은 제도권 금융이 미처 반영하지 못한 기대 심리를 빠르게 드러내는 특징이 있어, 월가에서도 참고지표로 활용된다.
연준 독립성: 중앙은행이 행정부로부터 정치적 압력 없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원칙이다. 시장이 중요시하는 이유는, 경기 과열·선거주기 등 단기 정치 고려가 개입될 경우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동시에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 해설: 무엇을 주목해야 하나
현재까지 정보만 놓고 보면 ‘월러 지명 시 위험자산 랠리, 해셋·워시 지명 시 변동성 확대’라는 단순 구도가 형성된다. 다만, 쿠글러 이사 사임→임시 의장 지명→정식 의장 선임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절차가 시장 참여자들의 정보 비대칭을 더욱 키우고 있어, 예측보다는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특히 국채 시장은 장단기 스프레드 변화를 통해 차기 의장의 통화정책 스탠스를 실시간으로 가격에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파월 체제에서 강조돼 온 ‘데이터 의존적 접근’이 유지될지, 아니면 ‘정치 친화적 완화’로 급선회할지가 2025~2026년 글로벌 자산 배분의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