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옌 성]—베트남 중북부 헝옌(Hung Yen) 성의 농부 응우옌 티 흐엉(Nguyen Thi Huong·50)은 트럼프 일가가 브랜드를 부여한 대규모 럭셔리 골프장 조성 계획으로 인해 “밤잠을 설칠 만큼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현지 당국은 그녀에게 3,200달러와 쌀 몇 달 치를 주는 조건으로 215㎡ 규모의 농지를 비우라고 통보했다.
2025년 8월 11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 골프장은 다음 달 착공을 앞두고 있으며, 수천 명의 마을 주민에게 유사한 보상안을 제시하고 있다. 로이터가 확인한 6명의 관계자 진술과 문서에 따르면 보상 규모는 토지 면적 ㎡당 12~30달러 수준으로 책정됐다.
트럼프 가문의 첫 베트남 프로젝트
이번 사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가족기업 트럼프 오거니제이션(Trump Organization)이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내건 파트너십이다. 베트남 정부는 워싱턴과 핵심 무역 협정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해당 사업의 인·허가 절차를 최우선으로 처리했다.
개발을 주도하는 현지 부동산 기업 킨박시티(Kinhbac City)와 파트너사는
“브랜드 라이선스 비용으로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에 500만 달러를 지급했다”
고 공시했다. 완공 뒤 클럽 운영은 트럼프 일가가 맡지만, 투자·보상 비용 부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보상 추정액, 5억 달러 → 대폭 축소
프로젝트 총면적은 990헥타르(서울 여의도의 3배 이상)로 바나나·롱간(longan)·리치 등 과수원이 자리 잡고 있다. 계획 초기에는 5억 달러가 넘는 보상 예산이 거론됐으나, 프로젝트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내부 추산이 큰 폭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축소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고령 농민이 다수인 해당 지역은 젊은 인구가 주축인 베트남 전체 경제 흐름과 달리 대체 생계 수단을 찾기 어려운 구조다. 흐엉은 “마을 전체가 토지를 잃고 실업자가 될까 두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베트남 토지 제도: 국가 소유·개인 장기 사용권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다.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이며, 농민은 소규모 필지를 장기 사용토록 배정받는다. 그러나 국유지 환수 결정이 내려지면 주민은 사실상 협상권이 없다. 시위가 빈번하지만 대부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 롱간(longan)은 열대 과일의 일종으로, 리치와 비슷한 단맛이 특징이다.
보상 조건 세부 내용
현지 문서에 따르면 ㎡당 12~30달러 외에, 나무 뽑기 비용과 2~12개월 치 쌀 배급이 추가로 제공된다. 하지만 한 지방 관리에 따르면 같은 지역 농지 시세는 보통 ㎡당 14달러를 넘지 않아 “타 성(省)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농민 네 명은 로이터에 “작은 필지를 경작해 받은 보상액이 터무니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흐엉은 마을 주민들로부터 더 넓은 땅을 임차해 경작하지만, 법적으로는 자신에게 배정된 200㎡에 대해서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나 같은 사람은 앞으로 무엇을 하라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정부·기업 측 공식 입장 ‘침묵’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 헝옌 성 정부, 트럼프 오거니제이션, 킨박시티 등은 보상 기준 관련 로이터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공식 보상안은 다음 달 확정될 예정이다.
“쌀 한 포대와 땅을 맞바꾸라니” 농민들 반발
현장에 참석한 팜 민 찐(Pham Minh Chinh) 총리는 지난 5월 착공식에서 “농민에게 공정한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농민 도 딘 흐엉(Do Dinh Huong)은 “협상권이 전혀 없다니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당 12달러의 보상액이 도로·인프라 건설이라면 수용했겠지만, “민간 비즈니스 프로젝트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제시한 쌀 보급 기간은 문서상 2개월에서 최대 12개월까지 다양하다. 54세의 농부 응우옌 티 축(Nguyen Thi Chuc)은 200㎡ 농지에 대해 ㎡당 30달러를 제안받았지만 “농사 외에는 할 줄 아는 일이 없다“고 호소했다.
일부 주민·투자자 “지역 경제 활성화” 기대
반면, 현지 변호사와 투자자들은 골프장이 관광·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해 마을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본다. 65세의 레 반 뚜(Le Van Tu)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부유층 고객을 위해 레스토랑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로젝트 발표 이후 토지 가격이 5배 올랐고, 인근 돼지 농장 악취에서도 해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 해설
이 사안은 베트남의 토지제도, 외국 브랜드 자본 유입, 그리고 농촌 고령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례다. 특히 트럼프 일가라는 정치·경제적 상징성이 더해지면서 현지 반발과 국제적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개발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실제 농가 소득 증대로 이어질지, 혹은 기존 취약 계층의 생존권을 잠식할지 면밀한 후속 모니터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