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5년 8월 18일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 회동 후 유럽 지도자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 Win McNamee | Getty Images
오랫동안 유럽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륙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대통령의 최근 유럽 지도부에 대한 맹비난은 유럽 측에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다. 특히 유럽 연합과 개별 회원국들이 더 많은 결단력과 권위를 보여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이어서 그 파장은 더 크다.
2025년 12월 10일, CNBC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화요일에 공개된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Politico)와의 인터뷰에서 대륙의 지도자들을 다시 한 번 자극해 유럽 동맹국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그는 유럽을 “약하다(weak)”고 묘사하며 “쇠퇴하는(decaying) 지역”을 이끌고 있다고 표현했다.
트럼프의 발언(번역): “그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I think they don’t know what to do).”
트럼프는 이민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유럽의 대응을 비판하면서 위와 같이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최근 며칠, 몇 주, 몇 달 동안 유럽이 군사적·외교적·재정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기울여 온 노력을 경시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유럽의 기여를 빈번히 축소해왔다.
반면 유럽은 미국 관리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측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위한 평화안 초안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회의석에 초대받지 못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거의 4년째 이어지는 전쟁의 종식과 그 결과가 향후 지역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유럽 지도자들과 분석가들에게 특히 민감한 문제다.
실제로 트럼프의 발언은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날인 2025년 12월 8일 런던을 방문해 유럽 지도자들과 전쟁 종식 공동 노력을 논의한 직후에 나왔다. 해당 회동에서 지도자들은 평화협정의 어떤 형태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 보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러시아가 요구하는 것처럼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사진: 영국 런던 10번가 관저 밖에서 왼쪽부터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2025년 12월 8일 회동을 마친 뒤 서 있다. 사진 제공: Wiktor Szymanowicz | Future Publishing | Getty Images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입장을 번복한 전력이 있다. 이전에는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시사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키이우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주에는 유럽 지도자들이 미래의 우크라이나 자금 지원 문제, 특히 트럼프가 민감하게 여기는 쟁점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지도자들은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의 전후 재건 지원에 활용하는 방안에서 “긍정적인 진전(positive progress)”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그런 움직임은 EU 일부 회원국들의 반대와 절차적 장애물에 직면해 있다.
폴리티코가 트럼프에게 유럽이 전쟁 종식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묻자, 트럼프는
“그들은 말은 하지만 생산하지 않는다(They talk but they don’t produce). 그리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And the war just keeps going on and on).”
라고 답했다.
오래된 동맹에서의 지진적 변화
트럼프와 유럽, 그리고 유럽 지도자들과의 관계는 분명히 엇갈려 왔다. 트럼프는 일부 지도자들과는 잘 지내는 모습을 보였는데, 예컨대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와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 그리고 네덜란드 총리 및 NATO 사무총장으로 언급된 마크 뤼테와는 상대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보였다. 그러나 다른 지도자들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트럼프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과는 상호 비판과 찬사를 오가며 다소 애증(愛憎)의 관계를 형성했고, 독일의 보수적 재무·정책 책임자 성향의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와는 자연스러운 친화력이 없었다. 또한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과는 긴장된 관계가 엿보인다.
적대적 인물을 폄하하는 것은 트럼프에게 낯선 행위가 아니지만, 유럽에 충격을 주는 점은 트럼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 온 오랜 우방·동맹 관계를 기꺼이 포기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은 지난주 유럽이 향후 20년 내에 “문명적 소멸(civilizational erasure)”을 겪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신뢰할 수 있는 동맹으로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 전략 문서는 또한 워싱턴이 러시아와 전략적 안정(strategic stability)을 재수립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크렘린은 이 새 전략이 자국의 비전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평가하며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분석가들은 이 국가안보전략이 미-유럽 관계에 있어 지진적 전환을 시사한다고 진단하며, 이는 유럽에 대한 경종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안 브레머(Ian Bremmer)의 평가(요약): “새로운 미국 국가안보 문서에서 트럼프의 세계관은 분명하다. 강하고 통합된 유럽은 자산이 아니라 위협이다. 크렘린이 이 문서를 러시아의 이익과 ‘대체로 일치한다’고 부르는 것은 모든 NATO 수도들이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할 이유다.”
브레머는 대서양 횡단(transatlantic) 관계가 지금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관계였으나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유럽, 특히 강력하고 조율된 유럽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유럽연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문제는 EU가 함께하면 트럼프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용어와 인물 설명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북미와 유럽의 군사 동맹으로, 회원국 상호방위를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한미동맹과 유사한 성격의 집단안보조직으로 설명할 수 있다.1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으로, EU의 집행 기관을 이끌며 회원국 간 정책 조정과 법안 집행을 총괄하는 최고책임자이다.
“문명적 소멸(civilizational erasure)”: 국가안보문서에서 사용된 표현으로, 인구 감소·경제 침체·정치적 분열 등이 누적되어 한 지역이나 문명의 지위와 영향력이 사실상 사라지거나 극도로 약화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다. 이 표현은 전략 자료에서 경고적 의미로 사용되며 학술적 또는 법적 정의가 정립된 용어는 아니다.
전문적 통찰 및 향후 전망
이번 발언과 새 국가안보전략의 공개는 미-유럽 관계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단기적으로는 유럽이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더 큰 외교적·재정적 자립을 모색하게 할 것이며, 이는 EU 내부의 정책 조율 강화와 회원국 간 부담 분담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러시아와의 관계 재설정 신호는 유럽의 전략적 불안감을 증대시키며, NATO 내부의 결속과 보험정책(예: 집단방위 강화)에 대한 재검토를 촉발할 수 있다.
경제·금융 측면에서는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에 활용하려는 논의가 진전되고 있으나, 실제 집행에는 법적·국제적 제약과 일부 EU 회원국의 반대가 존재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이러한 제약은 단기간 내 대규모 자금 투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중기적으로는 유럽이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강화하려는 흐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는 군사적 능력 증강, 에너지 안보 다변화, 그리고 경제·기술 분야의 전략적 투자 확대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비용이 수반되며, 회원국 간 의견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정치적 자원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미국의 외교·안보 우선순위와 동맹관계에 대한 실질적 변화를 시사한다. 유럽과 NATO는 향후 몇 년간 자신의 안보와 정치적 영향력을 재정비하는 과정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세계 지정학적 질서의 일부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1 NATO 관련 설명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보충 정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