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C 특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체결·발표한 대규모 무역 협정과 관련해 외국으로부터 확보한 투자 약속을 잇달아 ‘사인 보너스’ 혹은 ‘시드 머니’로 표현하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2025년 8월 6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CNBC 프로그램 ‘스쿼크박스(Squawk Box)’에 출연해 “일본으로부터 5,500억 달러, 유럽연합(EU)으로부터 6,000억 달러를 선물처럼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야구 선수의 계약금과도 같은 서명 보너스”에 비유하며, 해당 금액을 “원하면 어디에나 투자할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에 대해 “관세를 30%에서 15%로 낮춘 대신 EU가 6,000억 달러를 지불했고, 미국산 에너지 7,500억 달러어치를 구매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550 billion은 말 그대로 시드 머니(seed money)※”라고 표현했다.
※‘시드 머니’는 스타트업 초기 자금을 뜻하는 용어로, 여기서는 미국 산업 재건·확장을 위한 ‘종잣돈’이라는 취지로 사용됐다.
투자 약속에 대한 상대국 반응
그러나 실제 협상 상대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상당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이들 투자 약속이 대부분 법적 구속력이 없는 기본(framework) 합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다. EU, 일본, 한국 모두 “민간기업의 자율적 투자 의향” 또는 “대출 보증” 수준으로 해석하며 구체적 실행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EU—“구속력 없는 민간투자, 목표치일 뿐”
백악관이 공개한 사실 자료에는 EU가 2028년까지 미국에 6,000억 달러를 투자하고, 미국산 에너지 7,500억 달러어치를 구매한다고 적시돼 있다. 반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배포한 문건은 ‘최소 6,000억 달러 투자 의향’이 있을 뿐이며, 구매 예정액 역시 ‘3년간 약 7,500억 달러 예상’으로 표현했다.
“EU 및 회원국은 민간 기업의 투자·구매를 강제할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다.” — 데이비드 클라이만(ODI Europe 선임연구원)
이는 투자가 ‘열망적(aspirational)’ 성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이행 불이행 시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일본—“현금 지급이 아닌 대출 보증 포함 최대 5,500억 달러”
백악관은 일본이 “미국이 지시하는 방식으로 핵심 산업을 재건·확장하기 위해 5,500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투자·대출 보증’을 합쳐 최대 5,500억 달러라고 설명했다. 일본 측 수석협상가 아카자와 료세이는 “일본이 5,500억 달러를 단순 증여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한국—“3,500억 달러 공동 투자기금 구조 놓고 이견”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한국이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해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췄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 언론 중앙일보는 최석영 전 제네바 대사가 “투자기금 구조에 한·미 간 견해차가 여전히 있다”고 지적한 발언을 전했다.
미 정부의 ‘관세 지렛대’
백악관 익명 관계자는 “투자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관세율을 조정할 권리는 대통령에게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사실상 ‘이행 불이행 시 보복 관세’를 시사한 셈이다.
하지만 국제통상 전문가들은 투자 약속의 집행 가능성, 민간부문 의사결정,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등을 고려할 때 미국 측 요구가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특히 WTO 규정은 특정 수입 대가로 일방적 투자를 강제하는 행위를 ‘무역 왜곡’으로 볼 소지가 있다.
전문가 시각과 전망
한 국제무역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미국이 관세를 지렛대로 투자를 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은 단기적 협상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동맹국 간 신뢰 훼손과 다자통상체제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측통은 “트럼프식 ‘딜 메이킹’이 국내 정치적으로는 지지층 결집에 효과적이지만, 협상 상대국들 입장에선 ‘외교적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투자 실현 가능성을 되레 낮출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실제 글로벌 자본시장은 민간 기업의 수익성·법적 안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관세 인하라는 ‘당근’만으로 3년 내 수천억 달러가 움직이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이번 투자 약속이 ‘정치적 선언’에 그칠지, 아니면 ‘실제 자금 이동’으로 이어질지는 각국 정부·민간 기업, 그리고 글로벌 규범 사이에서 어떻게 세부 이행 메커니즘을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