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오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본부를 전격 방문하며, 제롬 파월 의장에게 기준금리 인하 또는 사임을 요구하는 압박 수위를 대폭 끌어올렸다.
2025년 7월 24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4시 직전 대규모 개‧보수 공사가 진행 중인 연준 본관에 도착했다. 이 방문은 현직 대통령이 연준 건물을 찾은 네 번째 사례이자, 통화정책 변경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첫 사례로 기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발 직전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Truth Social에 올린 글에서 “연준의 31억 달러(추가 비용 포함) 규모의 건설 프로젝트를 점검하러 간다”며 현장 동행자 명단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파월 의장을 비롯해 팀 스콧(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톰 틸리스(공화·노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러스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 빌 풀테 연방주택금융청(FHFA) 청장 겸 패니메이·프레디맥 이사회 의장, 국가수도계획위원회(NCPC) 위원인 제임스 블레어와 윌 샤프 등이 포함됐다.
특히 빌 풀테 청장은 파월 의장에 대해 “사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온 대표적 강경파다. 그는 이날 오전 X(옛 트위터)에 “
Jerome Powell must resign.
“이라는 짧은 글을 올리며 압박을 재차 확인했다.
예산 초과 공사와 금리 정책을 동시에 겨냥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을 향해 “무능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비난하며, 기준금리를 즉각 인하할 것을 요구해 왔다. 연준이 올 들어 금리를 동결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하를 통해 미국 정부의 이자 부담을 수천억 달러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2024년 미 연방정부의 연간 이자 지출은 1조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자신이 직접 지명했던 파월 의장을 지난해부터 거듭 해임하겠다고 시사해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명시적 해임 언급을 한발 물렸다. 이는 연준의 독립성을 보호한 미 연방대법원 판례가 재확인되면서 대통령의 해임 권한이 불분명하다는 법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백악관과 공화당 주요 인사들은 건설 예산 초과 문제를 집중 부각하며 파월 의장 압박에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러스 보트 국장은 이달 초 “파월 의장은 연준을 ‘총체적 난국’으로 몰아넣었다”며 31억 달러에 달하는 개보수 사업을 “과시적이고 불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21일 CNBC 인터뷰에서 “연준 전반에 대한 종합 감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센트 장관은 파월 의장 후임으로 거론되는 유력 인물 중 한 명이다.
역사적 맥락과 방문의 이례성
연준 본부 건물은 1937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준공식을 주관한 뒤, 불과 세 차례만 현직 대통령의 발길이 닿았다. 이번 방문은 88년 만에 네 번째 사례로, 대통령이 통화정책 변경 압박과 감사 혹은 사법조치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연준 의장을 직접 겨냥한 첫 선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
대통령과 의회는 연준 이사진 임명권과 감독권을 지니지만, 통화정책 결정은 정치로부터 독립된 영역으로 간주돼 왔다. 학계 또한 “대통령의 공개적 압박은 시장 불안과 정책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벤치마크 금리란 중앙은행이 상업은행에 적용하는 기준이 되는 단기 정책금리를 말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s Rate)가 이에 해당한다. 해당 금리의 변화는 모기지,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금리 등 광범위한 금융상품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권·기업·가계 모두가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치적 배경 및 파급 효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고(故) 제프리 에프스타인 관련 미공개 파일 처리 논란을 비롯한 백악관 주변 각종 스캔들로부터 국민 관심을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재정절약과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한 정상적 행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시장 반응은 엇갈린다. 월가 일부 투자은행은 “정치 압력에도 불구, 연준은 올 9월 전까지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다른 하우스들은 “연준이 정치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0.25%p 선제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배제하지 않는다.
한편, 좌파 성향 시민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연준 독립성 침해는 물론, 거액 공사비 과장을 통한 정치적 쇼”라고 비판했다. 공사비 31억 달러는 연준 산하 역사적 건물 두 채(에클스빌딩·마린빌딩)를 1930년대 원형으로 복원하면서 내진 보강·친환경 설비를 추가한 비용이라는 게 연준 측 설명이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기자 해설*: 현행법상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해임하기 위해선 ‘정당한 사유’를 입증해야 한다. 사유에는 직무 유기·부패·파산 등이 포함되지만, 통화정책 이견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파월 의장을 교체하기보다는, 금리 인하 여론전과 예산 낭비 프레임을 통해 정책 방향을 우회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연준 내부에서도 “건축 프로젝트가 다소 과도했다”는 자성론이 나오지만, 한 관계자는 “안전 규정과 역사적 보존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려면 비용 증가가 불가피했다”고 반박했다. 공사 완료 시점은 2029년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사안은 재정건전성 논쟁, 통화정책 독립성, 행정권 남용 여부라는 세 갈래 쟁점을 내포한다. 파월 의장은 이르면 8월 잭슨홀 회의 연설에서 향후 금리 방향을 명확히 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다시 압박을 가한다면, 연준·행정부 간 긴장은 한층 고조될 것이다.
※ 이 기사는 원문(CNBC, 2025.07.24)을 전문 번역·가공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