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가 향후 수개월 동안 꾸준히 약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외환시장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로이터 통신 설문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설문에 참여한 애널리스트들은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독립성 훼손 우려, 정부 공식 통계의 신뢰도 저하, 급증하는 재정 적자, 그리고 가파르게 높아지는 금리 인하 베팅을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2025년 8월 5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달러 인덱스는 올해 들어 주요 6개 통화 대비 약 9 % 하락했으며, 최근 유럽연합(EU)과의 관세 협상 타결로 올랐던 낙폭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동통계국(BLS) 국장을 전격 해임하면서 대부분 반납됐다.
로이터가 8월 1~5일 실시한 외환 전략가 설문에서 유로화는 10월 말 1 유로=1.17달러, 6개월 내 1.18달러, 1년 뒤 1.20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2021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중간값이다. 설문에 응한 웰스파고의 에릭 넬슨 G10 외환 전략 대표는 “
미국이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강한 경제라는 인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며 “달러 반등 시마다 매도하려는 유혹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고의적인 데이터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에리카 맥엔타퍼 전 BLS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이는 역대 최대폭으로 하향 조정된 고용지표가 발표된 지 며칠 뒤 이뤄졌다. 이에 따라 미국 통계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둘러싼 금융시장의 불신이 급격히 커졌다.
같은 기간 별도로 진행된 정책 전문가 100명 대상 로이터 설문에서는 89명이 “미국 정부 통계의 정확도가 의심된다”고 답했다. 시장은 결국 투자 자산으로서 달러화의 매력을 낮춰야 할 추가 위험 프리미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FED 독립성 흔들림
투자자들의 불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의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급진적 금리 인하’를 요구해온 데서 비롯됐다. 여기에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가 임기보다 앞서 사임, 뒤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새 인사를 지명할 가능성이 커지자 차기 의장 인선 과정이 예측 불허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내년 5월 만료된다.
ING의 프란체스코 페솔레 외환 전략가는 “만약 트럼프가 자신의 인사를 연준 이사로 앉히고 그 인물이 차기 의장까지 맡게 된다면
시장 참여자들은 연준의 독립성이 실질적으로 훼손됐다고 판단할 것
”이라며, 이는 “달러 약세를 정당화하는 강력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방기금(FF) 금리 선물시장은 올해 말까지 약 세 차례 금리 인하를 반영하고 있다. 첫 인하는 9월로 예상되며, 이는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한두 차례 인하 전망이 우세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유럽중앙은행(ECB)은 동기간 0~1회 인하만 가격에 반영돼 있어, 정책 차별화가 달러 약세를 더욱 부추긴다는 평가다.
전문 용어 해설
① ‘Term Premium’(만기 프리미엄)은 투자자가 장기 채권을 보유할 때 요구하는 추가 보상을 뜻한다. 정부 재정 악화나 정치 리스크가 커질수록 만기 프리미엄이 상승해 장기 금리가 오르고, 통화 가치는 약세 압력을 받는다.
② ‘Net-Short’(순매도) 포지션은 선물‧옵션 시장에서 특정 자산을 매도한 계약이 매수 계약보다 많은 상태를 의미한다. 투자자들이 달러 약세를 예상할수록 순매도 규모가 커진다.
포지셔닝 변화
설문 참여 전략가 42명 중 26명(약 62 %)은 10월 말까지 달러 순매도 규모가 유지되거나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3분의 1이 넘는 응답자들은 “최근 달러 숏 포지션이 과도하게 쌓였다”며 감소 가능성을 지목했다.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의 제이슨 드라호 미국 자산배분 총괄은 “
달러 약세는 올해 가장 공감대가 형성된 거래였지만, 단기적으로는 비관론이 완화되고 있다
”고 설명했다.
돌아보면 달러에는 미국 예외주의, 상대적 성장 우위, 안전자산 선호라는 세 가지 축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정치 리스크와 데이터 불신이 이 세 축을 갉아먹고 있다. 본 기자는 연준의 신뢰도와 통계 투명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달러가 반등하더라도 ‘랠리 속 매도(sell the rally)’ 전략이 유효하다고 판단한다.
물론 달러의 완전한 방향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 경제가 생각보다 견조하거나, 지정학적 위험이 부상해 달러가 다시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정책 불확실성이 이러한 반등 에너지를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정치적 개입과 데이터 품질 논란이 달러 프리미엄을 얼마나 훼손할지를 주시하고 있다. 높은 순매도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달러 약세 추세’가 완만해질 뿐 되돌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