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엔비디아 차세대 AI 칩 ‘블랙웰’ 축소판 중국 판매 허용 가능성 시사

워싱턴발—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세대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 ‘블랙웰(Blackwell)’의 성능이 축소된 버전을 중국에 판매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는 중국이 미국의 인공지능(AI) 역량을 군사력 강화에 활용할 수 있다는 워싱턴의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온 발언이다.

2025년 8월 12일, 로이터통신(Reuters)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젠슨 황(엔비디아 CEO)에게 30~50% 정도 성능을 깎은 블랙웰 칩을 얘기하고 있다”며 “그 역시 다시 면담을 요청한 상태이며, 그때 논의할 칩은 완전판이 아닌 ‘언인핸스드(un-enhanced)’ 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이 미국산 고급 연산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으로 해석돼 의회 내 초당파 대중 강경파를 자극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을 AI 세대 격차에서 몇 단계 뒤로 묶어 두려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축소판이라 해도 중국이 충분한 양을 구매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AI 슈퍼컴퓨터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이 AI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leapfrog)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 사이프 칸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기술·국가안보국장(바이든 행정부 시절)

현재 엔비디아가 중국에 판매할 수 있는 최고 사양 칩은 이전 세대인 ‘H20’ 모델이다. H20는 호퍼(Hopper) 아키텍처 기반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설정한 수출 통제 기준을 충족하도록 의도적으로 낮춘 성능을 갖고 있다. 반면 2024년 3월 공개된 블랙웰 칩의 미국 버전은 전 세대 대비 최대 30배 빠른 성능을 자랑한다.

로이터는 지난 5월, 엔비디아가 최신 블랙웰 칩의 중국 전용 변형 모델을 훨씬 낮은 비용으로 준비 중이라고 단독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해당 칩의 존재나 사양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AMD와 중국 판매 매출의 15%를 미 정부에 귀속시키는 전례 없는 합의를 체결했다고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H20는 이미 중국에 넘어갔으니 ‘구형(obsolete)’”이라며 “승인을 해주려면 미국이 20%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15%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미 상무부는 이미 H20 칩 대중 수출을 위한 라이선스 발급을 개시했다. 첫 번째 미 정부 관계자는 H20 수준의 칩 판매가 ‘국가안보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두 번째 관계자는 매출 분배 방식의 시행 시기·절차는 미정이지만 ‘법적 요건을 준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 대변인은 “우리는 미 정부가 설정한 규정을 준수한다”며 “수개월간 H20를 중국에 출하하지 않았으나, 미국의 수출 통제미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보장하길 기대한다”고 했다. AMD 역시 “수출 통제 규정 준수”를 강조하며 세부 합의에는 직접 언급을 피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기업 개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과거에도 미국 제조시설 투자를 압박했고, 중국계 기업과의 연루를 이유로 인텔 신임 CEO 립부 탄의 사임을 요구한 바 있다.


전문가 해설: GPU·AI 칩 수출 통제란?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본래 그래픽 연산 전용 프로세서이지만, 최근에는 AI 학습·추론에 최적화된 병렬 연산 능력으로 인해 AI 시대의 ‘엔진’으로 통한다. 미국 정부는 고성능 GPU가 중국 군사·안보 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연산 성능·대역폭·치수 등 세부 지표를 기준으로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블랙웰 아키텍처는 엔비디아가 2024년에 발표한 차세대 플랫폼으로, 트랜지스터 수, 메모리 구조, 에너지 효율 등에서 대규모 언어모델(LLM) 학습에 최적화됐다. 따라서 중국이 블랙웰 기반 칩을 확보할 경우 AI 군사응용·감시시스템·딥러닝 연구 등에서 미국과의 격차를 좁힐 가능성이 제기된다.

‘스케일-다운’ 모델은 주로 FP64 연산 제한, 메모리 인터페이스 축소, NVLink 차단 등의 방법으로 성능을 낮춘다. 그러나 칩 수량이 충분하다면 성능 감소를 병렬화로 상쇄할 수 있어, 미국 내 안보 전문가들은 여전히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기자의 시각

이번 합의는 ‘수출은 허용하되 과실 일부를 미국에 귀속’하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헤징(hedging)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금수·제재보다 유연하면서도, 미 정부의 수익 창출기업 활동 보장을 동시에 노린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15%라는 수치가 ‘인허가 대가’로 정례화되면, 미래 기술 수출 전반에서 정부가 기업 수익을 직접 공유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