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뉴욕】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이자(Pfizer)와의 약가 인하 합의를 공개한 직후, 화이자와 경쟁 제약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세를 탔다. 투자자들은 처방약 가격 인하와 ‘가장 유리한 국가(Most Favored Nation·MFN) 가격’ 적용이라는 두 가지 정책 변화를 호재로 받아들였다.
2025년 9월 30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화이자가 메디케이드(Medicaid) 프로그램에 공급하는 모든 처방약 가격을 인하하고, 앞으로 출시되는 신약은 국제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의 가격(MFN 가격)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은 이어 직접 소비자용 온라인 플랫폼 ‘TrumpRx’를 공개하며 “미국민이 할인된 가격으로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화이자는 해당 사이트를 통해 자사 대표 약품들을 최대 85%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백악관이 공개한 포스터에 따르면 이번 온라인 판매 대상에는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젤잔즈(Xeljanz), 편두통 치료제 자브즈프렛(Zavzpret), 아토피·습진 치료제 유크리사(Eucrisa), 폐경 후 골다공증 치료제 듀아비(Duavee)가 포함됐다. 할인 폭은 40%에서 85%까지로 제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몇 주 안에 다른 제약사들도 유사한 약가 인하 합의에 동참할 것”이라며 추가 발표를 예고했다. 실제로 회견 직후 머크(Merck), 일라이 릴리(Eli Lilly), 애브비(AbbVie),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ristol Myers Squibb) 등 주요 제약사 주가는 3%∼5%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용어 해설
*Medicaid는 저소득층 건강보험 프로그램으로, 연방과 주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제약사 입장에선 대규모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중요한 매출원이다.
*Most Favored Nation(MFN) 가격은 미국이 다른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판매 단가에 맞춰 약값을 책정하도록 요구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의약품 무역에서 흔히 쓰이는 ‘최혜국 대우’ 개념을 차용했다.
시장 반응과 전문가 시각
BMO 캐피털 마켓 애널리스트 에번 시거먼(Evan Seigerman)은 “그동안 시장을 짓눌러온 MFN 가격제와 제약 관세 우려가 이번 합의로 완화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상징적인 성과를 확보했고, 제약사는 더 가혹한 규제 대신 ‘헤드라인 수준’의 할인으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평가했다.
시거먼은 또 “화이자가 첫 번째 사례가 됨으로써 다른 제약사들도 백악관과 유사한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그는 “약가 구조 조정이 이어진다면, 단기적으로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지만 정책 불확실성이 제거된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론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지난 7월 17개 글로벌 제약사에 약가를 해외 수준으로 인하하라는 서한을 발송했으며, 9월 29일까지 구속력 있는 약정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화이자의 이번 합의는 해당 서한 이후 나온 첫 공식 결과물이다.
전문가 코멘트와 전망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정책은 ‘표면적 가격 인하’와 ‘실질적 소비자 혜택’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직접유통 채널이 열리면서 도매상·PBM(약가협상관리자) 등 중간 유통 마진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의료경제학자들은 “제약사가 메디케이드 할인분을 민간보험 또는 해외 판매 가격에 전가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총체적 의료비 절감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증시 영향
“오늘 발표는 섹터 전반에 단기적 훈풍을 불어넣었지만, 장기적으론 이익률 압박이 불가피하다.” — 월가 바이오 애널리스트
실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화이자 주가는 장중 한때 5.2%까지 상승하며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머크·일라이 릴리·애브비·BMS 등도 3% 이상 올랐고, S&P 500 의약품 지수는 2%대 상승세를 보이며 주요 업종 가운데 가장 강세를 시현했다.
투자자들은 향후 백악관과 제약사 간 개별 합의가 잇따를 경우, 기업별 주가 차별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파이프라인이 풍부하고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이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높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일정과 과제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약가 인하 합의를 수 주 내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대선 국면에서 ‘의약품 가격’이 핵심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제약업계는 MFN 가격제가 입법 단계로 넘어갈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직접 판매 채널이 확대되면, 소비자 접근성은 높아지겠지만 도매·리베이트 구조 전반의 지각 변동을 초래할 것”이라며 “이는 궁극적으로 헬스케어 공급망 전반의 수익 구조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이번 화이자 합의는 ‘약가 투명성’에 대한 정치적 요구와 제약사 수익성 사이에서 절충점을 모색한 사례로 평가된다. 향후 발표될 타 제약사와의 합의 내용이 할인폭·적용 범위·계약 기간 등에서 얼마나 차별화될지에 따라, 업계 전반의 밸류에이션이 재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